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는 게 아쉬워 하루하루를 꼭꼭 밟아가고 있는 요즘이다. 향기로 사랑의 기억을 불러오는 봄의 정령 라일락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을 소개한다.
그림을 그린다
재미 중, 난이도 상, 부담 상
그림은 솔직히 비추. 온갖 꽃을 다 그려봤지만 라일락은 난이도 상이다. 작은 꽃이 원형을 그리면서 다닥다닥 붙은 모양이지만 각 꽃잎들이 타원이거나 접혀있거나 뒤집혀 있어서 생동감을 위해서는 각각 그려야 한다. 한송이만 그리면 되는 꽃이거나 꽃송이가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 꽃은 그리기가 쉽다. 라일락은 너무 적당한 크기라 한 장 한 장이 눈에 잘 띈다. 색칠도 난이도 상을 주고 싶다. 합쳐놓으면 보라색으로 보이나 꽃잎 각각은 흰색에 가까운 눈부신 연보라를 띄고 있어서 바탕을 희게 하면 잘 보이지 않고, 바탕을 어둡게 하면 눈부심이 사라진다. 라일락 그리기에 간헐적 한 달이 걸렸다. 덕분에 스쳐 지나갈 꽃이 어떤 색을 띠는지, 어떤 결을 가졌는지, 세심하게 볼 수 있었고 꽤 친해졌다.
글을 쓴다.
재미 상, 난이도 상
보라색 라일락의 꽃말은 ‘첫사랑, 사랑의 시작’이고, 흰색 라일락은 ‘아름다운 약속, 추억, 젊음, 순수함’이라고 한다. 무엇을 쓴다는 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 나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가. 널 처음 만났을 때 난 어땠지. 널 맡았을 때는 기분이란.’ 라일락을 상상하면 설렘과 향기로움이 훅 밀려온다. 같이 맡게 되는 사람과는 반드시 사랑에 빠진다는 전설을 만들고 싶을 정도로. 라일락과 관련된 시의 원래 제목은 ‘나 원래 그런 사람 아니다.’였다. 시의 내용도 위의 시와는 좀 달랐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상상으로만 해오던 모태 솔로가 그녀를 따라 꽃이라는 걸 쳐다보게 되고, 난생처음 향기라는 것도 맡아보면서 이 울렁이는 게 뭔지 낯설어하는 그런 느낌으로 쓴 시였다. 마지막이 ‘나 원래 그런 사람 아니다.. 아니었다.’로 끝이 났었다. 그런 무식한 풋풋함도 좋았었는데 그 후에 좀 더 마음에 드는 시를 쓰게 되어 기분이 좋다.
라일락 노래를 듣는다.
재미 중, 난이도 하
라일락 즐기기 3탄은 ‘라일락과 관련된 노래를 듣는다 ‘이다. 라일락 필수 노래는 이문세의 ’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과 아이유의 ’ 라일락‘이다. 이문세 노래는 ;라일락 꽃 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로 시작하기 때문에 대표적인 라일락 노래로 꼽힌다. 그리고 아이유 노래는 제목부터가 라일락일 뿐 아니라 분위기, 음색까지 모두 라일락스럽다. 그다음 추천곡은 이선희의 ‘라일락이 질 때’이다. 96년 발표곡이지만 노래가 좋은 건 말해 뭐해다. 이선희 슨생님의 목소리는 라일락과 참 잘 어울린다. 단아한 자태도 마찬가지고. 다음 추천곡은 감각적인 비트의 창모(Feat. 잔나비의 최정훈) ‘라일락’ 추천한다. 도입부의 리듬도 산뜻하고 새벽에 듣기 딱 좋은 몽환적인 느낌이다. 뒤로 갈 수록 평범하고 사운드가 튀어서 좀 아쉽긴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라일락과 관련된 곡은 대부분 이별에 관한 노래이다. 라일락이 가진 특유의 향기가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불러오기 때문이 아닐까.
라일락 향수를 산다.
재미 상, 난이도 하, 금융 손실 하
라일락의 개화시기는 4-5월이다. 다시 말해 그 시기가 아니면 라일락을 만날 수 없단 거다. 아쉽다. 떠나보내기 아쉽다. 어떻게 라일락을 오래도록 만날 수 있을까. 선택은 향수였다. 샤르망로더의 ‘라일락향기 봄내음 수제 퍼퓸’을 샀다.(내돈내산, 2만 5천 원) 진짜 라일락향을 재연한 향이다. 처음에 뿌리면 향이 아주 강해서 살짝만 뿌리거나 강한 향을 일정 시간 견뎌야 한다. 그 이후에는 향이 오래가는 편. 분위기 전환을 위해 방이나 베개에 뿌리기도 하고 차 안에 뿌려놓으면 그곳을 바로 봄으로 만든다. 너무 사랑스러운 애장향수. 향이 잘 재연된 핸드크림도 사고 싶은데 아직은 찾지 못했다.
내년 봄을 함께 할 라일락 카페
실루엣 커피, 카페봉덕
내년엔 라일락 개화시기에 맞춰 라일락 향기 아래서 상큼한 차를 마실 카페를 두 군데 추천한다. 올해 기준으로 4월 첫째 주정도에 개화했고 셋째 주까지는 꽃을 볼 수 있을 듯하다.
첫 번째 카페는 서울 상수역 4번 출구 쪽에 실루엣 커피. 주택을 개조하여 포근한 느낌을 주고 카페 마당에 라일락 고목이 너무 예쁘고, 다락방도 있다. 토마토수프, 베이글 샌드위치, 바닐라라떼, 에스프레소, 청포도케일주스 등이 맛있다고 함.
@실루엣커피
두 번째 카페는 대구에 위치한 카페 봉덕(영대병원역 3번 출구) 주차가 편하고, 율무라떼, 아인슈페너 등이 맛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