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순환
어제도, 오늘도.
가족들이 모두 떠난 텅 빈 집안에
먹고 남은 식기, 벗어놓은 옷가지들,
바닥과 테이블 위의 자잘한 쓰레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이 돌아오기 전까지 나는 분주히 움직였다.
물건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청소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빨래를 개고,
다음 식사를 준비했다.
드디어 끝났다 싶었지만, 그 평온은 늘 잠시뿐이었다.
가족과 저녁을 먹고 돌아보면, 집은 다시 어지러워 있었다.
식탁 위엔 부스러기가, 싱크대엔 설거지감이,
세탁실엔 새로 생긴 빨랫감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
주부들은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엔 지침과 체념,
그리고 누구에게도 쉽게 꺼내지 못하는 고독이 있다.
그들은 집안일에 끝이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매일 그것을 끝내려 애쓴다.
청소를 끝내고, 설거지를 끝내고, 빨래를 끝내려 하지만,
하루만 지나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결국 남는 건 지친 몸과 허무함, 그리고 켜켜이 쌓여가는 피로뿐이다.
가사노동은 본질적으로 되돌아가는 일이다.
정리한 공간은 곧 다시 어지러워지고,
설거지를 끝낸 싱크대엔 또 접시가 쌓이며,
한 번 개어둔 옷가지들은 금세 다시 세탁물로 돌아온다.
마치 되감기를 반복하는 시계태엽처럼,
가사노동의 수고는 늘 원점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더 지친다.
반복은 피로를 낳는다.
끝냈다 싶어도, 그 끝은 늘 새로운 시작이다.
누군가는 “힘들면 쉬어”라고 말하지만,
가사노동은 감정이나 의지로 멈출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건 생존의 흐름 위에 못 박힌 반복이다.
다시 말해, 해도 다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동시에 하지 않으면 곧바로 삶이 흔들리는 일이다.
먹고, 입고, 자고, 배설하는 의식주의 순환이 계속되는 한
가사노동은 멈출 수 없다.
이는 생존의 가장 바탕에 깔린 일이기에,
멈추는 순간 바로 표가 나는 일이다.
설거지를 미루면 악취가 나고,
빨래를 미루면 입을 옷이 없고,
청소를 미루면 발 디딜 틈이 사라진다.
이처럼 가사노동은 일상의 유지와 직결되기에
하기 싫다는 감정만으로는 멈출 수 없다.
게다가 멈추는 순간,
그 책임은 개인의 게으름이나 무능력으로 쉽게 오해된다.
그래서 수행자는 스스로를 계속 몰아붙인다.
매일 반복되는 순환의 굴레 속에서 홀로 감당하며 지쳐간다.
그러나 이 반복의 굴레는, 단지 삶의 속성 때문만은 아니다.
가사노동은 수행자의 피로와는 별개로,
사회 전체가 그 반복을 당연하게 여기도록 설계한 구조 속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다.
누군가가 집안을 정리하고, 빨래를 개고,
다음 끼니를 준비하지 않으면
가정의 기능은 즉시 중단된다.
이 기능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누구나 이견이 없다.
그러나 그 기능의 유지가 누구의 몫인지에 대한 질문은 좀처럼 던져지지 않는다.
바로 여기,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지만 고르게 깔린 ‘기대’가 문제다.
누군가가 보이지 않게 계속 움직여야만
일상이 굴러간다는 사실은 말해지지 않고,
그 움직임의 주체는 쉽게 지워진다.
그리고 그런 묵인 속에서
반복의 책임은 자연스럽게 한 사람에게로 향한다.
내조, 모성,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지정된 그들은
이유도 모른 채 멈출 수 없는 반복의 굴레에 들어선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는 노동을 수행한다.
돌봄과 살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그 자체로는 의미 있고 고귀하다.
그러나 그것이 한 사람의 반복 노동에 전적으로 기댈 때,
고귀함은 점점 짐처럼 무겁고, 버거운 것이 된다.
쌓이고, 지치고, 결국엔 무너진다.
‘왜 나만 이렇게 반복해야 하지?’라는 질문이 떠오를 무렵엔,
이미 너무 지쳐 말조차 꺼낼 수 없다.
반복에 지친 몸과 마음은 항의 대신 침묵을 택한다.
반복되는 피로는 말문을 닫게 만들고,
이름 없는 수많은 노동은 원래 그런 것처럼 사라진다.
그렇게 사라진 노동 위에는
질문하지 않는 문화가 차곡히 쌓여간다.
“매일 치우는 게 당연하지.”
“엄마니까 해야지.”
“더 잘하잖아.”
이런 말들은 끝나지 않는 순환을 끊임없이 정당화하고,
그 반복을 언제나 암묵적으로 정해진 누군가의 몫으로 고정시킨다.
그리고 말하지 않음은, 그 반복을 계속하게 만드는 가장 조용한 힘이 된다.
그래서 이 피로는 단순한 일상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다.
반복은 누구나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반복을 나누어 가지려는 시도는 없다.
대신, 말없이 고립된 한 사람에게 고정된다.
그렇게 우리는,
이 일이 매일, 영원히 반복되도록 짜인 구조 속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누구의 일인지 말해지지 않는 일.
그 이름 없음이 만든 무거운 지속.
그 안에서 수행자는 천천히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오직 반복 자체뿐이다.
그러니 우리가 지친 건
단지 일이 많아서가 아니다.
우리는, 끝나지 않도록 설계된 구조 속에서
그 반복의 무게를 오롯이 홀로 짊어진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가사의 존재』라는 책을 준비하며 쓴 원고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