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것들 5
인간은 어떤 꿈을 꿀 수 있는가? 또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가?
2012년 9월 어느 오후. 인디언 서머로 시작한 더운 열기가 가라앉을 무렵 나는 할리우드의 집을 나섰다. UCLA의 방문학자 Visiting Scholar 자격으로 온 LA 생활이 어언 한 달이 지나고 있었다. 선셋대로를 타고 서쪽 말리부 해변까지 낡은 캠리를 타고 달렸다. 이 길은 전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사치스러운 길 중의 하나일 것이다. 뚜껑을 연 클래식한 컨버터블이라면 제격이었겠지만, 나는 중고 캠리로도 만족했다. 누가 뭐래도 길은 아름다웠고, 나는 시간만은 풍족한 부자였다.
대로 변에 끝없이 늘어선 키 큰 야자수 사이로 이름 모를 꽃과 식물들이 울창한 베벌리 힐스의 집들이 이어졌다. 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LA는 300킬로 너머의 다른 주에서 송수관을 통해 물을 공급받는다. 당연히 급수제한이 있지만, 부자들의 집에서는 연신 스프링쿨러가 돌아가고 집집마다 숲이 자란다. LA에서는 싱싱한 나무들이 자라는 곳이 부자 동네라는 말이 있다. 슬럼가를 가보면 가로수들도 말라 죽어 간다. 슬프게도 LA에서는 빈부 격차가 자연에서도 드러난다.
UCLA를 지나면서 내리막길이 시작되고, 조금씩 베벌리 힐스보다는 소박한(?) 집들이 보인다. 언덕 아래를 내려가면 산타모니카 해변이다. 여기서 선셋대로가 끝난다. 서핑하는 젊은이들로 가득한 드넓은 캘리포니아의 바다가 펼쳐진다. 나는 해안도로와 만나는 교차로에서 차를 오른쪽으로 틀었다. 거기서 조금만 더 달리면 말리부 언덕에 자리한 게티 빌라가 나온다. 길은 낯이 익었다. 게티 빌라는 보름 전쯤 다녀갔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열리는 저녁 공연을 보기 위해 다시 온 것이었다.
게티 빌라는 세계 최고의 갑부였던 폴 게티가 남긴 미술관이다. 사람이 넘치게 돈이 많으면 무엇을 할까? 각자 다르겠지만 그는 미술관을 지었다, 그것도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독특한 건물로 된. LA에서 가봐야 할 곳 단 한 곳을 고르라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게티 빌라를 고를 것이다. 역시 취향의 문제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나는 촬영차 또는 여행으로 고대 문명의 유적지 대부분을 가보았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중국, 그리고 고대 마야. 나는 그 모든 곳들의 낡고 오래된 돌무더기와 흙더미 속에서 깊이를 모를 아름다움을 느끼고 전율했다. 필멸하는 존재인 우리는 영속적인 무언가를 남기고 싶어 한다. 조각과 조형물로 형상화된 그 절절한 염원 속에 인류 문명의 애처로운 아름다움이 있지 않을까? 게티 빌라는 그 애절한 염원의 집합체이다. 그래서 아름답다.
폴 게티는 석유 개발로 세계적인 거부가 되었는데, 질릴 정도로 보기 드문 구두쇠이기도 했다. 유괴된 손자의 몸값을 지불하지 않아 손자의 귀가 잘린 엽기적인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이 될 만큼 유명하다. 이렇게 보면 모질고 지독한 인간이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예술의 애호가이자 옹호자였다. 그가 뜨겁게 사랑한 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역사와 예술품이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집요하게 고대 그리스 로마 예술품을 사들인 컬렉터였다. 그것은 그의 인문학적인 관심과 철학에서 나온 집착적인 애정이었지 돈을 보고 매집을 한 행위는 아니었다. 이런 인간의 양면성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의 꿈은 그가 평생 수집한 고대 그리스 로마의 예술품들을 전시할 제대로 된 전시관이었다. 그는 말리부 계곡에 위치한 어마어마한 넓이의 스페인풍의 장원을 1945년에 사들였다. 그때 이미 머릿속에 자리 잡고 있었던 건 빌라 데이 파피리 Villa dei Papiri.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땅속에 묻혔다가 1775년 우연히 발견된 고대 로마의 대저택이었다. 농부들이 우물을 파다 발견한 폐허의 유적이 그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는 이 장원에다가 빌라 데이 파피리를 완벽하게 재창조하기로 했다. 어마무시한 야심이었지만, 이미 로마와 나폴리 근교 바닷가에 있는 고대 로마 빌라들을 사서 옛날 모습 그대로 복원하기도 한 그였으니 그렇게 놀라운 결정은 아니었다. 아마 평생 그의 머릿속에 들어있던 꿈이 아니었을까?
