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이면 중학교 입학하는 큰 아이에게 요즘 지하철 혼자 타는 법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가 멀어서 지하철을 타고 통학을 해야하는데 한번도 지하철을 혼자 타본 적이 없다. 그래서 요즘 레슨가는 길을 지하철 혼자타기 훈련 기회로 활용하고 있다. 첫날은 터미널역까지만 혼자 가기. 그 다음 레슨갈 땐 갈아타서 최종 목적지까지 혼자가기 이런식으로 훈련을 했다. 나는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앞차를 타고 가거나 다음 차를 타고 시간차를 두고 따라가기만 했다. 그렇게 몇 번 훈련을 시키니 이제는 내가 전혀 안 따라다녀도 될 것 같다.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독립적으로 다닐 수 있게 되고 내가 더 이상 레슨 라이드를 안해도 된다는 점이 기쁘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동성"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장애아이들 기능적교육과정 중에 "이동기술"이 있다. 자기가 혼자 독립적으로 원하는 곳을 갈 수 있는 기술을 의미한다. 가고 싶은 곳을 정하고, 계획하고, 대중교통을 혼자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우리나라는 대중교통 시스템이 잘 되어있어 이 훈련을 흔히 한다. 이것을 그냥 당연히 배워야하는 수 많은 라이프 스킬 중 하나라고만 생각을 했었는데, 내가 직접 내 아이를 훈련시켜보니 이동성이라는 것은 개인과 가족에게 크나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경제적 독립을 위한 기본 조건- 이동성(mobility)이라는 것은 우리가 경제적 독립성을 갖기 위해 필요한 핵심 능력이다. 이동을 할 수 없으면 돈을 벌러 갈 수가 없다. 아르바이트도 못한다. 이동성은 개인의 경제력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요즘은 언택트 시대로 이전보다는 이동성 조건이 낮아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이동성은 경제적 독립을 위해 매우 필요한 조건이다.
자유- 남의 도움 없이 혼자 다닐 수 있다는 점은 개인의 심리적 만족에도 영향을 미친다. 내가 어디든 가고 싶을 곳을 내가 원하는 때에 갈 수 없다면 house arrest 와 다를 바가 없다. 이동성에서 오는 그 자유, 나의 이동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처음 연습해보는 아이는 마치 처음으로 걸음마를 떼는 아이와 같은 기쁨과 성취감을 느낀다. 차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미국에서 차가 생겼을 때의 그 느낌과도 비슷하다.
정체성- 사춘기를 시작하는 에게 혼자 지하철 타고 레슨 다녀오기의 결과는 단순히 혼자 다녀왔다는 성취감 뿐만은 아니었다. 혼자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면서 아이에게 새로운 정체성이 생기기 시작하였다. 코로나 때문에 나가지도 못하고 친구도 못 사귀고 집에서 유튜브로만 세상을 접하던 아이가 처음으로 혼자 저 밖의 세상을 탐색하고, 부모의 보호막을 떠나는 연습을 하면서, 어디든 엄마와 같이 가야 했을 때와는 다른 새로운 정체성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혼자 있는 시간- 혼자 지하철 타니 가장 좋은 점이 "혼자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나 역시 아이를 키우면서 그 "혼자 있는 시간"이 나에게도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시간이었나 생각을 했다. 아이 엄마들이 고단해 부서질 것 같은 몸으로도 밤 늦도록 잠을 안자는 이유는 바로 그 "혼자 있는 시간"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때로 마음이 심란할 때 혼자 드라이브를 하기도 하고, 혼자 커피숍에 가기도 한다. 혼자 있는 시간은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고, 닳아버린 마음의 밧데리를 충전 하고, 한 숨을 돌리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독립적 이동성은 이런 기회를 준다.
애를 지하철 역에 두고 뒷차를 타고 오라하고 나는 먼저 앞차를 타고 가던 그 날 지하철 안에서 얼마나 눈물이 났나 모른다. 음악 레슨 받느라 유난히 라이드가 많이 필요했던 지난 6년간 함께 이동했던 그 시간들이 이제는 끝이지만 또 아이의 새로운 앞날을 기대하고 성장을 축하한다. 그리고 라이드로부터의 해방도 자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