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 Feb 05. 2024

동시에 동시해 - 남호섭 동시들

벌에 쏘였다


목숨 다 바쳐

벌이 나를 깨우쳤다.


기쁘고 슬프고 걱정스럽고

욕심내고 성낸 일

모두


아픔 하나로 사라졌다.


 


 


 



숟가락


먹다 보면

가장 맛있는 순간이 온다


그릇에 담긴

그것과


꼭꼭 씹어 삼키는

나와


끝까지 냉정하던

숟가락이


스르르 녹아

사라지는 순간이 온다


 


 




도둑 할매


툇마루에 올려놓은

오이 세 개가 없어졌다고

속상해하던 할머니가

두양댁 할머니한테 전화하신다.

“우리 집에 왔다 갔나?”

두양댁 할머니 금방 달려온다.

얼굴 한쪽이 일그러져 눈도 감기고

무릎이 잘 펴지지 않아도

걸음은 빠르다.

알아들을 수 없는 혀짤배기소리하면서

가져갔던 오이 꺼내 놓는다.

남의 집 놀러 갈 때면

집집마다 흔해 빠진 깻잎이라도

따다 주는 두양댁 할머니

그 착한 마음 한쪽에 숨어 있던

못난 마음이 오늘 또 들켰다.

우리 할머니 이제는 뭐라고도 안 하고

허허 웃고 같이 재미있게 노신다.

두양댁 할머니 돌아가는 길에

우리 집 모깃불 하려고

베어 놓은 풀더미를 보더니

우리가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한 아름 안고 간다.

잘 펴지지 않는 무릎으로

바쁘게 걸으니 뒤뚱뒤뚱 발걸음마다

초록 풀들이 떨어진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진짜 학교에 다니기 싫었는데 학교를 다녔고, 학교를 벗어나지 못해 선생까지 했다. 그래서 다행히도 학교 다니기 싫고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 심정을 이해하는 선생이 되었다. 한발 더 나아가, 학생과 선생이 ‘사랑


과 자발성’으로 만나 지금 여기서 행복할 수 있는 대안 교육 운동에 작은 힘이나마 보탰다. 그리고 학교에서 다 못 한 말은 시로 옮겼다.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까지 두루 읽을 수 있는 시를 쓰고자 했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공부했고, 그동안 동시집 『타임캡슐 속의 필통』, 『놀아요 선생님』, 『벌에 쏘였다』 등을 펴냈다. 제1회 서덕출문학상, 오늘의 동시문학상 등을 받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동시에 동시해- 서덕출 동시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