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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고미진 Mar 25. 2022

[주간 고미진]
결혼도 초밥처럼 날로 먹고 싶다?

양재천을 걸으며


몇 년 전 만 50세를 앞두고 나 자신을 다시 정비하고 싶었다. 

그중 하나가 프로필 사진 찍는 것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만 50세가 되기 전에 몸이라도 좀 더 건강하게 만들자는 취지였다.(최근 한국식 나이를 폐지하고, 만 나이로 계산하겠다는 대통령 공약이 있어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하루라도 빨리 2살이 어려지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약 4개월간 헬스장에서 몸만들기를 하였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3번씩 하였지만, 나중에는 거의 매일 운동을 하였다. 근육과 몸의 움직임에 집중하면서 몸을 만드는 과정이 참으로 힘들었다. 중간에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딸들에게 선포를 한 이상 중간에 포기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싫었다. 그래야 나중에 딸들이 쉬이 포기하려고 할 때, 엄마로서 생색을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업무도 하면서 하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끝까지 종주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포기하지 않았다. 과도한 음식조절은 할 수 없었고(일을 해야 된다는 핑계를 됐지만, 나이가 들어서 얼굴살이 너무 빠지면 나이가 더 들어 보일까 봐 조심스러웠다.) 촬영 전 날부터 당일까지 수분조절을 해야 하는데, 그것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냥 몸이 좀 더 건강해지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당시 약 12킬로를 감량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즘 다시 몸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 두꺼운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봄옷으로 갈아입으려니 두툼해진 뱃살에 다시 운동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무슨 일이든지 한 번으로 영원할 순 없는 것 같다.

끊임없이 관리해야 하다니...  



     

그래서 걷는 것부터 시작했다. 사무실 근처에 양재천이 있어서, 점심시간이면 양재천 근처로 달려가다시피 한다. 점심시간이 아까워 김밥이나 샌드위치로 대충 점심을 때우고, 양재천을 막연히 걷는다. 참 행복한 시간이다.


얼마 전 양재천에서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oo초밥집 입구에 재미있는 글귀가 있어서, 한참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문득 ‘결혼도 초밥처럼 날로 먹을 수 있을까?’(수시로 직업병이 발동한다.) 생각하면서 피식 웃었다. 이전에는 사랑해서 결혼했으니 부부관계에서 별다른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애 때 남편이 나를 많이 사랑했으니, 내가 어떤 모습을 보여도 영원히 나를 사랑해 줄 거라는 믿음. 그리고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남편이 척척 알아서 나를 헤아려 줄 거라는 믿음. 그러나 우리 부부에게도 어김없이 권태기가 찾아왔고, 이처럼 지고지순한 불변의 사랑을 믿었던 나의 생각이 지극히 어리석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변호사 업무와 육아 및 집안일까지 정신없이 해야 할 때가 많았다. 

‘왜 남편은 잘 도와주지 않을까?’‘왜 나는 돈도 벌고, 집안일도 하고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그래서 남편한테 따지듯이 요구했다. 그러나 남편은 주변 친구들에 비해서 집안일에 동참하는 편인데 항상 본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마누라가 힘들다는 눈치였다. 최근에야 비로소 내가 원하는 바를 남편에게 정확하게 전달해야 남편이 알아듣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속된 말로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남편에게 요구할 때 말투와 대화법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결혼한 지 25년이나 지나서 이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다니...... 이외에도 우리 부부 사이에 켜켜이 쌓인 해소되지 않은 감정들은 많이 있다. 심지어 이혼상담을 하면서 ‘우리 부부는 어떻게 이혼을 하지 않았지’라고 생각할 때가 있을 정도였다. 우리 부부의 갈등 상황들이, 의뢰인들 이혼사유보다 더 격한 것들도 많은데...


남편과 결혼한지도 25년이나 되었다. 그동안 남편에 대한 불만은 적당히 포기하면서, 남편과 예민하게 부딪히는 지점들을 조금씩 피해 가면서 표면상으로는 평온함을 유지하고자 하였다(각자 고유한 개성과 고집들이 있어서 강하게 부딪히는 부분들을 어떻게 조율해 나가야 할지에 대해서 깊이 고민을 하고 상대방과 조율해 나가는 노력을 하지 않은 채). 


만 50세를 맞이해서 수개월 동안 시간을 들여 몸을 만드는 노력을 한 것에 비해서 남편과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들인 노력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막연히 남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남편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내가 원하는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는, 근육 하나하나 열중했는데 말이다.


아마 대부분의 부부가 이러한 모습일 것 같다. 그러나 평균수명 100세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이전과 달리 은퇴 후에도 부부가 30년에서 40년 이상 함께 살아가야 한다. 그렇다면 부부관계도 중간 점검을 하고, 달라진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관계 개선을 해야 하는데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데는 인색하다.


중장년 부부들이 지금까지의 낡은 부부관계를 들여다보고,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 방법 중 하나인 ‘졸혼’에 대해서 다음 주에 얘기를 이어나가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졸혼이라는 단어를 ‘사실상 이혼’과 동의어로 이해하고 있는데, 원래 ‘졸혼’이라는 단어를 맨 처음 만든 사람은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이다. 저자는 ‘졸혼’을 결혼을 졸업하다-낡은 결혼제도를 졸업하다-의 의미로, 2004년 ‘卒婚時代’라는 책에서 최초로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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