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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하연 Feb 23. 2022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20대 초입의 다짐, 내가 되고 싶은 사람 되기.

갓 스무 살, 대학 와서 처음 선택해서 들은 교양 강의는 20년간 담쌓고 지낸 문학 강의였다.

왠지 대학생이라면 이런 교양도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일종의 지적 허영을 부리고 싶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20년간 내 의지로 읽은 문학 작품이 손에 꼽을 정도인, 뼛속까지 이과인 나에게 그 강의는 예상보다 더 난해했다. 뭐 실제로 그렇게 어려운 강의는 아니었고, 그냥 나한테 그렇게 느껴졌다는 뜻이다. 그냥 문학이랑도 안 친한데, 생태 문학, 자연과 인간, 동물권 운동, 에코페미니즘...  생소하디 생소한 개념들이 마구 쏟아져 나와서 중간쯤부터는 거의 강의를 '듣는다'는 것에만 의의를 둔 수준이었다. 당연히 수박 겉핥기 식으로 남는 것 없이 끝나버린 강의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나마 의의를 찾자면 20년간 안 읽던 문학 작품을 몇 권이라도 읽어봤다는 것 정도. 사실 읽으면서도 거의 와닿지 않았으니 내 감상문에 영혼이라고는 한 톨도 들어가 있지 않았음이 뻔했다.(당연히 학점도 별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강의를 들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글 때문이다. 미국의 철학자이자 시인, 수필가인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월든>이라는 책 속의 문장인데, 이 책은 그가 2년간 속세를 떠나 월든 호숫가의 숲에서 혼자 살면서 몸소 체험한 생태적 삶을 담은 수필이다. 두툼한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던 주옥같은 문장이 많았지만, 그중 이 문장이 유독 내 마음에 콕 박혔다.


나는 실험을 통해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다.
인간이 자신의 꿈의 행로에 자신을 갖고 걸어가면서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그대로의 인생을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면, 평소 예상치 못했던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 그는 어떤 것을 버리고 다시 되돌아보지 않게 될 것이다.


 그 당시 나의 상황과 절묘하게 딱 맞아떨어지면서 과장 조금 보태서 한 줄기 빛 같은 문장이었다.

그길로 필사해서 바로 책상 앞에 붙여 놓았다. 내 이정표 삼는 느낌으로.


자신의 행로에 자신을 갖고 머릿속에서 상상하던 그대로의 인생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것.

이 말은 결국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려고 노력하면 그렇게 된다는 의미일 것이다.

혹은 뒤집어 말하면 다음 말로도 의미가 이어진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

이걸 스무 살에 알게 된 나는 정말 행운아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고, 내가 생각한 대로 살려고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물론 인생이 어떻게 생각하는 대로 흘러가겠는가, 나도 원래 '무계획이 계획이다' 주의였다.

하지만 계획은 늘 그렇듯 삐걱거리고 틀어지더라도, 그 과정이 내가 원하고 생각하던 그대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올바른 방향, 내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뒤로 계속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생각해봤다. 다음 질문에 대한 답은 2021년 한 해 동안 한 고민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물론 이 답안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언제든 바뀔 것이고 정해진 것도 아닐 테지만, 여태껏 생각한 모범 답안이나마 적어보기로 했다. 나중에 보면 세상모르는 20대 초반의 희망사항 혹은 욕심으로도 보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 시점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는것 정도는 기록으로 남겨둘 가치가 있어 보인다.


Q. 나는 어떤 삶을 살며, 어떤 어른으로 나이 들어가고 싶은가?


A. 나는 귀감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보통 사람보다 더 넓은 시야, 깊은 생각을 가지고 있어 배울 점이 많은 사람.

그러면서도 항상 배움의 자세를 유지하고, 겸손함을 잃지 않는 사람.

주어진 상황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고, 굳이 드러내지 않아도 그렇게 살아온 티가 나는 사람.

마음에 여유가 있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

같이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하는 것이 편안한 사람.

말 한마디, 글 한줄이 현명하고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

인품과 학식을 갖춘 존경받는 사람.

자기 사람을 잘 챙기는 세심하고 따뜻한 사람.

먼저 나 자신이 굳건하게 중심을 잡아 흔들리지 않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기대 쉴 수 있는 뿌리 깊은 나무 같은 사람.

그래서 내 그늘에 좋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으면 좋겠다.


내 주위로 좋은 사람들이 모이려면 무엇보다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또한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주변 사람들이 '걔 좋은 애야'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인간적으로 좋은 사람.

물론 사람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일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적어도 나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 자식, 선배, 후배, 제자, 스승으로 기억되고 싶다.


지금은 기댈 곳도 없고 나 하나 중심을 잡고 서 있기조차 벅차지만 언젠가는 꼭 그렇게 될 것이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다른 좋은 사람 또한 많이 만나게 될 것이라 믿는다.

나와 결이 비슷하면서도 배울 점이 많은, 내가 되고 싶은 바로 그 '귀감'이 되는 사람을.

내가 믿고 기댈 수 있고, 힘들 때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그리고 내 모든 것을 내보여도 불안하지 않고, 아낌없이 사랑할 수 있는 그런 사람도.


이게 바로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이고, 살고 싶은 인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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