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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고미진 Mar 18. 2022

[주간 고미진]
결혼 이야기 또는 이혼 이야기

영화 [결혼이야기]


# 결혼이야기 혹은 이혼이야기


  지인으로부터 ‘결혼이야기’라는 영화를 추천받았다. 주요 등장인물은 부부로 나오는 니콜(30대로 추정, 드라마 배우이자 연극 배우로 활동하고 있음)과 찰리(뉴욕에서 연극감독을 하고 있음)이고, 헨리(8세)는 이 부부의 외동아들이다. 가사전문변호사를 하고 있으니 업무에 도움도 될 겸 보라고 한 것 같다. 처음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푹 빠져서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는 이미 니콜과 찰리가 이혼에는 합의한 상황을 전제로 시작된다. 이 부부는 이혼한 후에도 친구처럼 지내고 싶을 정도로 최대한 원만하게 이혼하려고 하나, 실제로 이혼이라는 절차를 진행해 가면서 좌충우돌하는 모습을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니콜은 찰리를 만나기 전 LA에서 TV스타였지만, 무감각하게 살아가고 있던 그녀에게 생명과도 같은 활기를 넣어줬던 찰리. 니콜은 찰리와의 첫만남을 이렇게 회상한다. 


섹스보다 대화가 더 좋았고, 섹스도 대화처럼 느껴질 정도로 정신적·육제적 일체감을 느낄 정도로 완벽하게 사랑했다고. 


그런데 왜 이혼이라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을까... 그리고 이혼한 후에도 친구처럼 지내고 싶어하는 이들의 이혼과정은 어떠할까... 


 ‘결혼이야기’보다는 오히려 ‘이혼이야기’라는 제목이 더 적절해 보이나, 굳이 결혼이야기로 정한 이유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니콜의 눈물


찰리는 니콜과의 이혼에 동의하면서, ‘헨리를 위해 서로 가까지 살자.’라고 제안한다. 찰리의 제안에 니콜은 태연한 척, 본인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미 각방을 쓰고 있던 니콜은 자기방으로 돌아가면서 혼자 눈물을 삼키고 흐느낀다. 니콜은 찰리에게 이혼의 책임을 따지지도 않을 정도로, 이미 감정이 굳어진 상황이다.  


그러나 니콜은 변호사 노라와 상담을 하면서 가슴속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리고(심지어 코까지 풀면서, 눈물콧물 흘리면서 자연스럽게 본인의 이야기를 해나간다.) 본인의 감정을 쏟아낸다.

니콜의 눈물은 이 영화에서 상징하는 바가 있다고 본다. 니콜은 찰리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는다. 눈물을 보이지 않는다. 돌아서서 찰리 모르게 눈물을 삼킬뿐. 그러나 변호사 노라와 상담하는 과정에서는 니콜은 자연스럽게 눈물을 흘리면서 본인의 가숨속 이야기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니콜은 찰리와의 결혼생활동안 본인이 원하는 것, 본인이 힘든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적은 있었을까. 이미 수없이 했음에도 포기한 채, 찰리앞에서는 감정의 문을 닫아버린걸까?  

어쩌면 니콜이 찰리에게 수없이 힘든 점을 하소연하고, 본인이 원하는 것을 요구했음에도 찰리는 니콜의 심각성을 모르고 무시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찰리는 니콜이 고통을 호소했음에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건 아닐까? 찰리의 방식대로 니콜을 해석하는데 그친 것 같다. 부부가 가슴속 깊은 곳까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며, 배려했더라면 어땠을까. 니콜의 결혼생활 중 아쉬움으로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다. 물론 확인되지는 않지만 막연히 추측해 볼 뿐이다.



#니콜은 왜 이혼을 결심했을까 


니콜은 변호사 노라에게 찰리와 이혼하더라도 친구로 지내고 싶고, 최대한 원만하게 헤어지고싶다고 한다. 니콜은 변호사 노라와 상담하면서, 찰리와 처음 만났던 당시를 떠올리며 그 당시의 감정에 사로잡힌듯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찰리를 만날 당시 무기력하고 무감각한 삶을 살고 있었는데, 찰리를 만나면서 새로운 생명을 얻은 듯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게 된 니콜은 찰리와의 대화가 섹스보다 좋았고, 섹스도 대화하는 것처럼 느낄 정도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일치된 충만감을 느꼈던 것 같다. 완벽한 사랑을 찾았다고 생각한 니콜. 


니콜은 처음부터 찰리의 인생에 맞춰 살았다. 찰리는 뉴욕에서 연극감독이었다. 니콜은 당시 LA에서 TV에 출연하는 스타였지만, 찰리를 만나면서 뉴욕에서 연극에 출연하면서 계속 뉴욕에서 살아가게 된다. 처음에는 스타 니콜을 보러온다고 생각했지만, 점점 찰리와 극단이 주목받기 시작하고 니콜은 점점 작아지는 느낌이었고, 자신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니콜은 본인의 결혼생활을 ‘내가 살아낸 게 아니라 찰리에게 생기를 더해주게 된 것’이라고 평가한다. 


집안부터 모든 것을 찰리의 취향대로 맞추고 살았다. 니콜의 취향은 잊어버릴 정도로....

친정엄마와 언니가 있는 LA에 가서 생활하고 싶었지만 찰리에게는 씨알도 안먹히고 매번 무시당한다. 

니콜은 찰리가 본인의 의견을 물어보는 것이 어색할 정도로 결혼생활에서 니콜의 의견은 없었다. 그만큼 찰리한테 치우친 결혼생활이었고, 일방적인 관계였다. 


