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스타벅스에서 한번 일해 보는 게 어때?”
어학원을 같이 다니던 언니가 말을 걸어왔다.
“제가요? 에이 스타벅스는 왠지 일본어도 잘해야 할 거 같고 빠릿빠릿한 사람만 뽑을 거 같은데 제가 어떻게…”
그 시절 나는 일본에 온 지 세 달이 지나 일을 할 수 있는 몸이 되어 아르바이트 찾기에 혈안이었지만 면접 보는 족족 떨어져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라니 언감생심 말도 안 됐다.
“아냐. 한 번 해봐. 밑져야 본전 아니야? 게다가 일하는 날에는 음료도 공짜로 마실 수 있고 푸드도 할인해준다고. 여타 프랜차이즈 카페랑 다른 게 없으니 지원해봐”
순전히 조건에 이끌려 시작하게 된 스타벅스 아르바이트. 그렇게 꼬박 6년을 일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내가 도쿄 긴자 근처 히비야(日比谷)의 스타벅스에 지원한 이유는 스타벅스 중에서도 시급을 가장 잘 쳐주는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지역별로 최저 시급이 다른데 일본의 고급 동네 중에 하나인 주오구 (中央区)에 위치한 히비야는 전국 스타벅스 가운데 가장 시급이 높기도 했고 그 당시 살던 집에서 치요다선(千代田線)을 타면 한 방에 갈 수 있기도 했다.
면접 내내 점장의 한국 여행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인지 “일본 다크 모카 칩 프라푸치노는 맛있나요?”라는 엉뚱한 질문을 하고도 아르바이트에 붙었고 2009년 12월부터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들어가서야 알게 되었지. 왜 그렇게 시급을 많이 주는지…
내가 일하던 스타벅스는 직장가에 둘러 쌓여있었고 심지어 바로 옆에는 다카라즈카(宝塚, 여성들만으로 이뤄진 일본 가극) 극장이 있어서인지 평일 주말 상관없이 붐벼댔다. 10잔 이상의 단체 주문은 예삿일이었고 특히 다카라즈카 젠느 (다카라즈카 배우들을 부르는 말)들을 위한 조공 음료들은 어찌나 커스터마이즈도 많이 해대는지, ‘무지방 우유로 변경 후 녹차 파우더 두 배, 휘핑크림 가득’이라는 주문 (呪文) 같은 주문 (注文)의 말차 프라푸치노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이 모든 상황이 스무 살 시골 뜨내기에겐 생소했다. 스타벅스도 없던 지방 소도시에서 평생을 살아온 나는 오늘의 커피와 아메리카노의 차이도 몰랐다. 그야말로 얼뜨기가 공짜 음료에 눈이 멀어 스타벅스에 들어간 것이다. 처음 몇 달 간은 포스 앞에선 서툰 일본어가 들통날까, 에스프레소 머신 앞에선 음료를 잘 못 만들까 늘 안절부절못했다. 어깨에 한껏 긴장이 들어간 상태로 일했고 조마조마한 마음은 배고픔도 잊게 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알바 시간도 4시간에서 6시간, 많게는 8시간 정도 일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8시간을 일하게 되면 총 1시간의 휴식시간이 주어지는데 매번 편의점에서 백 엔짜리 삼각김밥을 사 먹는 것도 슬슬 물리기 시작했고 매번 드는 밥값도 솔직히 아까웠다. 그러던 참에 눈에 들어온 커피 젤리 프라푸치노. 이거라면 배에 차지 않을까 싶었다.
사실 공짜 음료라고 해도 막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몇 가지 원칙이 있는데 1. 아르바이트생들도 손님들처럼 줄을 서야 했고 2. 마실 음료를 포스기에 등록을 해야 하며 3. 스스로 만들지 않고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만들어준 음료를 먹어야 했다. 그래서 매번 손이 덜 가는 아이스 티나 아메리카노, 라테만 먹었는데 그날따라 모처럼 한가하니 용기를 내어 주문해보았다.
“오 웬일이야? 프라푸치노를 다 먹고” 사수였던 하나상이 웃으면서 말한다.
