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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현달 Jul 01. 2022

조용한 사치 긴자 웨스트의 다실(銀座ウエスト)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시끄러운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고 싶을 . 그리고 달콤한 무언가를 먹고 싶을 . 어느 가을날. 그날의 나는 무작정 요코하마로 향했다.


 30 정도 걸려 도착한 요코하마는 온 세상 사람들을  불러놓은 것처럼 소란스럽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지. 발걸음을 재촉해 향한 곳은 요코하마 다카시마야 백화점. 역에 있던 사람들  여기로 온건 아닌지 이곳에도 사람들이 넘쳐난다.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며 다른 가게에 눈길조차 주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곧장 3층으로 향한다. 유난히 층고가 낮은 요코시마 다카시마야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무렵 눈앞에 나타난 긴자 웨스트(銀座ウエスト)의 다실. 통유리가 아닌 가늘고 높은 창문을 사용한 인테리어 덕분에 백화점의  공간을 사용하면서도 전혀 다른 이공간처럼 느껴진다.


 그날은 10분 정도 기다린 뒤 가게 안으로 입성할 수 있었다. 일본의 유명한 오래된 양과자점 긴자 웨스트의 차실인 만큼 언제나 짧게는 10분 길게는 1시간 정도의 웨이팅이 필수인 곳이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메뉴를 살펴본다. 핫케이크도 먹고 싶고 샌드위치도 좋을 거 같은데… 하지만 오늘도 결국 케이크와 음료 세트. 가격은 세금 제외 1800엔.

“케이크랑 아이스커피로 할게요.”

.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드디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순간. 가장 두근거리는 순간이  시작된다.


점원이 멀리서 케이크 스탠드를 들고 온다. 어느덧 눈앞에 도착한 케이크 스탠드 위에는 오늘 준비된 케이크들이 한 피스씩 한가득 올려져 있다.

 가슴아 나대지 마. 케이크를 보고 흥분한 심박수가 끝없이 올라간다. 만약 애플 워치를 차고 있었다면 분명 심호흡하라고 했을 정도였다.

두근거린 마음을 가다듬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케이크를 고른다.

“이쪽은 계절 한정이고 이쪽이 가장 인기가 많은 상품입니다.”

마음 같아선  그냥 스탠드 두시고 가주시면 됩니다. 하고 싶지만 고민 끝에 가을 한정인 애플파이를 선택했다. 케이크와 커피가 오기를 기다리며 주위를 살핀다. 톤 다운된 올리브색과 베이지색으로 이루어진 벽과 갈색 창틀. 소파 위에는 하얀색 레이스 천이 덧대어져 있고 의자들도 전부 갈색 계열로 통일되어 있다. 조금은 옛스럽지만  차분함이 주는 특유의 안정감이 이곳에도 녹아내려져 있다. 가게 가운데에 있는 이케바나(일본식 꽃꽂이. 화려하지 않고 정갈하고 여백의 미가 있다)  테이블 위의 생화 장식에서 허투루 손님 대접을 하지 않겠는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사실 인스타용 사진을 건지기도 힘든 곳이고 노포라는 점도 있어서 그런지 비교적 연령층이 높다. 대부분이 중년 이상의 여성들이었고 쇼핑을 하다 잠시 휴식을 취하러 오는 듯했다. 개중에는 엄마를 따라온 아이가 매끈하게 구워진 팬케익을 먹고 있었다.

‘팬케익을 먹을걸 그랬나…’ 고민하던 찰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점원이 케이크와 커피를 세팅해준다.

“커피는 언제든지 리필 가능합니다. 부담 없이 말씀해 주세요.”

그렇다. 이곳은 주문한 음료를 몇 번이나 리필할 수 있는 곳. 커피와 케이크에 1800엔(약 1만 7천 원)을 쓴다고 하면 흠칫할 수 있겠지만 하루에 몇 잔이고 커피를 마시는 나로선 두 잔만 마셔도 본전은 뽑는 거 아닌가. 가성비충 나. 이제 그만 입꼬리를 내리시죠.

“감사합니다.”

그럼 천천히 좋은 시간 보내세요.”


 이제 먹어볼까. 함께 나온 따뜻한 물수건에 손을 닦는다.

“아 따뜻해”

 접시에 손을 가져다 대자 또 입에서 따뜻하다는 말이 튀어나왔다. 접시까지 데워서 주다니.

 그리고 애플파이를 영접할 시간. 집에서 만든듯한 소박한 애플파이는 파이 반죽 위에 사과가 층층이 쌓아 올려져 있었고  위에 파이 반죽이 뚜껑처럼 덧대어진 스타일. 입에 넣자 동양인이 좋아하는 안 달고 맛있는 사과 필링과 함께 조용히 퍼져 나가는 시나몬. 그리고 안정감과 탄력 있는 파이 반죽의 조화가 훌륭했다. 긴자 웨스트를 애플파이로 만들면 이런 맛일까  정도로 공간이 주는 안정감이 애플파이에 한가득 담겨있었다.


 “손님 커피 더 드릴까요?”

 정신없이 먹다 보니 커피도 어느덧 반절로 줄어 있었다. 다 마시지도 않았고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말을 걸어주다니. 부담 없이 먹으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었구나.

 “네 감사합니다.”

 새로운 한 잔의 커피가 눈앞에 차려진다. 조용한 공기를 향유하는 시간이 나에게 더 주어진 것이다.

 편안한 의자에 내 몸을 맡기고 책과 케이크가 눈앞에 있는 순간. 요코하마의 소음도 수많은 사람들도 모두가 마치 꿈만 같았다. 불과 20분 전의 현실이 너무나 먼 전생의 기억처럼. 오롯이 나를 위한 조용한 사치의 순간이 더없이 고맙게 느껴질 정도다.

 그렇게 사치를 음미하다 보면 어느새  커피는 동이 나있고 눈이 빠른 점원은 나에게 리필 의사를 물어온다. 한잔  마실까 고민했지만 두 잔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가느다란 창문 사이로 웨이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내가 들어왔을 때보다 줄은 훨씬 길어졌다. 케이크도 다 먹었겠고 커피도 다 마셨으니 오늘은 이쯤에서 일어설까.

 주섬주섬 짐을 챙겨 계산대로 향한다. 계산을 기다리며 쇼케이스를  기웃기웃. 다음에는 무얼 먹을까 벌써부터 고민이다. 헤어짐의 순간에도 재회를 다짐하게 하는 긴자 웨스트.  가을에는  다시 애플파이가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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