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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데렐로 Oct 03. 2022

살다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패배를 맛본다

야구 다큐멘터리 <패자부활전>을 보고

며칠 전, 영화채널에서 다큐멘터리를 한 편 보았다. 제목은 ‘패자부활전’이다. 제목만 보고도 짐작할 수 있는 내용들이 있다. 승부의 세계에서 패배한 후 다시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맞다. 그렇다면 내용은 조금은 진부할 것이다. 그것도 틀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 다큐멘터리에서 극영화 못지않은 재미를 느끼며 몰입해서 보았다. 패자에 대한 알량한 측은지심 때문은 아니었다. 등장인물들과 일정한 거리두기를 하며, 그들의 상황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려는 연출이 오히려 나를 끌어당겼다. 


시작 부분을 놓치고 중간부터 보았기 때문에 혹시 딴 소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 프로그램의 내용은 이렇다. 



야구팀들 중에 독립야구단이라는 것이 있다. 이번에 알았는데, 경기도에만도 무려 6개 팀이 있다. 그 독립야구단의 감독 가운데 내가 아는 왕년의 스타플레이어가 있었다. 그것이 관심을 끈 요인이기도 했다. 한화 소속 투수로 40세가 넘어서까지 현역으로 뛴 송진우 감독, 프로야구 초창기 MBC 청룡 소속이었으니까 왕년이 아니라 ‘왕왕년’의 2루수 김인식 감독도 보였다.


프로야구 팀, 그 가운데 1군을 가장 꼭대기라고 하면, 그 아래에는 2군이 있다. 하지만 2군만 해도 틀림없이 프로들이다. 2군에서 뛰어난 기량을 보이면 1군에 뽑혀가고, 1군에서 부상이나 슬럼프로 난조를 보이면 2군으로 내려가기도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프로야구 선수, 즉 TV 중계로 보는 선수들은 1군이다. 독립야구단의 경기는 TV로 볼 일이 없다. 요즘은 유튜브 세상이니까 찾아보면 혹시 있을까.


이 독립야구단은 프로와는 별개의 리그로 6개 팀들끼리 시합을 하고, 경쟁을 한다. 수식어를 다 떼고 우악스럽게 정리하면 프로팀에 가고 싶어 야구에 목숨 건 선수들이 서로 경쟁하는 구단들이다. 다만 그들의 기량은 프로 선수들에 많이 못 미친다. 요즘 프로야구 투수들은 공의 속도가 시속 157~158km를 기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마의 160km를 넘지는 못 하지만 과거보다는 훨씬 빠르다. 하지만 독립야구단의 실력은 평균적으로 140km 초중반 정도인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수비 실수도 종종 보인다.


독립야구단 소속 선수들은 몇 부류로 나뉜다. 하나, 프로야구에 갈 실력이 안 되어서 뽑히지 못한 선수들. 하지만 그들은 프로 선수의 꿈을 접지 못 한다. 다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어 한다. 또 하나의 부류는 프로야구에서 뛰다가 중도 탈락해서 다시 시작하려는 부류다. 미국 메이저리그 2군 출신도 있다. 


말 그대로 그들은 패자부활전을 꿈꾸는 선수들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들 모두가 오로지 프로야구에 목숨을 건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의 인터뷰 내용을 보았다. 


“프로야구팀에 가고 싶죠. 하지만 갈 실력이 안 된다는 걸 압니다. 그래도 계속 합니다. 왜냐구요? 여기서 할 만큼 하게 되면 나로서는 최선을 다했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때는 그만 둘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선수들이 의외로 많은 모양이다. 성공하기 위한 것도 이유가 되지만, 냉엄한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것도 이유가 되는 모양이다.


그 이야기를 보면서 나를 돌아보았다. 너무나도 오래 전 일이지만, 대학 입시에서 떨어졌던 기억은 평생 내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깟 대학 입시가 뭐라고... 그깟 프로야구가 뭐라고... 대학입시 만큼은 아니지만, 직장 입사 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던 일도 마음속에서 사그라지지 않는다. 세월이 약이라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 해결책을 이번에 나름대로 찾았다. 다큐멘터리에 나온 선수들의 인터뷰를 보니, 나는 그때 나 자신이 할 만큼 다 하지 않았다는 후회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어리석게도?


독립야구단 선수들 중에는 프로야구 팀에서 선수 선발을 할 때 지원서를 내고 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선수들도 있다. 하지만 거의 모두 결과는 낙방이다. 1년에 독립야구단 한 팀에서 프로에 뽑히는 경우는 한 명도 채 안 되니까 당연한 일이다. 그래도 꿈을 버리지 못 한다. 그들에게는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말 그대로 꿈같은 소리다.


선수 선발에 관한 이야기에 이어서 프로 구단의 선수 스카우트 담당자 인터뷰가 나왔다. 내 눈길을 확 끌었다. 

“야구는 어려운 경기입니다. 하루아침에 잘 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잘 하던 선수가 하루아침에 못 하게 되지도 않습니다.”

야누스의 얼굴과 뒤통수를 동시에 보여주는 인터뷰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력도 안 하고 좋은 결과를 기대하지 말라는 준엄한 이야기인 동시에 끊임없이 노력하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남기는 이야기다. 



다시 나를 돌아보았다. 


최근에 골프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근 7~8년 동안 하지 않던 일이다. 레슨비를 시간당 비용으로 계산하면 피아노 레슨의 10배가 넘는 비용이다. 백수 주제에 이 일을 저지를 때의 내 심정이 꼭 독립야구단 선수들의 심정 같았다. 성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미련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 


다큐멘터리의 스카우트 담당자 인터뷰도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야구를 골프로 바꾸면 된다. ‘골프는 아주 어려운 운동입니다. 어영부영 시간만 보낸다고 잘 할 수 있는 운동이 아닙니다.’ 그렇다. 그렇게 어려운 운동이니 내가 잘 못 하는 것도 당연한 일 아니겠는가. 나는 이번에 그것을 확인하려는 모양이다. 그러면 그만 둘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요즘 슬럼프라고 느껴지는 피아노 배우기도 떠올려 보았다. 손열음, 조성진 등을 포함한 프로 연주자들은 평생 동안 연습하고 연습하고 연습한다. 그 어려운 길을 늦은 나이에 시작해서 연습도 제대로 안 하면서 어렵다고 하다니... 어렵다고 하려면 무언가를 더 해야만 하겠다. 그래야 후회가 남지 않을 테니까.


‘야구는 아주 어려운 운동입니다.’ 여기에 야구 대신, 골프 대신, 피아노 대신, 인생을 넣어보면 어떨까. 위안이 될까 아니면 포기해도 될 명분이 될까. 꽤 오래 살았지만, 나는 아직 답을 모르겠다.


*대문 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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