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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상호 May 25. 2021

스페인식 오믈렛, 토르티아

내가 사랑한 것들 19

19. 스페인식 오믈렛, 토르티아     


요리라고까지 거창하게 부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좌우간 음식을 만드는 행위를 요리라고 한다면, 요리를 시작한 지 어언 2년이 지났다. 집적된 시간의 힘은 무섭다. 나 자신도 놀랄 만큼 제법 이력이 붙었다. 그래도 요리를 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낯설 때가 있다. 음식을 만들고 있는 나는 나와 가장 거리가 멀어 보인 모습이었다. 예전의 나를 아는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변한다. 어쩔 수 없다. 변해야 살아남는다. 십 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장강의 물은 제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 흘러가는 것이다.   


경상도의 장남으로 태어난 나에게 부엌은 일종의 ‘금남의’ 구역이었다. 남자가 쳐다보지도 신경 쓰지도 말아야 할 곳이었다. 그래서 요리와 요리를 둘러싼 설거지 등 일체의 행위는 나와 무관했다.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다. 어쩌다 어머니가 집에 안 계실 때는 나이 어린 여동생이 밥을 차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담한 오빠였지만 그때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교육된 습관적 무의식은 무서운 법이다. 결혼해서는 아내가 그 역할을 맡았다. 그렇게 40년을 넘게 나는 요리와 무관한 남자로 살았다.     


세월이 지나니 이 공고한 의식을 유지하는 데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내는 주말이 되면 늦잠을 잤고 여행을 가면 늦잠을 잤다. 그때마다 나는 곤란해졌다. 주말이라고, 휴일이라고 왜 늦잠을 자야 하는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세상에 절대로 바뀌지 않는 것 중 하나를 들라면 내 라이프사이클이라는 녀석일 것이다. 나는 골수 아침형 인간이다. 늘 일찍, 그것도 정해진 시간에 일어난다. 나도 내가 사이보그가 아닐까 의심할 때가 가끔 있다. 그리고 꼭 아침을 먹어야 한다. 아침을 거르면 체질적으로 약한 내 위가 견디지 못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요리라는 미지의 영역에 대한 도전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 아침 일찍 혼자 숙소 주변의 거리를 헤맨다(어딜 가건 동네 나와바리를 댓바람부터 돌아다니는 건 내 오랜 습관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문을 연 가게를 만난다. 샌드위치라도 팔면 다행이지만 그런 게 없으면 빵과 달걀, 소시지 등을 사 온다. 프라이팬에 달걀과 소시지를 굽는다(여행을 에어비앤비로 다닌 후여서 숙소에서 음식을 만들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 어려워 보였던 일이 생각보다 쉬워서 놀랐다. 눈썰미가 없지는 않았던지 달걀도 제법 알맞게 익었고, 소시지도 태워 먹지 않았다. 그다음부터는 여행을 가면 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게 암묵적인 룰이 되었다. 그렇게 내 요리 역사의 여명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뿐, 일상으로 돌아오면 다시 내가 음식을 만드는 일은 없었다. 내 요리의 역사는 기나긴 잠복기로 들어서게 된다.     


그러다 몇 년 전 작업실을 얻고 혼자 지내게 되면서 내 요리의 역사가 다시 불 지펴질 계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오피스텔에서 지내다 보니 간단한 샐러드나 사 먹는 음식이 주가 되었다. 좁은 부엌에서 불을 피워 무언가를 만드는 건 굉장히 번잡했다. 아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만족스럽지 않은 식사였다. 불만이 쌓여갔지만 마땅한 해결책은 보이지 않았다. 그즈음, 집에서 키우고 있던 고양이 두 마리가 철천지원수처럼 싸우기 시작했다. 늙은 수컷의 비애라고 해야 할까? 젊은 수컷이 성장해 늙은 수컷을 압도하자, 늙은 수컷이 진상을 떨며 자해 테러를 폭주하기 시작했다. 소파를 비롯한 집안 곳곳이 늙은 녀석의 오줌 테러로 흥건히 젖어 들며 치매 환자의 집에서 나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녀석이 음식까지 거부하며 말라가자 도저히 버틸 수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결국 두 녀석을 떼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아내는 첫째를, 나는 둘째를 데리고 각자 따로 살게 된 이산가족이 되었다. 둘째를 데리고 오게 되면서, 어쩔 수 없이 베란다가 있는 아파트로 작업실을 옮겼다. 고양이를 베란다가 없는 곳에서 키울 수는 없었다. 그러면서 넓고 쾌적한 부엌이 생겼다. 인생은 정말 새옹지마가 아닌가? 절대적으로 나쁜 일은 없다. 두 녀석이 싸워서 우리 가족이 이산가족이 되는 참혹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요리를 하게 될 일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좋은 부엌을 그냥 두긴 아까웠다. 그제야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요리를 해볼까? 나는 인생 처음으로 새로운 의욕에 불타올랐다.   

