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늑대 이야기
그는 왜 불쌍한 신을 죽였을까
끓는 태양이 옥수수밭의 메뚜기마저 풀잎 아래 그늘에 숨게 한 어느 무더운 여름날,
나는 지키고 있던 오두막을 뒤로한 채 뭔가에 홀려 숲으로 들어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쾌한 기운이 나를 사로잡아 그날만은 바람에 나풀대는 들국화도, 예쁜 버섯들도 시들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그날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개고기를 먹은 날이었다. 마을의 술주정뱅이로 유명한 두부집 아저씨가 2년 정도 키우던 자신의 누렁이를 잡아서였다. 우리 집과 친하게 지내던 아저씨가 특별히 선심을 써서 유난히도 허약했던 내게 아직 온기가 있는 누렁이의 생간을 주었다. 나는 평소에 누렁이 녀석과 사이가 좋았기도 했고 주정뱅이 아저씨가 마음에 안 들어서 먹지 않겠노라고 했다. 그러자 우리 집 어른들은 물론 동네의 몇몇 어른들이 사내자식이 이 정도도 못 먹고 무슨 큰일 하겠냐고 나무랐다. 심지어는 또래의 쪼무래기 녀석들까지도 그런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나는 목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구토감을 억누르며 눈 찔끈 감고 그 시뻘건 간을 삼켜버렸다. 보라, 나는 이제 사나이가 될 자격이 있다!
하지만 나는 마을의 다른 개들이 심히 걱정되었다. 수많은 누렁이들과 얼룩이, 검둥이들이 더 이상 나를 보고 꼬리를 흔들지 않을까 봐 겁나기도 했다.
무튼 이런 착잡한 마음으로 그날도 어김없이 옥수수밭을 지키러 오두막에 올라와 낮잠을 청했다. 오두막은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어 내게 둘도 없는 안락한 은신처였다. 한 시간이나 잤을까?
예의 그 불길한 기운이 나를 흔들어 깨워 까닭도 모른 채 숲 속으로 발길을 옮기게 했다. 그 숲은 내가 여름 내내 지키고 있던 옥수수밭 바로 옆에 있었고 거기에는 갖가지 약초와 버섯들과 열매들이 많아 동네 아이들과 심심찮게 드나들던 곳이었다.
하지만 그날만은 숲의 작은 웅덩이며 나뭇가지며 심지어는 어제 오후까지만 해도 동네 형들과 올라가서 놀던 큰 바위까지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낯설었다. 나는 이 익숙한 공간의 낯설음이 무서웠지만, 또 약간은 신기하기도 해서 오두막으로 돌아갈 생각을 않고 더 깊숙이 들어갔다.
그 순간 나는 정말로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는데, 여러분이 아마도 '어른'이라면 결코 내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나는 거대한 늑대 한 마리와 마주쳤는데 그는 마을의 왼만한 어른들보다도 족히 두배는 더 커 보였다. 그는 마치 오랫동안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는 듯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는데 그의 입에는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역겨운 무언가가 물려있었다.
아!
그런데 그것은 다름 아닌 몸뚱아리 없는 신의 머리였으니,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린 채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리고 검은 액체를 주룩주룩 흘리는 그 머리 때문인지 늑대에 대한 극도의 공포감 때문인지 그 자리에서 속 안의 모든 것을 왈칵 토해내고 말았다. 희멀건 위액과 함께 토사물 속에는 채 소화되지 않은 누렁이의 간도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침착하게 지켜보고 있던 늑대는 물고 있던 머리통을 무심히 내려놓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렇지만 매우 우아한 걸음걸이로 내게 다가왔다. 나는 늑대의 엄청난 덩치와 멋진 외모에 압도되어 뒤돌아 도망갈 생각도, 소리 질러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못했다. 그저 눈을 감은 채 그는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인간의 말로 잘못했다고만 했다. 왜 잘못했다고 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 순간 그런 말이 나왔을 뿐이다.
놀랍게도 그는 나를 해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걱정 마'라고 말하는 듯한 인자한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그 순간 그의 반짝이는 송곳니에 우는지 웃는지 모를 나의 얼굴이 비쳤는데, 나는 그 얼굴이 너무도 낯설어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더 이상 흘릴 눈물도 없을 만큼 실컷 울고 나서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멋진 늑대는 사라지고 근처에서 나물을 캐던 순이네 할머니가 내게로 와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다. 나는 아무 대꾸도 못한 채 훌쩍이며 그 할머니 등에 업혀 마을로 내려왔다.
급기야 마을 어른들이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을 때 나는 울음을 뚝 그치고 짐짓 어른스러운 말투와 사내다운 태도로 산에서 승냥이를 보았노라고 했다. 어른들은 그런 나의 진지함은 털끝만큼도 중히 여기지 않고 너털웃음까지 지어 보였다. 지어 마을의 최연장자인 목공 할아버지는 왜정 때 이후로 이 지방에서 승냥이는커녕 그 흔턴 삵도 제대로 본 적 없다고 했다. 나는 어른들에게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이 된 기분이 들어서 더 이상 승냥이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모든 어른들 중에서 순이네 할머니와 둘도 없는 친구였던 나의 외할머니만은 내 말을 믿어주었는데 내겐 그거면 족하고도 남았다.
다음날, 다시 오두막으로 올라갈 시간이 되었을 때 어른들은 한껏 장난스런 말투로 승냥이가 다시 나타날까 봐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정말로 무섭지 않았을뿐더러 내심 그 멋진 늑대가 다시 나타나서 내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싶었다.
어른들은 믿거나 말거나 내게는 확실하고 분명한 변화가 찾아왔는데, 그날 이후로 나는 밭에 있는 메뚜기를 잡아 닭들에게 먹이는 어리석은 일 따위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