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리 Mar 06. 2024

책값

어제 지인에게서 반가운 문자를 받았다.

십여 년 동안 왕래가 없던 언니인데 이번에 책을 내면서 주소를 알려달라고 연락했다. 직접 책을 사보겠다고 했지만, 나의 친필 사인을 미끼로 주소를 받아냈다. 책이 당도할 즈음 그 언니는 외국에 나가 있었다. 그럴지라도 몇 달이 지났는데 내 책에 대한 아무런 말이 없는 게 언니답지 않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예전에 열 편의 동시가 실린 세 사람이 묶어서 낸 책을 받고도 호들갑을 떨며 귀히 여겼던 언니였다. 심지어 연세대 국문과 출신인 언니 남편도 함께 기뻐하며 여태 그 책 이름을 단번에 기억하고 있었다.

지각 문자는 역시 사랑스러운 문장들로 가득했다. 꼭꼭 씹어 읽느라고 오래 걸렸다면서 다음에도 맑은 영혼을 담은 책을 부탁한단다. 그러면서 책값을 보내왔다. 십만 원!

곧장 답장을 보냈다. 내가 무슨 백과사전을 냈냐고, 뭔 돈을 이리 많이 보냈냐고 물었다. 다음 책값까지 보낸 거니 떼먹지나 말라고 덕담을 해 준다.

기필코 복수를 하고 말 거라며 마무리를 지었다.     


책을 내 보니 참 많은 종류의 사람을 경험한다. 생각나는 대로 써보면 첫 번째 유형은 책을 받고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사람인데 생각보다 제일 많다. 너무 섭섭하고 괘씸했다. 내 돈으로 책을 사서 봉투를 구해 주소를 써서 우체국에 가서 책을 보냈는데 잘 받았다는 문자 몇 자 찍어 보내는 수고도 마다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솔직히 나도 그런 적이 많았다.

여기저기 받는 책이 많아서 인사를 하는데 무디어졌다. 내 책을 받은 사람의 대부분이 작가들이고 보니 그들 또한 이런 마음이지 않을까. 하지만 내가 책을 내 보니 입장이 달라진다. 참 비겁하고 편리한 태세전환이다.

이제는 책이 오면 무조건 작가에게 신고한다. 그동안 무수히 많이 받았던 책들에게 아니, 보내준 작가에게 사죄를 보내고 싶다.     


두 번째 유형은 문자로 잘 받았다고 인사를 보내오는 경우다. 이 정도도 살짝 약하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그저 고맙다.

세 번째는 격하게 좋아하며 인증샷까지 보내오는 유형이다. 덩달아 격하게 감사하다는 답을 보낸다. 참말로 고마운 사람이다.

네 번째는 장문의 문자로 뭐가 좋은지 구체적으로 언급해주는 사람들이다. 이건 정말 무지막지하게 고맙다. 진심이 가득 담긴 문장들을 그대로 박제해두고 싶은 심정이다.

다섯 번째는 희망도서까지 신청해주는 의리있는 사람들이다. 그 중에 서울에서 대학 다니는 조카가 있다. 이 녀석은 하루 날 잡아서 도서관을 아주 싹쓸이했다고 한다. 두둑한 용돈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26살짜리 청년인데 생각할수록 기특하고 고맙다. 쓰잘데기없는 내 새끼 셋보다 조카 하나가 낫다고 집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여섯 번째는 바로 전화해서 마음을 표시하는 사람이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열 마디 중 열 마디가 듣기 좋아라고 하는 말이지만 나는 고스란히 듣기 좋게만 받아들인다. 이때 아니면 언제 이런 호사를 누리겠는가.

일곱 번째는 말도 안 하고 책을 구입해서 사인해달라고 불쑥 내미는 사람이다.

나의 악필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상황이지만 얼마나 사람을 감동시키는지.

여덟 번째는 내가 보내주는데도 굳이 한 권을 더 사서 한 권은 남에게 주고 사인이 담긴 책은 자기가 가지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도 잊지 못한다. 마음 씀씀이가 참 어여쁘다.

아홉 번째는 여러 권을 사서 둘레에 나눠주는 사람이다. 나를 위해 지출을 적지 않게 해도 좋을 만큼 함께 기뻐해줘서 정말이지 눈물나게 고마운 사람이다.

열 번째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서평을 써서 게시글로 올려주는 사람이다.

친히 시간을 내어 오로지 내 책을 위해서 글을 쓰고 올려주다니 그 정성이 눈물겹다.     

 

그러고도 또 새로운 유형의 사람들이 더더 있다.

겨우 책 한 권을 냈을 뿐인데 인생을 배웠다고 할 만큼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내가 얼마나 속이 좁은 사람인지도 여실히 드러나는 순간이 많아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다.

십만 원의 공돈이 생겨서 곧장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 이 옷 저 옷 입어봤다.

장바구니에 든 옷만도 거의 백만 원 넘었다. 한참을 그리 놀다가 다 비우고 사이트를 빠져나왔다. 그래도 마냥 즐겁다.      


작가의 이전글 동시에 동시해 - 어린이시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