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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live Dec 26. 2022

고독하게 외롭지 않게

고립되지 않기

Loneliness is the poverty of self; solitude is the richness of self. -Mary Sarton-


미국으로 이사를 온 이후 나의 삶은 많이 달라졌다. 늘 시간에 쫓기며 바쁘게 살았던 지난 40년 간의 삶과는 완전히 다른 삶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를 기다리는 직장도 없고 월급도 있을 리 만무하며 보고 싶은 부모 형제도 못 만나기에 아쉬움도 물론 크다. 나이 마흔에 사회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외국생활을 결심한 우리 가족의 선택을 누구에게나 추천해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어느 작은 마을에서의 삶은 내게 마음 가득 풍요로움과 넉넉함을 선사해 주고 있다.


바쁜 도시 생활과는 딴판인 이곳, 고요하고 고즈넉한 소도시에서의 삶에 조금씩 적응을 해 가고 친구들도 여럿 사귀게 되면서 안정도 찾아가고 있다.


가끔 고독하게


미국 소도시 생활은 내가 그동안 살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고독이라는 감정을 선사해 주었다.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한 감정을 한국에서는 느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나의 모국어인 한국말이 항상 통했고, 먹고 싶은 한국음식도 주변에 가득했다. 나의 미래는 마치 이미 다 정해져 있는 듯 언제나 해야 할 일이 나를 따라다녔다. 하고 싶은 일보다는 해야 할 일이 늘 우선했다. 한 가지 일을 끝내면 바로 그다음 해야 할 일이 생겼다.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할 일에 우선순위가 밀리기 일쑤였다.


고독(孤獨)   세상에 홀로 떨어져 있는 듯이 매우 외롭고 쓸쓸함.


그러나 외롭지 않게


나이 마흔에 처음 경험해 본 미국 생활의 첫 시작은 외로움이었다. 덜 바쁨과 고독을 찾아 이 멀리까지 왔지만 왠지 모르게 외로움이라는 감정만 느껴졌다. 외롭지 않으려 매일 유튜브를 봤고, 미국 친구들 모임에 일부러 쫓아다녔으며, 한국 친구들과의 카톡도 자주 확인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나의 외로운 감정은 점점 사라져 갔고 그 자리에 고독이라는 단어가 소복소복 채워졌다. 외로워서 뭔가를 했던 나날들이 지나가고 가끔 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듯한 고독의 감정을 즐기는 내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외로움   홀로 되어 쓸쓸한 마음이나 느낌.


외로움과 고독은 그 의미가 정말 비슷하다. 이 둘의 사전적 의미는 거의 차이가 없다고 봐도 될 정도이다. 그러나 심리학적, 철학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외로움은 남으로부터 거절, 소외감이 포함된 쓸쓸한 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고독은 남과 전혀 상관없이 스스로 선택한 쓸쓸함을 의미한다. 어쩔 수 없이 홀로 되었다면 외로움, 자발적으로 홀로 되기를 선택했다면 고독인 것이다. 미국까지 왔지만 나도 모르게 외로웠던 지난날과는 안녕을 고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에 집중하며 가끔 고독과도 친하게 지내는 삶을 만들어 가고 있다.


절대 고립되지 않기


한국 사람들이 많이 없는 미국 시골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노잼일 수 있다. 미국에 사는 한국 사람들이 큰 도시를 선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살기가 편리하고 더 재미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한국 사람도, 한국적인 것들도 거의 없는 미국의 작은 마을에서 살게 되었다. 외로움이 아닌 고독한 생활은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그러나 그것만 반복이 되어 혼자만의 세계로 빠지게 된다면 고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고립된 삶은 외로움으로 향해 가는 지름길과도 같다.  


고립(孤立)   다른 사람과 어울리어 사귀지 아니하거나 도움을 받지 못하여 외톨이로 됨.


중년에 미국까지 와서 경험하는 나의 일상은 반드시 즐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사십 년을 살다 온 나는 한국어, 한국 문화 없이 즐거움을 찾는 것이 힘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것은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널리 알리는 일에 정성을 쏟는 것이었다. 한국 선생님으로서 한국에서 펼쳤던 선생님으로서의 꿈을 미국에서도 펼치기 위해 나는 한국에 관심이 있는 미국 사람과 많이 어울리는 것을 택했다.


영어에 대한 두려움도 깨 버다. 완벽하지 않은 영어면 어떠. 미국 사람의 78%는 영어만 쓰고 있는데 한국 사람은 한국어, 영어 두 가지의 언어를 하고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아주 대단한 것이 사실이다. 미국인들이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아랍어,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에 들어 가 있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며, 영어도 생존 단계를 벗어나 일상 소통이 가능한 수준이지 않은가. 영어 울렁증으로 인해 미국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친한 친구 한 명 못 사귄다면 중년에 경험하는 미국 시골생활은 노잼 중에서도 핵노잼이 될 것이다.


요즘 나는 한국을 좋아하고 외국 친구를 만나고 싶어 하는 미국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며 재미를 찾고,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배우고 싶어 하는 미국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며 보람을 얻고 있다. 어떨 땐 고독의 시간을 찾기 힘들 정도로 바쁘게 하루가 돌아가는 경우도 있다. 바쁘지 않은 삶, 가끔 고독을 즐기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때때로 바쁜 것도 내 삶에 주는 양념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가끔 고독하게, 그러나 외롭지 않게 일상을 보내며 절대 고립되지는 말자.


훗날 나의 사십 대를 되돌아봤을 때 고민 없이 행복했었노라고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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