‘나는 어디와도 다른, 내 자신이 직접 가보고 싶은 미술관을 만들고 싶었다. 내가 수집한 예술품들이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을 만한 곳. 폼페이의 폐허 외에는 지상에 이런 곳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생전의 그의 말 속엔 자신의 집요한 꿈을 향해가는 한 인간의 오만한 결기가 보인다. 1976년 그가 죽은 후 게티 빌라는 대중에게 개방되었다. 예약만 하면 누구나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물론 주차료는 별도이지만.
작열하던 태양은 말리부 바다 아래로 물러나고 연보라색의 구름이 수평선으로 올라왔다. 낮 동안의 관객이 모두 빠져나간 다음, 공연 티켓을 가진 사람만 따로 입장할 수 있었다. 사이프러스 숲으로 된 진입로를 따라 걸어가는 동안 선선한 바닷바람이 몸을 감아왔다. 빌라 내부로 들어서자 정적이 거대한 공간을 채웠다. 어둠이 내리고 등으로 밝혀진 대저택은 낮과는 다르게 또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번잡한 낮의 시간이 물러나자 실내의 예술품들과 정원의 조각들이 차분하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공연이 시작하기 한 시간 전 호젓하게 사람 없는 전시관과 회랑과 연못과 이름모를 나무들로 가득한 남국의 숲을 황홀하게 걸어 다녔다. 그렇게 온전히 몰입하는 예술적 체험도 드물 것이다. 아마 생전의 게티도 혼자서 이렇게 다녔으리라. 자신이 모으고 창조한 세계 안에서.
야외극장은 고대 폼페이의 유적에서 발견된 그대로의 모습을 재현했다. 어두운 밤, 별빛 아래에서 고대 그리스의 비극 <헬렌>이 펼쳐졌다. 에우리피데스의 <헬렌>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공연은 흥미로웠다. 현대적인 의상을 입은 배우들은 건물 안에서 등장해 건물 뒤로 사라졌다. 지붕 위에서 나와 건물 아래로 사라지기도 했다. 각색은 경쾌했고 발랄했다. 모던 댄스와 노래도 가미되었다.
나는 몇천 년 전 고대 아테네와 로마의 시민들이 그랬듯 별빛 아래 야외극장의 돌계단에 앉아 눈 앞에 펼쳐지는 공연을 보고 있었다. 그리스 비극은 잔인하다. 사람들은 밤의 별빛 아래에서 연극을 보며 인간의 운명과 고통에 대해 같이 아파하고 공감하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슬픔은 강하다. 한바탕 울고 나면 다시 일어날 힘을 얻는다. 그리고 또 내일의 일상을 살아간다.
늦은 밤 선셋대로로 돌아오는 길은 고요하고 적막해서 아름다웠다. 서늘한 바람과 밤꽃 냄새만이 창문을 연 차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되도록이면 천천히 차를 몰았다. 게티라는 한 인간이 만든 거대한 꿈의 블랙홀에서 되짚어 나오기는 쉽지 않았다. 빛을 포함한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막강한 블랙홀의 중력. 내 영혼도 그의 중력장안으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갔었다. 언젠가는 모든 것이 사라질테지만 이날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밤 이후 나는 떨칠 수 없는 한 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인간은 어떤 꿈을 꿀 수 있는가? 또 어떤 꿈을 꾸어야 하는가?
ps. 게티 빌라는 매년 9월 한 달 동안 야외 극장에서 그리스 고전 비극을 상연한다. 그 기간 LA를 방문한다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게티 빌라는 무료이지만 저녁 공연은 유료이다. 당연히 주차료도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