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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Jan 07. 2023

덜 사고 더 갖는 삶을 산다.

알뜰하고 살뜰하게

Collect moments not things. -Paulo Coelho-


소비의 시대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매일 무언가를 사고 쓰고 버리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현대인의 생활은 소비 없이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꼭 필요한 것, 원하던 것에 대한 소비는 큰 만족감을 주기도 하지만 어떤 소비는 갈등이나 공허함 같은 불편한 감정을 주기도 한다. 과연 소비는 '득'일까, '실'일까. 소비를 통해 무언가를 얻는다는 관점에서는 '득'이겠지만, 돈을 써야 하고 감정을 소모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는 '실'이 아닐까.


대학 졸업 후부터 줄곧 출근해야 하는 일터가 있었고, 매일 학생들과 동료들을 가까이서 마주해야 하는 자리에 있었기에 소비의 규모도 적지 않았다. 옷, 화장품 등 몸을 치장하고 꾸미는 데 들어가는 소비도 꽤 비중을 차지했다. 미용실에도 자주 가야 했고 가방도 가끔 사줘야 했으며 여러 가지 품위 유지에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바쁜 생활로 인해 회식, 외식이 잦을 수밖에 없었다. 일을 열심히 하는 만큼 통장으로 입금되는 돈도 많았지만 더불어 소비로 인한 출금액도 상당했다.  


미국으로 온 이후부터는 소비의 규모가 현저히 작아졌다. 맞벌이에서 외벌이가 되었기에 들어오는 돈이 많이 줄었지만 소비 또한 많이 줄었다. 한국에서 벌던 것에 비하면 연봉이 크게 줄어들었고 월세살이로 인해 매월 렌트비를 내야 하는 형편임에도 통장에 돈이 착착 쌓여가고 있다. 정말 신기하고도 감사한 일이다. 서로의 삶에 크게 관여하지 않고 개인주의적이며 띄엄띄엄 살아가는 미국 시골 생활은 나의 소비생활에 큰 다이어트를 가져왔다.


덜 사


옷, 신발을 덜 산다.

평소 미국 사람들은 남의 외모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이다. 공짜 티셔츠를 입고 체육관에 가도 아무렇지 않고 투명 테이프로 구멍 난 곳을 메운 잠바를 입고 다녀도 누가 뭐랄 사람이 없다. 요즘 나는 운동화 두 켤레로 일 년을 나고 있다. 무지 외반증으로 인해 발 모양이 변형되면서 구두, 부츠, 로퍼, 단화 등 그 어떠한 것도 신지 않기로 했다. 오로지 내 신발 사이즈보다 약간 큰 남성용 운동화만 신고 다닌다. 매일 직장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기에 어떻게 입고 다녀도 속이 편하다. 온 가족이 체육관에 자주 다니면서 운동화만 신고 운동복을 주로 입는 생활이 되었다.


일회용품을 덜 산다.

우리 가족은 거의 매일 집밥을 해 먹고 있다. 친구들을 만나고 초대할 때도 집 음식이 일상이다. 미국 친구들도 주로 집밥으로 초대하고 홈메이드 간식으로 손님을 맞이한다. 배달 음식, 포장 음식을 안 먹게 되면서 일회용품 사용이 거의 없는 생활이 되었다. 미국 사람들이 자주 애용하는 플라스틱 병 생수도 선호하지 않는다. 큰 냄비에 물을 끓여서 보리차 또는 둥굴레차 티백으로 살짝 우려낸 물이 제일 좋다. 생수보다 입맛에 맞다. 재활용 분리수거가 없는 우리 동네에서는 모든 쓰레기를 한 곳에 다 버린다. 처음에는 이렇게 막 버린다고?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쓰레기 배출량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도록 일회용품이라도 덜 써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새 물건을 덜 산다.

미국에서는 중고 물건 거래가 굉장히 활발하다. 워낙 나라가 크기에 멀리 이사 가는 사람이 집안 물건 전체를 중고로 내놓는 경우도 있다. 미국 사람들은 분리수거도 안 하고 너무한 것 아냐? 했는데 중고를 선호하는 측면에서는 그렇지도 않다. 한 번 물건을 사면 오래오래 쓰고 중고 물건도 많이 사용한다는 측면에서는 이와 반대의 마음이 들기도 한다. 우리 집 앤틱 소파는 실제 가격이 몇 십만 원이지만 한국돈 5만 원에 페이스북 중고 거래에서 구매를 했고 정상가 10만 원이 넘는 거실용 원탁 테이블도 중고 물품으로 3만 원에 구매를 했다. 매일 입는 운동복도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간 한 친구가 준 중고 옷이 많다. 어느덧 나도 중고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시간과 공간 더 갖는다.

소비가 줄어들면서 더불어 자연스레 생겨난 것이 있다. 시간과 공간에 관한 것이다. 예전에 삼십 대 초반까지 학교생활을 하면서 옷에 소비를 많이 할 때가 있었다. 주말에 백화점 쇼핑을 가면 그날 하루가 통째로 다 지나가고 온라인 쇼핑을 한다고 해도 몇 시간이 우습게 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소비에 들어가는 항목은 동네 슈퍼마켓과 주유소가 큰 부분을 차지할 뿐 나머지 소비에 드는 시간과 정성은 찾기 힘들다. 그러면서 내가 쓸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더 많이 늘어났다.


여유를 더 갖는다.

미국으로 오면서 우리 가정의 수입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남편의 연봉도 오르긴 했지만 예전에 한국에서 맞벌이로 벌던 규모에 비하면 택도 없다. 하지만 덜 소비하는 생활이 되면서 금전적으로 어렵다는 생각은 들지 않게 되었고 오히려 돈이 저축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수입이 줄어들었지만 큰 소비를 하지 않고 소비에 흥미를 잃어버리게 되면서 통장에는 여유가 찾아왔다. 소비 활동보다는 매일 운동하기,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브런치에 글 쓰기, 어학 공부하기, 미국 친구들과 한국어 또는 영어로 소통하기 등의 생산 활동에 좀 더 집중하고자 한다.


추억 더 갖는다.

소비를 덜 하는 생활은 이미 갖고 있는 것에 더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었다. 학교 행사에서 받은 티셔츠도 운동복으로 소중하게 사용하게 되고 미국 친구가 하나 남는다며 준 크리스마스 트리에도 왠지 모르게 그 친구의 추억이 잔뜩 묻어있는 것만 같다. 작년 연말에 초대를 받아 놀러 갔던 미국 친구네 집 거실에는 의자가 세 개 있었다. 겉보기에 아주 깨끗했는데 오래된 소파라 해서 물어보니 천갈이를 세 번 이상 한 무려 70년 넘은 의자라고 했다. 집에 오래된 물건이 정말 많아서 깜짝 놀랐다. 오래 함께 한 물건은 오래된 추억도 선사해 주는 법이다. 매주 한두 번, 우리 가족의 가장 큰 소비인 마트에서 장보기가 끝이 나면 남는 시간에 하이킹 또는 운동을 함께 하거나 미디어 시청 시간을 가지며 시간을 보낸다. 그러면서 추억도 함께 쌓여간다.


덜 사는 생활은 아이러니하게도 더 갖는 생활을 만들어 주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미니멀리즘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고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아니지만 그저 소비에 관심을 줄이니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더 많은 것들을 갖게 되었다. 덜 사면 줄어드는 삶이 되어야 할 것 같지만 오히려 늘어나는 삶이 된다. 더 사면서 옷장과 겉모습을 채우기보다는 덜 사면서 관계와 마음, 소중한 의미를 채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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