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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윤슬 Jan 22. 2021

당신은 아름답습니다.

- 홍련에 관한 단상.


- 연꽃의 꽃말.


 어느 날 눈부시게 밝은 빛에 어슴푸레한 형상이 보였다. 나는 눈을 부비고 자세히 살펴본다. 단정한 올림머리를 하고 귀밑머리 몇 가닥 바람에 하늘거린다. 그녀는 쌍꺼풀이 있는 눈 오뚝한 코 발갛고 도톰한 입술을 가졌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생전의 모습 그대로 내 앞에 있었다. 너무 보고 싶었기에 반갑게 불렀지만 쳐다보지 않고 점점 멀어져 갔다. 어머니가 사라져 버릴 것 같아 붙들고 싶은 마음에 애타게 부르다 눈을 뜨니 꿈이었다. 꿈속에서 한 번이라도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침 일찍 함안 연꽃테마파크에 갔다. 불교의 상징이기도 한 연꽃을 보면 절에서 정성을 다해 기도하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탐스러운 연꽃들과 바람결에 불어오는 은은한 향기가 위로된다. 


커다란 꽃송이는 아래쪽은 희고 꽃잎 끝으로 갈수록 분홍색이 진해진다. 꽃잎 속에는 노란 꽃술과 연자방이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다. 활짝 핀 연꽃들도 많지만 이제 막 봉우리를 펼치려는 것도 있다. 초록색 연자방만 줄기에 달려있기도 하다. 이슬 맺힌 꽃잎사귀를 톡 하고 건드리니 유리알 같이 반짝이는 물방울이 또르르 굴러 떨어졌다. 인기척에 놀란 개구리는 연못으로 퐁당 뛰어들고 길옆의 청둥오리 뒤뚱거리며 걸어간다. 고추잠자리가 날아와 꽃잎 끝에 살포시 앉는다. 진흙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연꽃을 보면 부조리에 물들지 않고 주변을 깨끗하게 만들어가는 것 같아 숙연해진다.


집으로 가는 길 꽃집에 들러 연을 구입해 아파트 베란다에 두었다. 연꽃을 가까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흙이 부족한 탓인지 볕이 적어서인지 꽃은 피지 못하고 시들기만 했다. 황토를 구해와 큰 통에 담고 옮겨 심었다. 베란다에서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두고 날마다 살피며 잘 자라기를 바랐다. 

며칠 뒤 줄기 끝에 돌돌 말려있는 조그만 잎이 물 위로 나왔다. 잎은 자라면서 펼쳐져 연잎의 모양을 갖추었다. 조그만 꽃봉오리도 피어났다. 아기의 첫 이처럼 앙증맞게 돋아나 있었다. 날마다 꽃이 잘 자라기를 기도했지만 조금 크고 나면 시들어 말라버렸다.


어릴 적 어머니는 마당 한쪽 자리한 작은 연못에 연꽃을 키웠다. 여름이면 예쁘게 피어나는 꽃을 보며 미소 짓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연을 가까이 두고 싶었던 이유는 어머니가 그리워서였다. 

어머니는 뇌종양으로 오십 세를 넘긴 지 얼마 안 되어 세상을 떠났다. 병을 앓고 있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애절한 마음이 더했다. 당신이 가진 병의 고통 탓에 무척 힘들었을 텐데 당시의 내가 자연분만을 하지 못하고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신이 겪고 있는 통증보다 딸이 힘들까 봐 더 마음 아파했던 것이다. 


어머니가 중환자실에 입원하고 있을 때였다. 그동안 극심한 아픔을 견디었을 거라는 의사의 말에 고통의 크기를 알지 못한 내가 미웠다. 회복이 안 되어 손과 발의 붓기가 없어지게 주물러야 했다. 그때 나는 그동안 당신의 손을 정답게 잡아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뚝뚝한 큰 딸이어서 한없이 미안했다. 깨어나시기만 하면 성의를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의 간절한 바람과 달리 어머니는 중환자실에서 우리가 자리를 비운 새벽 외로이 삶을 마치셨다. 


어머니는 이웃에 선의를 베풀고 올바르게 살면 자식들이 복을 받는다며 당신의 자녀들이 착하게 살기를 바랐다. 다른 사람을 험담하는 일도 없었고 누가 어머니를 시기하거나 질투하면 그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고 감정을 상하게 하는 언행은 하지 않았다. 아버지에게는 순종하고 자식들이 잘 되기를 기도하는 어머니의 삶이 때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당신도 여자로서 삶이 있고 꿈이 있을 텐데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 행복하지 않아 보였다. 어머니는 주위를 배려하고 가족을 위하는 것이 당신의 삶이라고 했다. 




  연꽃이 주변의 흙탕물을 깨끗하게 만들고 청결한 모습을 간직한 것을 보면 어머니 같다. ‘당신은 아름답습니다.’라는 꽃말처럼 더운 여름 날씨에 고요히 피어있는 모습이 오늘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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