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차근차근 Apr 15. 2022

그림 수업에서 생긴 일

지저분한 붓자국을 마주하는 법

그림을 그리다 보면 종종 두려움이 생긴다. 붓으로 물감을 찍어 색을 칠할 때는 특히 더 그렇다. 지우개로 마음껏 수정할 수 있는 스케치 작업과 달리, 채색 시간은 그 긴장감이 사뭇 다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아크릴화 수업에 출석한 지 어느덧 7개월이 됐을 때의 일이다. 나는 캔버스 전체에 초록의 잔디를 균일한 색감으로 표현해야 했다. 잔디 위에 사람 두 명이 앉아있는 모습도 함께 그리려고 하다 보니, 사람과 잔디 사이의 틈을 칠할 때 내 손이 덜덜 떨려 왔다. 그 작은 틈에 붓 자국이 자꾸 지저분하게 남아, 채색을 할 때 점점 망해가는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멀쩡히 잘 칠해져 있는 부분만 자꾸 덧칠하기 시작했다. 잘 그려진 부분만 계속 보고 싶었다. 또 부드럽게 칠해지는 부분을 계속해서 채색하다 보니 내가 잘하고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정작 칠해야 할 곳은 실패할 것이 두려워 애써 외면한 채였다.



"차근 님. 채색할 때 처음에 붓 자국이 지저분하게 보이는 건 정말 당연한 일이에요. 천천히 말리면서, 색을 몇 번이고 다시 칠 하면 그만이에요. 그럼 차근 님이 바라는 대로 균일하게 물감이 덮일 거예요. 그러니 겁내지 마세요."



놀랍게도 그 말을 듣고 나니 좁은 틈 사이, 붓 자국에 대한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당장의 지저분함과 모자람을 있는 그대로 건조하고, 다시 새로이 채워 주었다. 그러다 보니 얼룩덜룩했던 캔버스는 원했던 초록의 잔디밭의 모습으로 가득 찼다. 부드러운 붓의 질감이 물씬 느껴지는 캔버스 전체를 보는데, 마치 2시간 어렸던 내 모습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했다.



 완성된 그림을 집에 가져와 거실 선반에 잘 두었다. 그림을 볼 때마다 내가 무서워 칠하지 못했던 부분이 가장 먼저 눈에 보인다. 이제는 붓 자국 없이 깔끔하게 색으로 덮인 그 부분을 보면 나는 혼자 위로를 받곤 한다.



어떤 일이든  순간에 매끄럽게 가득 채워지는 일은 없다. 일이든, 취미든, 감정이든.  번이고 다시 색을 우다보면,   매듭은 반드시 지어지는 듯 하다.

마치 그림처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