ep04. 샌드위치를 왕창 만들자!
느지막이 일어나서 장 봐온 음식들로 아침을 차렸다. 계획은 계란샌드위치를 만들어두고 매일 먹어보자는 거였는데 두 개 만드니까 배가 고파서 나머지를 만들 순 없었다. 지난밤 준비해 둔 삶은 계란을 여자가 까면 내가 그것들을 으깨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언니는 계란을 정말 잘 삶네"
"응 삶은 다음에 바로 찬 물에 한 시간 정도 담가주면 잘 까져"
사실 내가 잘 삶았는지 아닌지는 먹어봐야 아는 건데 계란 껍데기가 잘 까진다는 이유로 나는 뿌듯함을 느꼈다.
거기에 어제 먹다 남긴 텃밭 채소 파스타와 과일 몇 개를 좋아하는 접시에 올려두니 브런치가 완성됐다.
호주에서 2년간 지내면서 편의점 주방에서 하루에 샌드위치를 백개이상씩 만들던 일을 했었는데 그때 했던 수고로움이 내 인생 영영 도움 될 것 같다. 대량생산도 엄청 빠르게 할 수 있다
식사하면서 꼭 치앙마이와 닮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그곳에서는 집 근처로 브런치를 먹으러 함께 돌아다녔는데 나의 집에서는 돌아다닐 곳이 없으므로 같이 해 먹는다는 점이 다른 점이지만, 먹는 메뉴는 그곳과 같다.
또 산책을 다녀왔고 책을 읽다가 너무 졸려서 알람을 맞춰두고 낮잠을 잤다. 창밖너머 근처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노는 소리가 울리고 새들이 짹짹 거리는 소리에 나른한 음악까지 틀어버리니 내 집 전체가 그냥 asmr하우스 같아졌다. 40여분 정도 낮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집안이 고요해져 보니 여자는 또 방 침대에 누워있다.
"낮잠을 자지 않아도 그냥 침대에 누워있고 싶어 큰일이야. 나는 이 집이 좋아"
릴랙스 요가를 하는 날이었는데, 이름과 비례하지 않는 힘든 1시간을 보낸 우리는 집에 오자마자 씻고 밥을 먹었다 메뉴는 어제와 같다. 운동을 하고 나면 고기뷔페를 함께 가던 치앙마이에서의 모습과 너무나도 똑같다. 이 날은 어제와는 살짝 다르게 고춧가루를 뿌리고 고추도 넣어서 매콤한 소불고기로 만들었다.
한 솥을 끓인 미역국을 며칠을 먹은 건지 셀 수 조차 없이 매일 먹고살았는데 질리질 않아서 참 다행이다. 식사 이후 나른하게 책을 읽다가, 하지 못한 일들이 자꾸 머릿속에 맴돌아 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다시 사무실로 돌아갔다.
여자와 함께 거실에 있는 원형테이블에서 먹고, 일하고, 이야기를 함께 했는데 그렇다 보니 식사할 때는 컴퓨터를 치웠다가 다시 올려두고 일에 집중하는 데에 시간이 오래 걸려서 나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뚫린 벽 하나를 두고 조금 멀리 거리를 두게 되었고 각자 일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게 되면서 조금 더 나의 고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