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바빴는데, 왜 아무것도 안 한 느낌일까

흔적을 지우는 노동

by 나아선




허무했다.
하루를 온전히 써버렸는데도, 어딘가 텅 비어 있는 기분이었다.

“하루 종일 바빴는데, 왜 아무것도 안 한 느낌일까?”

누군가는 웃음 섞인 푸념처럼 말하지만,
그냥 피곤해서 그렇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 절박하게 문을 두드리는 정직한 질문일지 모른다.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아침밥을 차리고, 아이들의 등교를 챙긴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면, 늘 비슷한 집안일이 이어진다.
설거지와 청소, 빨래를 마치는 동안
이불을 털고, 놀이 매트를 들어 닦고, 후드를 문지른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의 하교 시간이 다가온다.
서둘러 간식을 준비하고, 마중을 나간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노는 동안
그네를 밀어주고, 저녁 메뉴를 고민한다.

집으로 돌아오면 곧바로 저녁을 만들고,
먹이고, 치운다.
숙제를 확인하고, 욕실을 청소하고,
다시 설거지하는 일이 쉼 없이 이어진다.
아이들을 양치시키고, 마음을 토닥이며 재우는 사이
밤이 깊어진다.

끊임없이 움직여야 했던 하루는 그렇게 끝난다.
소파에 겨우 몸을 기대는 그 짧은 틈에, 누군가 묻는다.

“오늘 뭐 했길래 그렇게 힘들어?”

처음엔 당황했다.
당연히 집안일과 아이 돌봄을 했는데, 그걸 몰라서 묻는 걸까?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누구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일이라는 걸.

가사노동은 본래 흔적을 지우는 일이다.
살아 있는 존재가 남긴 자취를 끊임없이 지우는 일.
식사의 흔적을 지우고, 먼지를 지우고, 흐트러진 삶의 자리를 다시 정돈하는 사이
어느 순간, 지우는 손길마저 지워지게 된다는 걸 나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됐다.

나는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끊임없이 움직였다.
먼지와 얼룩, 흩어진 물건과 쌓인 설거지를 치우고,
다시 흐트러지기 전에 정돈하고, 늘어나기 전에 줄였다.

하지만 하루가 끝나고 돌아보면, 남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한 일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일이었다.
흐트러짐을 되돌리고 나면, 그 일이 있었다는 증거도 함께 사라졌다.

흔적이 없으니,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몇 번의 설명도, 소용이 없었다.

누군가는 “오늘 일하느라 힘들었지”라는 말 한마디로
자신의 하루를 설명하고 위로받을 수 있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아무리 성심껏 이야기해도, 그 하루의 무게는 제대로 전해지지 않았다.

전해지지 않는 말은 곧 공허해졌고,
나는 점점 말을 줄이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게 되었다.

말을 하지 않게 되면서, 나는 조금씩 사라졌다.
아무도 보지 못하고, 나조차 들여다보지 않는 누군가가 되어 있었다.
무엇이 힘들었는지, 언제 서운했는지, 무엇이 기뻤는지도
하나둘 잊혀져 갔다.
내가 사라진 빈자리엔, 지워진 흔적의 무게만큼 묵직한 피로만이 쌓여 갈 뿐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은 말해지지 않고,
말해지지 않는 것은 기억되지 않고,
기억되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매일의 흔적을 지웠지만,
결국 그 안에서 가장 깊이 지워진 건
나 자신이었다.

나는 그제야,
하루 종일 바쁘게 움직였는데도 아무것도 안 한 것 같은
그 기이한 감정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

그건 내가 했던 모든 일과 함께,
나의 존재마저 지워졌기 때문에 생긴 통증이었다.

피곤함이라고, 예민함이라고,
별일 아닌 감정이라고 덮어둔 그 오랜 시간.
나는 소리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다만, 너무 오랫동안 그것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지워진 자리의 통증은 끝내 가라앉지 않았다.
끈질기게, 묵묵히,
내 안 어딘가에서 내가 여기 있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그 오래된 통증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제야, 나는 조금씩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이 감각이, 이 상처가
비단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건 마치 전염처럼 곳곳에 퍼져 있었다.
무심코 지나친 대화 속, 낯익은 글귀 속에서
짜기라도 한 듯 비슷한 이야기가 반복되고 있었다.

“하루 종일 뭔가를 했는데도, 뭐 하나 한 게 없는 기분이에요.”
“왜 이렇게 지친 걸 아무도 알아주지 않죠?”

그 말들이 위로처럼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문득, 의문이 생겼다.
왜 우리의 하루는 이렇게도 쉽게 지워지고 있는 걸까?

나는 지워진 하루들을 되짚듯 거슬러 가다,
그 안에 은밀하게 뿌리내린 하나의 풍경을 보게 됐다.
익숙함에 가려 잘 보이지 않지만,
효과적으로 수많은 이들의 노동과 존재를 지워 온 사회적 구조의 얼굴이었다.

이 책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삶에 깊숙이 침투한
그 구조의 단면을 펼쳐 보려는 시도다.

지움을 가능하게 만든 구조 속에서, 이름조차 갖지 못한 노동.
보이지 않는 일 뒤에 선, 보이지 않게 된 사람들.
그들의 하루를, 다시 존재라는 이름으로 불러내려 한다.



✍ 이 글은 『가사의 존재』라는 책을 준비하며 쓴 원고의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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