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처음으로 너무 많이 먹어서 죽는 사람이 못 먹어서 죽는 사람보다 많고, 늙어서 죽는 사람이 전염병에 걸려 죽는 사람보다 많고, 자살하는 사람이 군인, 테러범, 범죄자의 손에 죽는 사람보다 많다. 21세기 초를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은 가뭄, 에볼라, 알카에다의 공격으로 죽기보다 맥도날드에서 폭식해서 죽을 확률이 훨씬 높다.
호모 데우스(Homo Deus) / 유발 하라리
유발 하라리는 저서 ‘호모 데우스’에서 중세에서 근대에 이르는 종교·이념 전쟁이 줄어들고, 과학 기술이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여 기아, 역병, 전쟁으로 죽는 일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불멸, 행복, 신성을 꿈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죽음이 더 이상 인간에게 필연적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꿈을 꾸게 된 것이죠. 실제로 꾸준히 기대 수명은 늘어왔습니다. 우리나라 평균 기대수명은 2009년 80세에서 2018년 82.7세로 늘어났습니다. 심지어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TIME)’은 2015년 “올해 태어난 아기는 특별한 사고나 질병이 없는 한 142세까지 살 수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지요. 현재 인간의 평균 기대수명 80년보다 여러 가지 의학 기술의 발전으로 1.77배 더 오래 살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현대인은 1만 년 전 사람과 유전학적으로 거의 달라진 점이 없음에도 생체 기관의 능력은 몰라보게 향상되었습니다. 평균 체형도 커졌지요. 키가 커졌고 두뇌도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도록 진화했습니다. 그 배경에는 과학과 의학의 발전이 있지요. 음식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게 해주는 전기와 냉장고가 발명돼 많은 질병을 예방했고 살균과 정수, 폐수 시설도 장수에 도움을 줬습니다. 충돌 전에 에어백이 터지는 자동차 등으로 사고사 위험도 전보다 줄어들었습니다. 망가진 장기를 줄기세포로 재생하는 연구는 이미 여러 분야에서 활용할 정도로 진화된 상태입니다. 백신 개발로 천연두와 같은 전염병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기도 했지요. 물론 신종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예상치 못한 고난을 겪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요. 자, 앞으로 우리를 구원해 줄지도 모를 몇 가지 기술을 소개해 보겠습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개념도 / ⓒ European Scientist]
2020년에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크리스퍼(CRISPR)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인공 효소로 유전자의 잘못된 부분을 제거해 문제를 해결하는 유전자 편집(Genome Editing) 기술을 말합니다. 즉, 손상된 DNA를 잘라내고 정상 DNA로 갈아 끼우는 짜깁기 기술로서 사이언스(Science) 저널에 ‘2015년 주목할 만한 기술’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크리스퍼 기술은 첫째, 원하는 타깃 유전자를 자를 수 있습니다. 둘째, 원하는 유전자를 넣을 수 있고, 셋째, 유전자 서열을 뒤집을 수 있습니다. 이로인해 에이즈(HIV : Human immunodeficiency virus), 혈우병, 헌터병 등 다양한 희귀질환에 획기적인 치료법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며 후손에게 유전병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지요. 심지어 비용도 획기적으로 낮아지고 있습니다.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임상 시험 결과가 잇따라 나오면서 시장의 기대감도 높아지는 추세입니다.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4조2,000억원 규모인 유전자 교정 시장은 2023년 8조 3,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으로 이 중 절반 이상이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시장으로 밝혀졌습니다.