그러던 차에 니콜에게 LA에서 촬영하는 프로그램 섭외(출연료도 두둑함)가 들어왔고, 니콜은 생명줄이 나타난 기분이었고, 마음속으로 ‘그래 나 이런 사람이야’ 외치고 싶을 정도로 존재감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니콜은 남편인 찰리가 꼭 안아주며 응원해주기를 바랐지만, 찰리는 오히려 비웃으면서 샘을 내었고, 출연료 얘기를 듣고는 극단예산으로 쓰자고 제안한다. 니콜은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니콜은 이혼하기로 결심한다. 남편인 찰리는 니콜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기와 별개인 니콜을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더욱이 니콜은 찰리가 무대감독 매리 앤이랑 잔 것도 알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이혼이야기


헨리에 대한 ‘양육권과 헨리를 키울 지역’이 이혼과정에서 주된 쟁점이자 갈등 요소로 그려진다. 찰리와 니콜은 각자 헨리를 곁에서 키우고 싶어한다. 처음에는 서로 원만하게 합의되는 것 같았으나, 여전히 찰리는 본인 입장에서 헨리를 뉴욕에서 키우고 싶어한다. 니콜은 변호사 노라를 만나면서 찰리를 상대로 이혼절차를 진행해 나간다.  

반면 찰리는 이혼과정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장모의 추천으로 버트라는 노변호사를 만난다. 

버트는 본인이 4번 결혼하고 3번 이혼한 변호사이다. 버트는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고 푼돈을 가지고 아웅다웅하다보면 돈과 시간만 다 잡아먹을 뿐이니, 원만하게 합의하는 것이 좋다는 식의 생각을 가진 변호사이다. 다소 불리해지더라도 사실만을 말하고, 이혼과정이 불쾌할 순 있지만 그렇다고 지독할 필요는 없다고 한다.  

그러나 첫 합의 테이블에서 찰리는 버트의 변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노라는 능숙하게 니콜을 위한 변론을 펼치지만, 버트는 원만하게 니콜의 제안대로 합의하기를 권유한다. 


하지만 찰리는 거부한다. 아마도 찰리는 니콜에게 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헨리를 너무나 쉽게 니콜에게 양보해 버리는 모습으로 남기 싫었을 것이다. 결국 찰리는 변호사 버트를 사임시키고, 제이라는 변호사를 선임한다.


찰리는 노라 변호사와 맞붙을 강성인 제이 변호사를 선임하고, 두 변호사는 법정에서 서로에 대해 허위 과장된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예를 들면 찰리 측 변호사 제이는, 자녀에 대한 양육권에 유리하기 위해서 니콜을 자녀를 양육하기에 부족하고 결함이 있는 엄마로 포장한다. 예를 들면, 사실은 니콜이 밤에 와인 한잔씩 먹는 것에 불과한데, 제이는 니콜을 알콜중독자라고 주장하면서, 심지어 술에 만취해 계단을 내려오다가 다쳤다는 식의 허위·과장된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찰리와 니콜은 위와 같은 변론에 충격을 받고, 이건 아니다싶어 둘이서 서로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 직접 만난다. 원만하게 이혼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둘은 켜켜이 쌓인 묵었던 감정들을 토해 내면서 점점 서로에게 가장 상처가 되는 말들을 골라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휩싸인다. 그러다가 찰리는 니콜에게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게 되고, 찰리는 순간 자신의 모습에 충격을 받으면서, 둘은 서로를 껴안고 흐느껴 운다. 


그리고 결국 둘은 합의한다. 니콜이 헨리를 LA에서 양육하고, 찰리가 LA로 와서 면접교섭하는 것으로.


이 영화는 나로 하여금 ‘이혼사건에서 어떤 변호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던져 주었다. 



#결혼과 자아실현


니콜의 결혼이야기를 보면서, 독박육아에 지친 30~40대 여성들의 이혼사건이 오버랩되었다. 몇 년 전 ‘82년생 김지영’도 우리에게 비슷한 화두를 던져주었다.  


괜찮은 결혼(저자 엘리 J.핀겔)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에서 무엇을 추구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고 지적한다.        



위 저자는 미국 결혼의 역사를 실용의 시대, 사랑의 시대, 자아실현의 시대 세 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한다.

1965년경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결혼에서는 부부가 서로의 진정성과 자기발전의 욕구충족을 돕는 자아 표현적인 면을 강조한 자아실현의 시대로 구분지을 수 있다. 

즉 현재는 경제적인 안정과 사랑을 넘어 자아실현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방안으로 결혼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더 고차원의 욕구를 추구하기 시작했고, 이렇게 다양한 욕구를 추구하면서 오히려 결혼은 더 중요성을 띄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니콜은 왜 결혼을 했을까, 결혼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고자 했을까, 과연 니콜은 결혼 전 그런 고민들을 구체적으로 해 봤을까 궁금해졌다.  


한국은 미국과 문화가 다르고, 사회시스템도 다른 점이 많다. 그럼에도 여성들의 자아실현 욕구는 별차이가 없어보인다. 니콜에게 생명줄처럼 여겨진 자아실현 기회는 이제 대부분의 여성들이 결혼제도 속에서 희망하는 것이다. 


찰리의 성공만을 위해 일방적으로 희생하고 살아온 니콜. 어느 한쪽에 치우친 부부관계는 깨지기 쉽다. 결혼을 생각하는 예비부부 또는 결혼생활중인 부부는, 이제부터라도 각자 결혼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고 싶은지, 서로의 자아실현을 지지하고 배려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등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느 일방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의 성장을 통한 결혼생활은, 기대보다 훨씬 큰 만족감과 풍요로움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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