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살까지 못 살게 되더라도 어차피 지금쯤 삶을 한 번은 정리해 보고 가는 게 맞겠다 싶었다. 책을 읽고 글쓰기만 해 나가는 것도 충분히 의미 있었지만 글쓰기만 하기엔 뭔가 허전했다. 글쓰기 실력을 키워 책이라는 열매로 완성 지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란 열매를 탐낼 때마다 '감히 내가 책을?'이라는 생각이 온몸과 마음을 잠식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생각만 하며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순 없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할 시간에 '할 수 있다'는 긍정적 결론을 내려놓고 시작하고 싶었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는 방법들이 보이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방법들만 보인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동안 수차례 봐 두었던 자기 계발 동영상과 책들이 이럴 때 긍정적으로 효과를 발휘하는 건가 싶었다. 어쨌든 나는 책을 쓰기로 했으니 그렇다면 무슨 주제로 써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책을 쓰기로 맘을 먹은 이후부터 2가지 프로젝트가 동시에 진행되었다. 첫 번째는 글쓰기를 주제로 한 책을 섭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나 자신에 대해서 제대로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글쓰기 책은 대략 30권 정도 보았다. 책을 쓰려고 마음만 먹었지 글쓰기 실력이 나에게 있는지 없는지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삶을 글로 풀기 위해서는 대체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 기본부터 알아봐야 했다. 글쓰기 책을 보면 볼수록 '그래서 네가 누구니? 네가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니? 세상에는 여전히 책이 넘쳐나는데 그럼에도 네 책이 이 세상에 꼭 나와야 하는 이유가 뭐니? 너 스스로에게 정당하니?'라는 질문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그 누가 나에게 묻는 질문은 아니었지만, 내가 나에게 답을 해야 했다. 그래야만 다음 스텝으로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글쓰기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그건 타자를 위한 것이라고 나는 말했다. 병중의 기록들도 마찬가지다. 이 기록들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내가 떠나도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다. 나만을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약해진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
- <아침의 피아노> 중에서 -
<아침의 피아노> 김진영 작가는 암투병 중에 이 책을 썼다.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고 남겨질 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했다. '타자를 지키려고 할 때 나는 나날이 확실해진다'는 문장을 읽으며 한참을 생각했다. 과연 나는 누구를 지키고 싶을까? 누구를 생각하며 글을 쓰면 나날이 확실해질 수 있을까?
나의 고민의 시간들이 결국 책의 '독자를 결정하는 일'이라는 것을 한참 뒤에야 알았다. 책을 쓰기 전에 먼저 독자를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글이 누구에게 가 닿을지,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글일지, 누구에게 읽히고 싶은지...
나는 팀원들을 위해 글을 써 보기로 했다. 멀리 있는 독자를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글 40개를 모으면 책 한 권이 된다고 했다. 나는 60개의 글을 모아보고 나머지 20개는 버리기로 했다. 글 60개는 하루에 2개씩 쓰면 한 달이면 가능한 양이었다. 글을 양으로 생각하다니 딱 나다운 계획이었다. 나답게 계획을 세워야 실행하기가 쉽다는 생각에서였다.
30일 동안 한 달만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기로 했다. 인생의 비상대책위원회를 한 달만 가동해 보기로 했다. 미라클 모닝 같은 거 해 보겠다 맘먹은 적은 없었지만 비대위라 생각하니 한 달쯤이야 뭘 못할까 싶었다. 비상대책위원장도 나고, 비상대책위원회의 유일한 위원도 나라고 생각했다. 비대위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는 일찍 일어나는 행위가 아니라 매일 써내야 할 글 2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