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월하연 Jan 31. 2022

관종과 예술가의 차이점

꾸준함은 통한다.

미디어에 얼굴을 비추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이들이 그렇게 얼굴을 비추며, 즉, 자신을 노출시키며 돈을 번다. 노출이 곧 매출이 되는 직업이 과거의 연예인에 국한되지 않고 연예인과 일반인의 경계를 넘어 점점 확대되는 추세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들은 조회수, 클릭수, 즉 사람들의 관심으로 돈을 번다. 


하지만 약간의 쪽팔림을 감수하면 (겉으로 보이는)노력 대비 벌어들이는 돈이 너무나도 많아 보이기에, 너무나 화려하고 높은 세계에 속해 있는 것 같기에, 너도나도 이 '관심장사'에 참여한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연예인은 말할 것도 없고 유튜버, 인플루언서, 자신의 작업물을 알려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예술 계열 종사자들까지. 물론 나는 이 거대한 마라톤 경기에서 철저하게 관중의 입장이다. 그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볼거리를 소비하면서 적당히 입맛대로 관심을 던져 주거나 그것도 아니면 뒤에서 팔짱 끼고 이러니저러니 품평할 수도 있는 아주 편한 위치다. 


아마 이 관중석에는 분명 나 말고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겠지만, 경기를 지켜보다보면 모종의 이유로 나도 뛰고 싶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면 어느 순간 관중석을 박차고 뛰어나가 구름떼같은 선수 대열 중 한명으로 합류하기도 한다. 적당히 뛰다가 '이건 내 길이 아닌가봐~' 하며 관중석에 들어와 다시 여유를 즐기기도 하고, 뒤에서 설렁설렁 뛰면서도 앞서 나가는 무리들을 관전하는(혹은 동경하는) 선수인 동시에 관중이 되기도 한다. 아마 우후죽순 대열에 합류하는 많은 선수들이 선수인 동시에 관중일 것이다. 


아무튼 나는 아직 관중석 n열쯤에 눌러앉아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기에 선수들이 뛰는 것을 강 건너 불구경마냥 흥미롭게 지켜보곤 한다. 때로는 앞서 나가는 선수들에게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부러워하다가도, 새로 대열에 합류해 고군분투하는 선수들을 내려다보며 혀를 끌끌 차고 왠지 모를 우월감에 젖기도 한다. 이 밑도 끝도 없이 쏟아져나오는 선수들을 보고 있자면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되고 만다. 


나름대로 각자 튀려고 최선을 다한다. 나를 포함한 많은 관중들은 죽어라 뛰고 있는 그들을 잠깐 슥 훑어보고 제멋대로 판단한다. '와, 요즘엔 진짜 너도나도 다 유튜브 하는구나?', '얘는 그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인기가 많지?' '열심히는 하는데 별로 재능은 없어 보이네'등등...(물론 속으로 이런 마음을 품는 것과 대놓고 표현하는것과는 천지 차이다.) 나도 이렇게 오만함에 젖어 제멋대로 판단한 선수들이 많았다. 여러 이유로 마음에 들지 않는 선수들도 많았다. 너무 못생겨서, 흔해서, 실력에 비해 과대평가 되는 것 같아서, 아님 그냥 비호감이어서.


하지만 경기를 지켜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렇게 내 눈밖에 난 선수들이 나를 설득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처음엔 진짜 마음에 안 들고 작업물도 별로였는데, 계속 보다보니 어느 순간 호감이 생기고 찾아보게 되고 결국 응원하게 되는 경우.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이 뭐였냐면 꾸준히 하는거였다


노래가 딱히 내 스타일이 아니고 욕도 많이 먹는데 질리지도 않는지 이 스타일의 노래를 몇년째 내고, 한번 두번 듣다보니 좋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너무 흔한 컨셉의 영상이라 금방 묻히겠거니 했는데 독특하지는 않지만 정성을 가득 들인 영상을 칼같이 자주 올리고, 가끔씩 조금씩 보다보니 어느새 구독을 누르고 있고, 처음엔 그냥 뭘 해도 못생겨서 관심이 안 갔는데 어느 순간 못생긴데도 불구하고 그토록 많은 인기를 누릴 수 있는 비결인 그의 다른 매력들이 눈에 들어오게 되고, 그렇게 '인정'을 외치고 급기야 '리스펙'을 외치게 된다. 그들의 꾸준함이 내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결국 가장 중요한건 '일관됨'과 '꾸준함'이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고 코웃음쳤던 주장들도 일관되게 꾸준히 주장하면 어느 순간 이 문제를 더이상 말도 안되는 소리로 치부하지 않고 진지하게 논의되다가 결국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물론 아주 오랜 시간을 견뎌야 하겠지만, 실제로 세상은 이렇게 바뀌어왔다. 세상에 나를 인정받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누가 더 끈질기냐의 싸움인 것이다. 


비하와 조롱의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 소위 말하는 '관종'과 본인만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는 '예술가'의 차이는 꾸준함이라고 생각한다. 관종이든 예술가든 처음에는 뭔가 어그로를 끌어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이 사회 통념과 맞지 않은 새로운 것을 가지고 나왔을 때 처음에는 관심어린 시선과 비난, 조롱이 쏟아지곤 한다. 관종은 보통 그러고 그만둔다. 욕을 먹으면 '아 이게 아닌가보다.'하고 잠깐의 관심에서 오는 단물만 빨아먹은 뒤 다시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새로운 걸 찾아 헤맨다. 하지만 욕을 먹더라도, 혹은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적어도 계속하는 사람이 있다. 누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때로는 비웃음을 사더라도 계속 꾸준히 독특하고 새로운 것, 자신만의 것을 가져오는 사람. 그렇게 관중들을 하나 둘 설득시키고 전에 욕을 먹던 바로 그 독특함은 그 사람의 개성이자 컨셉이 된다. 그 개성은 예술가로서 그 사람을 먹여살릴 아이덴티티, 때로는 트레이드마크가 되기도 한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관종과 예술가의 차이다. 욕먹을때 그만두느냐, 아니면 버티며 계속 하느냐. 

결국 이 경기는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끝까지 뛰는 사람이 튈 수 밖에 없는 시합이다. 속도나 등수는 큰 의미가 없고 시작점과 결승점이 딱히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냥 도중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트랙에 남아 있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시작할 때 그렇게 구름떼같이 많던 다른 선수들은 알아서 하나둘 경기장을 떠나게 된다. 지쳐서, 미래가 안 보여서, 더이상 열정과 체력이 남아있지 않아서. 애초에 경쟁할 필요도 없었던 것 처럼.

그러면 계속 뛰기만 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경쟁력을 갖추게 된다. 그렇게 오랫동안 남아 있다 보면 관중들의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고. 그게 아마 가장 단순하고 확실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이 경기의 생존 전략이 아닐까.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있어서 글을 쓴다는 것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