“안 먹어 본 것도 먹어볼까 싶어서요.”
자격지심에 차마 돈 아끼려고 먹는다는 말은 못 했다.
“맞아. 먹어봐야 손님들한테 추천을 하지. 나도 커피 젤리 프라푸치노 좋아해. 먹고 나면 든든하더라고. 단거 좋아하면 나중에 초코칩도 넣어보고 캐러멜 소스도 뿌려서 먹어봐.”
나의 마음이 들킨 걸까 싶어 부끄럽기도 하면서도 집 떠나 혼자 사는 대학생들이 생각하는 건 다 똑같구나 싶은 안도감도 들었다.
음료를 픽업한 뒤 한 평이 채 안 되는 직원실로 돌아가니 이미 다른 아르바이트생들로 바글바글했기에 잔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히비야의 상징인 고질라 분수대에 자리를 잡고 한 모금 쪽 빨아드렸다. 빨대를 따라서 올라오는 커피 프라푸치노가 몸을 식힌다. 12월의 일본은 그리 춥지 않고, 오히려 3시간을 서서 일하다 보니 살짝 덥기도 했던 참이라 시원하기까지 했다. 이제 한번 젤리를 먹어볼까? 스푼으로 바닥에 깔린 젤리를 들어 올린다.
“뭐야 엄청 쓰잖아”
단맛이라고는 전혀 없는 물컹한 물체가 입안에 퍼져 나갔다. 처음 먹어본 맛이었다. 평생 젤리라고 하면 단 맛이 가미된 제리뽀만 먹고살았는데 커피 젤리는 이름처럼 오직 커피 맛만 가득했다. 커피 사탕 정도의 맛을 기대했는데… 이탈리안 로스트 원두로 만들었다더니 산미는 하나 없고 쓴 맛뿐이다. 젤리만 먹다가는 빈 속이다 버리고 말 것 같았다. 서둘러 프라푸치노도 한 입. 이거 완전 고진감래 아니야? 또 프라푸치노만 먹으니 너무 달다. 이번엔 커피 젤리 반, 프라푸치노 반을 스푼 가득 떠서 한 입. 군더더기 없는 달콤함과 씁쓸한 맛이 입안에 퍼진다. 별로 안 달고 맛있는 것을 좋아하는 동양인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맛이 이 맛일까. 허겁지겁 톨 사이즈 하나를 다 마셨다. 프라푸치노 하나를 다 먹으니 배도 적당히 차 나머지 4시간을 버티기 끄떡없었다.
스타벅스 알바를 하는 동안 커피 젤리를 자주 먹었다. 커피 젤리는 개봉하면 다음 날 폐기해야 하기 때문에 클로징 작업을 하게 되면 곧잘 먹게 되는데 젤리에 우유나 두유를 넣어 마시기도 하고, 젤리 위에 꿀이나 남은 휘핑크림을 올려서 먹기도 했다. 그렇게 커피 젤리는 6년간 일용한 양식이 되어주었다.
그 후 스타벅스를 그만두고 나선 커피 젤리는 잘 먹지 않게 되었다. 물리기도 했고 사실 커피 젤리를 보게 되면 늘 몇 백 엔에 전전긍긍하며 화려한 히비야 거리에 홀로 앉아 프라푸치노를 먹던 스무 살 의 내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가난한 시골뜨기가 무리해서 온 유학이었다. 각오는 했지만 생각보다 더 힘들었다. 가난은 정말 지독하게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따라다녔다. 혹여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면 고향 집에 있을 동생이 제일 먼저 생각났고 용돈을 못 보내줘서 미안해하는 아빠가 생각났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커피 젤리를 더 찾게 되었다. 씁쓸한 부채감의 맛이었던 커피 젤리. 어쩌면 커피 젤리는 나의 가난의 상징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 일본에 있을 땐 그저 외면해온 커피 젤리가 귀국하고 나서 이따금 생각난다. 한국에 파는 곳 도 잘 없어서 한 번 만들어 볼까 싶다. 조금의 단 맛을 가미해서 말이다. 늘 씁쓸했던 나의 20대를 지금이나마 위로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