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으로 보이는 4장의 X-ray와 푸른 빛에 컬러 포인트로 보이는 4장의 인공지능 판독물 ⓒ Lunit
위의 사진은 인공지능과 헬스케어가 결합했을 때 얼마만큼 폭발적인 성과를 가져올지 가장 잘 설명해주고 있는 사례입니다. 맨위 왼쪽 흑백 사진처럼 X-ray로 2016년에 폐암이 확정된 환자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환자는 매년 건강검진을 해 왔는데요. 2015년까지는 일반 X-ray(흑백 사진)로 아무 소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를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해 판독(각 흑백 사진의 오른쪽 사진)해보니 무려 2013년에도 폐암 가능성을 의심케 하는 진단(16%)을 내놓습니다. 게다가 눈으로 식별이 가능하게 판독합니다. 이 환자가 이 기술의 수혜를 입었다면 초기에 암을 발견하여 아주 간단한 조치로 완치가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기술은 놀랍게도 국내 의료영상 인공지능(AI) 스타트업 ‘루닛’이 개발한 흉부 X선 영상 보조 소프트웨어인 ‘루닛 인사이트’입니다. 루닛 인사이트는 딥 러닝 기술이 적용된 흉부 X선 판독 보조 AI로 보통 X-ray를 찍으면 인간 의사가 이를 판독하는데, 루닛 인사이트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영상을 분석해 의사 판독을 보조하게 됩니다. 폐 결절로 의심되는 위치를 색상으로 표시하고, 폐 결절 존재 가능성을 확률 값(%)으로 나타내 의사 판독을 돕습니다. 크기가 작거나 다른 장기에 가려져 있는 결절을 놓치는 것을 막을 수 있고, 폐암 조기 진단율을 높일 수 있게 되지요. 비 영상의학 전문의 폐 결절 판독 정확도를 영상의학 전문의 수준으로 향상시키는데도 도움을 주게 됩니다. 루닛 관계자는 “루닛 인사이트는 흉부 엑스레이 영상에서 폐암 결절, 결핵, 기흉, 폐렴과 같은 주요 폐 질환을 검출해 내는데, 진단 정확도는 97%에 이른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는 사례도 있는 반면, 기업 비즈니스 논리가 앞서 실제 기능보다 부풀려진 허상도 존재합니다.
한때 인공지능 의사가 등장했다며 떠들썩하게 여기저기서 앞 다투어 보도했던 일이 있었지요. IBM의 ‘왓슨(Watson)’이었는데요, 제가 직접 그 현장, 인천에 위치한 가천대 길병원에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2016년 12월 초 왓슨이 국내 처음으로 길병원에 들어왔을 때 암환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구세주나 다름없는 것처럼 보였죠. 당시 알파고와 이세돌, 세기의 대결에서 시작된 인공지능 열풍과 맞물리면서 왓슨은 의료계의 혁명을 불러올 것처럼 보였습니다. 왓슨이 의사보다 더 뛰어난 실력을 보이면 어쩌나, 의사의 일자리는 없으지는가 하는 등의 부질없는 고민을 하기도 했죠.
국내 최초로 왓슨을 도입한 길병원은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했고, 결국 서울로 향하던 암 환자들의 발길을 돌려 세웠습니다. 다음 해인 2017년 대구가톨릭대병원, 건양대병원, 조선대병원, 전남대병원 등도 가세했습니다. 심지어 중앙보훈병원도 왓슨을 병원에 들여놓으면서 왓슨의 전성시대는 계속될 것만 같았지요.
그러나 장밋빛 전망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지나치게 기술적 환상에 눈이 멀어 맹목적 수용을 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왓슨을 만든 IBM에서부터 균열이 시작됐지요. 2018년 5월 IBM은 왓슨을 실패한 사업으로 규정하고 사업팀을 구조조정하기에 이릅니다. 전문가들은 IBM이 왓슨을 시장에 내놓았을 때 성급했다고 지적했지요. 근거기반의 의학적 치료 옵션을 제공하려면 인큐베이터 단계에 더 머물러 있었어야 했다는 것입니다.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 암센터에서]
왓슨을 바라보는 의사들의 시선 역시 곱지 않았습니다. 효능은 떨어지고, 보험 적용도 안 될 것 같고, 의사와의 의견 불일치도 많고, 무엇보다 우리나라 환자 데이터와도 맞지 않는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였습니다. 혹평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평가가 좋지 않은데 특히 의사와의 의견 일치율이 떨어지는 점은 치명적인 듯 보였습니다.
실제 왓슨의 시연을 지켜보는 동안 프레젠테이션을 하던 의사 분 역시 왓슨의 효용에 관해 크게 기대하지 않는듯한 모습도 기억도 나네요. 국내 환자 데이터를 쓰지 못하는 상황에서 미국 본사에 있는 데이터만 갖고 환자를 분석해 내놓는 처방이 의사들과 썩 맞아 떨어질리 만무하겠죠.
왓슨은 분명 의료계에 의미 있는 성과를 내기도 했습니다. 첫 시작을 개척했으니까요. 현재 왓슨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더 나은 기술을 장착한 회사들이 준비를 마치고 출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올림푸스, 지멘스 등 외국계 실력있는 기업들이 그렇죠. 이렇듯 의료 시장에서 AI 기술이 더욱 활발하게 접목될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또한 놀라운 성과를 가져올 것도 확실하게 기대되는 점입니다. 다만 지나친 마케팅 경쟁으로 기술의 허구성을 키워 의료 소비자를 현혹하는 일은 없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