    

어떤 요리를 처음으로 만들어볼까? 처음 도전하는 자에게 작은 거라도 성공하는 게 동기 차원에서 중요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첫 실패는 데미지가 크다. 첫 주식 투자에서 실패한 사람이 주식 시장으로 다시 돌아오기는 어렵다고 한다. 작더라도 성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지만 만들어서 그럴싸해 보일 것. 늘 접하는 음식이 아니지만, 아침에 먹기에 적절할 것. 그런 조건에 부합하는 요리를 찾다가 토르티아가 생각이 났다. 마드리드에서 묵었던 숙소 근처 골목의 작은 타파스 바. 타파스는 식전에 먹는 가벼운 음식이나 안주를 말하는데, 그 집은 아침에 타파스를 팔았다. 거기서 처음으로 피자 모양으로 슬라이스된 토르티아를 먹었다. 감자와 계란이 듬뿍 들어간 폭신한 스페인식 오믈렛. 그 아침에 먹었던 푸근한 만족감이 떠올랐다. 게다가 별 거 아니지만 왠지 고급스러워 보인다. 이름도 그럴듯해 보이는 ‘토르티아’ 아닌가? 그래! 토르티아를 만들어 보자.     


유튜브가 큰 도움이 되었다. 유튜브로 요리를 배우면서 나는 유튜브를 애정하게 되었고 급기야 프리미엄 구독까지 하게 되었다. 요리는 전 과정이 하나의 예술작품을 만드는 과정과 흡사하다. 재료를 준비하고 잘 가공해서 제대로 차려놓기까지 모든 과정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나는 초심자답게 더듬거리며 레시피대로 입문의 과정을 겪어나갔다. 감자를 깎고 썰었다. 달걀을 깨뜨려 볼에 넣고 풀었다. 소금과 후추를 적당량 넣고 우유를 섞었다. 요리는 순서가 중요했다. 그 과정 중에도 가장 어려운 게 오믈렛을 뒤집는 거였다. 접시로 팬을 막고 한 번에 돌린다. 잘할 수 있을까? 긴장된 순간. 역시 머뭇거리다 반죽이 흘렀다. 형태가 무너진 오믈렛을 보며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이럴 때 비관하면 안 된다. 나는 낙천적인 사람인 모양이다. 주걱으로 다시 모양을 잡았더니 어느 정도 복구할 수는 있었다. 그 토르티아를 만드는 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맛보는 순수한 몰입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그 토르티아는 내 요리의 역사에서 제대로 만든 첫 작품이 되었다. 아내는 그 토르티아를 맛있게 먹었다. 정말로! 설마 그 정도로 맛있을 리 없었겠지만, 고객의 반응이 좋아서 나는 계속 의욕을 가지고 도전할 수 있었다. 몇 달 동안 거의 매주 토르티아를 만들다 보니 어느 정도 숙련공이 되어갔다.      



맥락은 통하는 법이다. 하나의 요리를 잘하게 되면 다른 요리도 크게 어렵지 않게 잘하게 된다. 토르티아를 시작으로 2년 동안 수많은 요리에 도전했다. 윈난 시장에서 먹었던 동파육, 맨하탄 유태인 가게에서 팔던 이탈리안 수프, 도쿄에서 먹었던 카레, 아테네에서 먹었던 생선 요리, 비엔나에서 먹었던 등갈비 요리, 우크라이나 양배추 만두 등등. 여행을 하면서 주로 현지에서 내가 좋아했던 음식들을 하나하나 만들어나가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하기 어려웠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어떤 창작의 과정과 비교해도 못지 않을 집중과 만족의 순간들이었다. 그 사이에 각종 소스와 허브들이 찬장을 채워 갔고 냄비와 팬, 칼, 전기 오븐이 일상의 도구로 자리잡아 갔다. 가끔은 친구나 지인들을 불러 내가 만든 요리를 함께 먹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줄 때 드는 만족감도 생활의 큰 힘이 되었다. 무엇보다 요리를 하고 나자 인생에 또 하나의 자신감이 생겼다. 어디에 가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심지어 은퇴를 하고 나서 작은 식당을 열어서 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근자감’도 생겼다.  


       


내가 요리를 하게 된 과정을 더듬어보아도 인생은 역시 알 수 없는 요지경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떤 일도 나와 관련 없는 일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오히려 도전의 기회로 삼는다면 인생이 풍요로워질 수 있다. 요리를 배우면서 다시 인생을 배운다. 토르티아는 인생에 새로운 즐거움을 준 커다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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