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TV를 틀었더니 한 배우 부부가 사부 역할로 프로그램에 나왔다. 결혼 이후에 그들의 삶이 어떻게 긍정적으로 변했는지가 주제였던 것 같은데, 요즘 같은 때에는 그런 내용도 귀감이 될 수 있겠다 싶긴 했다. 인상적이었던 건 결혼하면 온전한 내 편이 생긴다는 말을 듣고, 아이돌 멤버가 펑펑 울었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선망할 만한 외모를 지녔고,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성공했으니 나보다 조건적으로는 훨씬 더 행복에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 살면서 힘든 부분은 다 똑같은 것 같다.
나이가 들면서 으레 자연스럽게 변하거나, 환경이나 주거지가 변하면 다들 그렇다. 친하게 지내던 친구와는 멀어져 만나기 어렵고 점차 말이 통하지 않으며, 평생 나를 알아줄 것 같은 가족도 살다보면 완전히 나를 다 알아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점차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 없어지고, 혼자 고뇌하고 답을 내리며 불안한 마음은 저 깊이 어딘가에 묻어두고 아닌 척 하며 살게 된다. 이래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나보다.
사람 속을 알기 어려운 건 다들 진실을 입에 올리기보다는 하얀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라고 예전에는 생각했었다. 그런데 요즘 주변을 돌아보면 다들 마음 둘 곳이 없는 듯 하다. 어떤 고민을 하는지, 뭐가 힘든지, 왜 힘든지 털어놓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할 때가 있다. 그런데 이런 말을 가족, 친구, 주변 사람에게 하는 것 자체가 민폐라고 하는 게 요즘 추세인 듯 하다. '감정 쓰레기통'이라는 단어가 모두를 행복한 이야기만 해야 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친구를 만나도 힘든 얘기는 밀어두고 즐거운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게 가끔 서글프다.
나도 힘든데 남의 힘든 사연을 받아주는 건 물론 어렵긴 하다. 마음이 힘들면 주저 말고 정신병원에 가보라, 요즘은 그런 게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고 말은 다들 한다. 그렇지만 사실은 다들 아직 사람으로 해결하고 싶어한다. 특히 요즘처럼 사람 간의 만남이 없고 고립된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모두가 무거운 마음을 양 손에 올린 채로 앞에서는 힘들지 않은 척 하지만, 뒤에서는 발을 동동거리고 있지 않나 싶다. 운동이나 취미로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과 마음 둘 곳을 찾는 건 또 다른 일인 것 같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급변할 수록 인간이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숙제는 또 하나 늘어난다. 모두가 무거운 마음을 들고 살지 않을 수 있게, 마음 둘 곳이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