반면 크리스퍼 기술 발전을 우려하는 관점도 있습니다. 돌연변이 유전자를 정상 유전자로 바꾸는 일이 가능해졌으니, 정상 유전자를 더 우수한 수준으로 향상시키려는 유혹이 생길 것이라는 측면입니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의 유전자를 편집해서 심장병이나 알츠하이머병, 당뇨병, 암 같은 질병에 걸릴 위험을 낮춰야 할까요, 아니면 힘이 더 세고, 인지 능력이 더 높은 특성을 부여하거나 눈이나 머리카락 색상 같은 신체적 특성을 선택해주어야 할까요. 완벽함을 향한 욕구는 인류에게 거의 본능이나 마찬가지지만, 일단 이 위험한 경사를 미끄러져 내려가기 시작하면 우리가 도착하는 곳은 처음 생각과 전혀 다른 곳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니퍼 다우드나(Jennifer Doudna)와 새뮤얼 스턴버그(Samuel Sternberg)는 저서 ‘크리스퍼가 온다’에서 다음과 같이 역설합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현대 인간이 출현한 지 거의 10만 년이 흐르면서 ‘호모 사피엔스’ 게놈은 무작위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라는 두 힘으로 형태를 갖췄다. 이제 처음으로 우리는 현재의 인간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의 DNA도 편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즉, 우리 자신의 진화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 지구 생명체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다. 인간의 지식을 넘어서는 일이다. 우리는 불가능하지만 꼭 답해야 하는 질문에 대면하게 된다. 스스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사실은 괴팍한 우리는 이 거대한 힘을 갖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다른 이야기는 노화의 비밀, ‘텔로미어(Telomere)’입니다. 염색체의 말단 소체인 텔로미어는 오래전부터 생명 연장의 비밀을 풀 열쇠로 과학계의 주목을 받아왔지요. 염색체의 유전 정보를 보호하는 텔로미어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짧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세포 분열이 거듭되면서 짧아진 텔로미어가 세포에 쌓이는 건 노화의 특징 중 하나인 셈이죠. 그런데 스페인 과학자들이 살아 있는 생쥐의 텔로미어를 대폭 연장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같은 종의 보통 생쥐보다 훨씬 긴 텔로미어를 가진 생쥐를 생명공학 기술로 만들어낸 것이지요. 이렇게 텔로미어가 길어진 생쥐는, 암과 비만이 덜 생기고, 건강한 상태에서 더 오래 사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가장 주목할 부분은, 생쥐의 유전자를 전혀 조작하지 않고 수명만 연장했다는 점인데요. 현재 다양한 컨퍼런스나 세미나에서 관련 이슈가 뜨겁게 다뤄지고 있다고 합니다.
[텔로미어 / ⓒ 카보네이트 TV]
텔로미어 검사는 소량의 혈액만으로 간단하게 이뤄지며, 텔로미어 유전자 길이에 대한 정보를 통해 노화상태 및 노화속도를 확인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텔로미어의 손상을 막기 위한 다양한 치료법이 등장하게 된다면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킬 수도 있을 만큼 거대한 메가 트렌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더하여 최근에는 유전자 검사 기술도 보편화되어 직접 병원에 가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손쉽게 저렴한 비용으로 본인의 유전자 검사를 의뢰하고 매우 다양한 질환의 가능성에 대해 분석 보고서를 받아볼 수 있게 되었지요. 소개해드릴 서비스는 ‘23andMe’라는 미국 캘리포니아 서니 베일에 본사를 둔 개인 소유의 유전체 및 생명 공학 벤처회사입니다. 사람의 세포는 23개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는 뜻에서 회사 이름이 23andMe인데, 염색체를 구성하고 있는 DNA 검사를 통해 내 조상의 기원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내가 유전적으로 취약한 질병이 무엇인지 등을 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일반 검사는 99달러인데, 이것은 조상의 기원을 알려 주는 것 입니다. 내 피가 순수한 한국 혈통인지, 몽고의 침입의 영향을 받은 것은 없는지, 수천 년 전의 다른 종족의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을 알려 줍니다. 이 검사를 하고나면 많은 사람들이 소위 ‘멘붕’에 빠진다고 하죠. 대부분이 순수 혈통이라 여겼던 한국인조차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세계 인종의 피가 섞인 혼혈종임을 종종 확인하게 된다고 해요. 그도 그럴것이 역사적으로 인류는 지속적으로 섞여 왔습니다. 지금이야 선으로 나뉜 국가라는 이미지 안에서 동일한 정체성을 교육받고, 주장하며 살지만 실상 이전에는 수많은 전쟁과 교역, 개척을 통해 서로의 땅을 밟고, 또 정착하고 이동하는 등의 ‘섞임’이 많았을 것이라는 거죠. 조만간 저도 제 뿌리 찾기에 도전해볼 생각입니다.(웃음)
정밀검사에 해당되는 199달러 서비스는 훨씬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고 합니다. 내가 유전적으로 취약한 질병이 있는지, 나중에 알츠하이머나 치매에 걸릴 확률은 어느 정도인지, 나의 수면 건강은 어떤지, 유전적으로 청력을 비롯한 신체의 잠재적인 문제는 어떤 것인지 등을 보고서로 만들어 제공 한다고 하는데, 이러한 보고서는 우편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23andME 사이트에서 조회하면 됩니다. 서비스를 신청하고 좀 지나면 침을 뱉으라고 튜브로 된 키트를 보내오는데, 그 키트에 침만 뱉어 보내면 되는 매우 간단한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서비스가 생겼네요. 유후(YouWho)라는 곳인데 멀리 미국까지 보내지 않아도 간단히 혈통 찾기가 가능하겠군요.
