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속 한 줄기 빛 같은 스윗한 승객들 때문에 맑은 마음이다
결국 기억에 남는 건 목적지나 여행이 아닌 여정 중 사람들과의 연결과 그 따뜻한 느낌이다.
목적지는 어디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맡은 승객이 11명 정도 있었는데 맨 뒷 줄 창가에 앉았던 승객이다. 아마 비즈니스 클래스 승진 후 첫 달 비행이었던 나는 바쁘게 왔다 갔다 하는데 다른 승무원보다는 뭔가 느리고 어색했다. 첫 번째 밀 서비스를 시작하는데 첫 줄부터 시작한다. 맨 뒷줄의 승객은 내가 앞에 승객들을 다 서빙 한 후에야 도달할 수 있었다. 열심히 아뮤즈 부시, 애피타이저 그리고 메인을 서빙했다.
그리고 디저트를 서빙하는데 그 승객이 나에게 밥은 먹었냐는 것이다. 그래서 아직이라고 하니 언제 먹고 무엇을 먹냐고. 내가 승객에게 주로 하는 질문이지 받는 질문은 아니었다. 일단 서비스가 먼저 끝나면 먹을 것 같다고 하니 받은 디저트를 먹지 않고 나에게 주겠다고 먹으라고 하는 것이었다. 순간 너무 웃김과 동시에 그 마음이 너무 스윗했지만 괜찮다고 드시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랜딩 전 한 승객 한 승객에게 냅킨과 메시지가 숨겨진 초콜릿 박스를 나눠준다. 그런데 그 승객이 그 초콜릿 박스를 냅킨에 싸서 돌려주며 나에게 제발 초콜릿이라도 먹으라는 것이었다. 맨 뒷줄에 앉아 내가 앞에서 쉴 새 없이 일하는 것을 보고 당 떨어졌나 걱정이 되었던 것일까.
나는 또 너무 웃겼다가 그 따뜻한 마음에 감동이었다. "제가 당신의 마음만을 받을 테니 제발 승객분이 드세요. 이 초콜릿 정말 맛있고 그 안에 랜덤으로 카타르항공에서 전하는 메시지도 들어있어요. 제가 그 마음을 받아 갤리에 가면 남은 것이 있으니 승객분의 마음을 생각하며 꼭 하나 꺼내서 먹을게요. 약속해요." 그런데 승객이 주려던 것은 그 초콜릿 박스뿐이 아니라 냅킨도였다. 사실 그 냅킨에 메시지를 썼다고. 그래서 냅킨만 받아 다이닝 재킷 주머니에 쓱 넣고 나중에 읽어보았다. 다른 승객들처럼 번호를 남긴 것도 아닌 담백한 응원의 메시지였다.
항상 비행 후 나의 다이닝 재킷 주머니 속엔 흥미로운 메시지가 적힌 냅킨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메시지들을 볼 때면 또르르 눈물이 나기도 배꼽 잡는 웃음이 나기도 한다.
십 년 일한 사람도 실수를 할 수 있고 한 달 일한 사람이 오히려 일을 잘할 수 있다.
어떤 할아버지 승객이었다. 나는 해야 하는 다이얼로그와 밀 프리퍼런스 질문들을 빠르게 했다. 그에 대비하게 차분히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말하셨다. 첫 줄의 자리에서 편안하게 즐기셨다. 그런데 드시는 것마다 싹 다 깨끗하게 정리를 해서 내가 클리어하기 편하게 주는 것이었다. 추가로 치즈 플레터를 드실 때는 리넨도 깔지 말고 그냥 옆에 내가 편하도록 놓아도 된다고 했다. 뭔가 버벅거리고 어수선한 나를 배려해 주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다른 승객들을 챙기느라 또 할아버지 승객을 오래 기다리게 한 나 스스로에게 한탄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새 할아버지 승객이 편해졌는지 "제가 이게 몇 번째 비행인데 너무 느리고 익숙하지 않고 실수 투성이에요"라며 걱정 한탄을 했다.
그 할아버지께서 한 달을 비행 한 크루도 일 년 혹은 십 년을 일한 크루도 실수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나에게 너무 잘하고 있다고 했다. 정확히 해 준 말이 기억은 안 나는데 그 뉘앙스였다. 듣는 순간 울컥해서 또르르 흐르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할아버지 승객 덕분에 다시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도 있고 내가 잘하고 있구나 하고 용기를 얻었다. 뭔가 할아버지가 살아온 긴 세월에서 나온 여유와 지혜가 느껴졌고 나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들이 느껴졌다. 나는 처음에 필요한 말만 빨리하려고 했는데 할아버지는 한 템포 늦추고 엄청 정중한 영어로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왜 이렇게 빨리하려고 서두르지? 그러지 않아도 괜찮고 오히려 더 차분하게 일을 할수록 실수를 덜 하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 승객에게 배웠다. 서두를 필요 없이 천천히 느긋해도 되고 실수를 해도 아주 괜찮다는 것이다. 항상 비행에서 새로 조인한 크루들을 만나면 그대로 말해준다. 조급해하지 말고 더 천천히 해도 괜찮다고. 삶에는 속도를 높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들이 많고 속도를 늦췄을 때 생기는 공간은 참으로 아름답다.
바로 어제의 비행에서도 흔들리는 기내에서 와인을 따르는데 와인 잔을 잡아주는 승객. 원하는 밀 초이스가 없는데도 괜찮다는 승객. 접시가 뜨거워 트레이에서 테이블로 못 옮기는 나를 걱정 어린 눈으로 보며 리넨으로 잡아주는 승객. 여행 이야기를 반짝이는 눈으로 해 주는 승객. 음료를 줄 때마다 따봉 귀여운 제스처와 웃음을 날리는 승객들. 그 사소한 배려의 제스처와 눈빛들이 참으로 고맙고 비행이 다채롭고 재밌다. 누군가를 웃게 할 힘이 있다면 그렇게 해라.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더 필요로 한다.
오히려 승객들에게 배려 받고 배우며 오늘도 웃음을 주고 받으며 비행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