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미친거아니야?”
평일 저녁엔 웬만하면 약속을 잡지 않는 나지만, 대화가 통할 만한 상대를 만나지 않곤 견딜 수가 없었다.
다행히 목요일이라는 애매한 요일의 퇴근 후의 부름에 흔쾌히 나와준 친구와 만나 그가 했던 말을 전하며 불같이 화를 냈다.
“내가 남 눈 의식해서 결혼이 하고싶은거면 자기를 왜 만나고 있겠냐고”
“그러게? 남들 보여주려고 결혼하는거면 진작 돈 많은 남자 찾아 떠났지. 착각이 크네!"
생화값만 몇천에서 1억 든다는 호텔 결혼식 하자는 것도 아니고. 없는 사정 감안하고 결혼한다는 여자가 요즘세상에 어딨다고. 복에 겨운 놈.
친구는 듣고싶은 말만 쏙쏙 골라해줬다.
“진짜 나 너무 억울해. 자기 옆에서 너무 늦지 않게, 부족하게 시작해도 예뻐보일 수 있는 나이에 결혼하고싶다는 말을 어떻게 남한테 보여주기식 결혼을 하고싶은 사람으로 해석해버리냐구.”
친구가 그래그래하며 다독여준다.
“나 얘랑 결혼 안할래 헤어질래. 차라리 보여줄만큼 화려한 결혼할 수 있는 사람 찾으러 갈래.”
‘너와’ 결혼하고 싶어서 미안하다며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는 감언이설이라도 기대하고 있는 나를,
풀꽃 반지라도 끼워주며 확신을 줬으면 하는 나를,
감히 ‘결혼’을 하고싶어하는 사람으로 치부한 것은 너무 괘씸한 일이었다.
“지금 결혼할 생각 없으면 놔줘. 5년 후에 니가 맘 바껴서 나랑 결혼 안한다고하면 시간 아까우니까.”
그래서 나도 그의 입장에서도 ‘감히’였을 괘씸한 말로 되받아쳤고,
“거봐, 너는 내가 중요한게 아니라 결혼이 하고싶은거라니까.” 그는 한 번 더 쐐기를 박았다.
아 그래 다른건 몰라도 너랑 끝인건 알겠다.
다른 사람하고 결혼을 하든 평생 혼자 살든 너랑은 이 이상 대화가 되지 않으니 대화도 관계도 이참에 끝내야겠다.
누구한테 이 결심을 말해야 가장 내 마음을 알아줄까, 누구에게 가야 답답한 그와 달리 내가 듣고싶은 말을 해줄까.
미쳐버릴듯이 답답한 이 순간 가장 간절히 생각나는 친구를 불러냈던 것이다.
“나랑 언젠간 결혼을 할거라면, 동반자인 나랑 당연히 의논하고 조율해야하는거 아니야? 어떻게 지 계획대로만 살아? 자유를 즐기다가 결혼하고 싶다는게 10년 사귄 여자친구한테 할 말이야? 하다못해 내 눈치라도 보고, 미안해하기라도 하고, 이해를 해달라고 부탁을해도 들어줄까 말까 아니냐구.”
주절주절 분노하는 내 앞에서 친구는 괜히 내 눈치를 보는척 소심한 제스쳐를 취하며 말했다.
“그.. 알다시피 우리 커플은 내가 니 남친 입장이라.. 이해가 된다..”
결혼 하고싶어하는 본인의 애인과 달리 친구는 ‘아직’이라고 생각하는, 우리와 반대상황에 놓인 친구.
내가 그와 다투고 가장 간절히 생각났던건 결국 그를 이해해볼 수 있을법한 이야기를 해줄 사람이었다. 결국 내가 택한건 이별이 아니라 이해해보려는 노력이었다.
“근데 대단하다. 나는 우리오빠가 나 기다리다가 지쳐서 떠날까봐 걱정돼서 그렇게까지 솔직하게는 이야기 안하는데. 니 남친은 그런게 없나봐.”
“만약 내가 그거 못기다리고 다른 사람한테 떠나면 내가 나쁜년인거래. 결국 자기를 사랑한게 아니라 결혼할 사람이 필요했던거라고. 기적의 논리 아니냐? 평소에 T발놈인게 이럴땐 낭만파야 아주.”
친구가 감탄하는척하며 엄지를 흔들어댄다.
“자의식 쩐다..부럽다 부러워.”
진짜 뭐가 그렇게 당연하고 당당한데에!!
카페 탁자에 머리를 박고 쓰러지는 내 등을 친구가 토닥인다.
“우리는..같은 내용이라도 내가 불쌍하게 말해서인지 오히려 오빠가 나한테 결혼 재촉해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니 남친은 너무 대쪽같이 솔직해서 반감이 들게 하는거 같아. 순수해서 좋은걸지도.”
결혼은 나랑 할거라면서, 나와의 의견을 좁히지 않는 그가 버거웠다.
혼자서 그의 옆에 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내 옆에 그가 아닌 다른 남자를 세운 상상도 해보고, 10년의 연애 데이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오려내야할지 이런저런 걱정을 하다 결국 하루는 몸살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