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던 <미나리>를 봤다. 이 영화의 주인공과 같은 환경은 아니었지만, 90년대에 미국에 와서 인생의 반을 이 곳에서 살았기에 개봉을 많이 기다린 영화였다.미국의 코로나 19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집에서 스트리밍을 할 수 있는 티켓을 사서 봤다.
영화를 보는 동안의 나와 영화의 소통을 스포일러가 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조금씩 적어 보려고 한다.
이 영화에 대해 처음 들었을 때, 스티븐 연????
분명히 이민 1세 아저씨 역인데, 스티븐 연이 다른 재미 교포 배우들보다는 훨씬 한국어를 잘하지만, 그래도 7-80년대 이민 온 아저씨를??? 처음 미국에 왔을 때, 닭공장 영주권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다. 유학을 통하거나, 가게를 차릴 자본이 없던 이민자들에게 몇 안 되는 기회였던 닭공장에서 일해야 하는 아저씨의 이미지로 상상이 안 됐다. 22년 동안 교포 아이들의 엄마로 지내오면서 그리고 꽤 오랜 시간 동안 교포 아이들의 언어 발달을 공부하고 연구해 온 결과, 이들의 한국어가 부족하다는 관점을 떠나서 영어와 한국어의 접촉으로 그들만의 독특한 한국어를 구사한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었고, 스티븐 연의 한국어도 <옥자>나 <버닝>에서 역할의 특징에 따라서 빛을 볼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근데, 이민 1세 닭공장 병아리 성별 감별자 아저씨??
15분쯤 지나서, 그의 한국어가 영화에 몰입하는 데 지장을 주지 않음을 깨달았다 (무지 노력한 결과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이 영화의 아빠 역할에 중요한 거는 한국 아저씨처럼 말하는 게 아니라, 이민자의 감정을 이해하는 게 중요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이 만큼 한국어를 할 수 있는 교포 배우가 있었다는 거는 이 영화의 메시지가 온전히 전해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근데, 오히려 나에게 다른 생각을 가져다준 것은 스티븐 연의 한국어가 아니라, 간간히 나오는 그의 영어 발음이었다. 한국인이 못한다고 생각되는 r 발음이나 f 발음은 의식적으로 연습해서 이민 온 아저씨처럼 했지만, David을 부를 때마다, Daㅂid이 아니고 v가 너무 정확하게 들렸다...
미국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발음은 어떻게 보면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살아온 그들의 여정 같은 것이었다. 항상 나 자신에게, 내 영어에 있는 내 한국어 악센트는 부끄러워할 것이 아니라 마치 훈장 같은 거라고 주문을 걸었다. 나는 영어가 내 모국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영어로 공부도 하고 영어권 사회에서 살아내고 있다는 증거가 한국어 악센트라고 항상 주문을 걸어왔다. 그래서 살짝살짝 들리는 스티븐 연의 정확한 영어 발음이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배우 자체가 이 영화의 살아있는 증거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이건 전혀 생각 못했던 위로였다.
교회 장면은 정말, 한 방에, 반항하지 않는 착한 '아랫사람' 아시안 아메리칸들에 대한 교묘한 차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 장면에서 극본을 쓴 감독이 정말 깊은 성찰력의 소유자라는 것이 확실해졌다. 이 교회 장면은 이 영화를 몇 번 더 보고 싶은 이유 중에 하나다. 한 장면 안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의 대사 하나 하나, 제스처, 눈빛 등등 조목 조목 보고, 감독이 전하려고 했던 모든 걸 알아내고 싶은 장면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미국 사람 같은 사람들이 우아하게 모여서 예배드리는 교회와 조금은 이상하게 하나님을 믿는 폴 아저씨가 대비되면서 내가 만나온 미국 사람들과 내가 친구가 된 미국 사람들에 대해서 떠 올렸다. 티브이나 영화에 비친 전형적인 미국인의 모습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이상했지만, 나를 내려다보지도 않았고, 나를 가르쳐야 된다는 근거 없는 책임감도 없었던, 온전하게 자신을 나누고 나를 알려했던 이상한 폴 아저씨 같은 친구들 고마워 (갑자기 여기서 감사 ㅎㅎ)
작은 아들이랑 같이 봤는데, 내가 갑자기 울어서, 이 부분이 'why so emotional' 이냐며 어이없어했던 부분들이 있다. 친정 엄마인 윤여정이 한국에서 오자마자 이민 가방에서 이거 저거 풀어놓을 때, 나도 친정 엄마 데려다가 고생시킨 게 갑자기 생각이 너무 나서 오열..(이 장면은 아직 그리 슬플 장면이 아니었다).
그리고, 이사 온 첫날, 스티븐 연이 가족들에게 오늘은 이사 온 첫날이니까 바닥에서 다 같이 자자고 그런다. 난 왜 이게 왜 그렇게 슬펐을까.. 나중에 비슷한 장면이 한 번 더 나오는데, 이 때는 완전 오열~~ 갑자기 우리 애들 애기일 때 짐보리 아기 체조 교실에서 만난 어느 엄마가 나한테 애기는 같이 자면 안 되고 애기 침대에 재우고, 잠은 남편하고 둘이서만 자라는 충고질에 '부모와 같이 자면서 아이들이 가지는 정서적 안정감'에 대해서 영어가 안 돼서 반격하지 못하고 웃으면서 고맙다고 말한 게 갑자기 억울해져서 눈물이 난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어떻게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는지도 모른 채, 그저 white gaze에 의해서 생성된 문화에서 보여 지는 것을 내 것인 양 착각하다가 이 장면을 봤을 때 내가 거울에서 보고 있었던 거는 내가 아닐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감독 Issac Chung은 2세 한국계 미국인이다. 미국 이민자들의 2세/3세 자녀들의 언어 발달을 이야기할 때, 학계에서는 한국어를 그들의 heritage language라고 부르고, 영어를 그들의 dominant language라고 명한다. 대부분의 2세 자녀들의 first language는 한국어다 (우리 애들도 학교 들어가기 전까지는 한국어만 했다). 그렇지만 내가 나의 first language인 한국어를 하는 만큼 절대 못 한다. 그리고 엄밀하게 따지면 그들의 second language 인 영어는 영어를 모국어로 구사하는 이들의 것과 유사하다. Issac 감독은 영화의 한국어 대사도 heritage language인 한국어로 쓰지 않고 본인의 dominant language인 영어로 썼다고 한다. 그러니깐 영화 중의 한국어 대사는 영어 원본에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어쩌면 한국어로는 하지 않을 만한 표현들이 있었다. 아마 다른 나라로 이민 가기 전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인 I said that we'd go to America and save each other."이 한국어로 번역이 되면서 "미국에 가서 서로를 구원하자고 말했지"가 되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할 때, 스티븐 연이 극 중에서 맡은 역할의 아저씨가 할 대사로는 현실성이 부족할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테는 베스트 대사였다. 감독 본인의 자전적인 이야기인 이 영화에서 감독이 부모님의 삶을 자신의 관점으로 이해하고 극 중 아버지의 나이가 되어서 아버지의 언어가 아닌 본인의 언어로 썼지만, 아버지의 언어로 바뀌는 과정에서 오히려 의미 전달이 더 잘 된 것 같은 lost in translation이 아니라 gained in translation 같은 해 보지 못한 경험.
언어 장벽이란 말, 과연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장벽이 생긴다는 말일까.... 이 영화 한 번 더 보면, 확실한 답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