[ⓒ 23andME(23andme.com)]
이렇게 글로벌 시장에서 DTC(Direct to Customer) 유전자 검사 서비스 시장은 매우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내에서 DTC 유전자 검사가 가능한 대상은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검사할 수 있는 개수가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 등 12종에 불과합니다. 암이나 치매 등 질병과 관련된 약 120여종의 유전자 검사를 위해서는 직접 병원을 방문해야 허용되죠. ‘풀 시퀀싱(Full Sequencing : 전체 염기서열 분석)’이라 불리는 유전자 전체 분석도 병원에서만 가능한 형편입니다. 23andME 서비스를 이용하면 무려 150가지 이상의 검사 결과를 국경에 제약 없이 간편하게 받아볼 수 있는 시대인데 말이죠. 최근 인천 송도 지역을 중심으로 정부가 실증특례를 허용하면서 총 25종의 검사를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세계 시장에 비해 갈 길은 멀지요. 5G 네트워크와 최신 스마트폰이 일반화 되었지만, 국내 원격의료 수준은 시범사업이 처음으로 진행된 20년 전과 비교해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은 참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다만 금번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한시적으로 사용자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게 되면서 점차 도입에 대한 인식도 바뀔 수 있으리라 기대해봅니다.
구글의 모기업이죠, 알파벳의 광폭 행보도 놀랍습니다. 자회사로 설립한 바이오기업 ‘칼리코(Calico)’는 안티에이징을 통한 생명 연장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기업인데요, 노화의 근본 원인을 알아내어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하는 것을 목표로 2013년 9월 13일에 설립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매년 수조원이 넘는 연구비를 쓰고 있지만 그들의 연구성과가 언론에 보도되거나 외부에 공식적으로 발표된 적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인간 수명에 관한 연구이기 때문에 불필요한 논쟁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일부 학회를 중심으로 알려진 사실 가운데 칼리코에서는 효모, 선충, 벌거숭이두더지쥐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알려졌습니다. 특히 벌거숭이두더지쥐에 대한 연구가 흥미로운데 이 동물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노화가 거의 진행되지 않고 질병에 걸릴 확률도 거의 없다고 알려졌습니다.
[벌거숭이두더지쥐 / ⓒ namuwiki]
이 쥐의 수명은 약 35년으로 다른 쥐에 비해 10배 이상 길며(사람으로 치면 800세 정도) 암에 걸리지도 않고, 통증도 거의 느끼지 않으며 산소 없이도 18분이나 생존할 수 있다고 밝혀졌죠. 정말 놀라운 생명력입니다. 연구원들은 벌거숭이두더지쥐가 DNA나 단백질 손상을 바로잡는 능력이 탁월하고 나이가 들어도 그 능력이 계속 유지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이 쥐의 혈액과 분비물을 분석해 구체적으로 어떤 물질이 수명과 관련이 있는지를 밝혀낼 계획이라는군요. 인공지능 선두 주자답게 바이오 분야에서 인공지능 기술 활용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늘 죽음과 함께 하고 있고, 이것은 불가항력이며 필연이었는데 아마도 불멸의 꿈을 정말 이룰 날이 올 수도 있겠다는 희망도 가져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니 참 놀라울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