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와 통합이 바탕이 된 공동체주의의 실천과 노력
내각책임제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피력했던 사람으로 김종필 전 총리가 있다. 대한민국 제2공화국은 1960년 6월 15일부터 1961년 5월 16일까지 불과 11개월간 존속했던 양원제 의원내각제 기반의 헌정체제이다. 1960년 4·19 혁명으로 대한민국 제1공화국이 붕괴된 후 제1차 과도 권한대행 체제를 거쳐 6·15 개헌에 의해 설립되었다. 국무총리는 장면, 대통령은 윤보선이었다. 민주당 내에서 장면의 신파와 윤보선의 구파 사이의 정치적 갈등으로 3번의 내각교체가 있었다. 정치적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여 4·19 혁명으로 분출된 각계각층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였다. 결국 1961년 박정희를 중심으로 한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탈취 당했다.
군사 독재정권의 대통령제의 강화는 이념적으로도 국민에게 영향을 주었다.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 하는 수단으로 우리나라 여건에서 내각책임제의 비현실성에 대하여 학교교육에서부터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주입되었다. 이는 오랫동안 내각책임제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대부분의 국민에게 심어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의 내각책임제는 정치 불안을 야기하고 책임정치를 구현하기 어려운 이유로 적합하지 않다는 단순한 논리가 국민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이러한 논리가 국민사이에 충분히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2공화국은 불과 11개월에 불과했다. 이러한 정치적 실험이 이승만 독재체제가 무너진 혼란한 상황에서 성공하기에 충분한 시간도 아니었다. 역사에 만약은 존재하지 않지만 5.16 군사 쿠데타가 없었다면 전두환 군사정부의 독재 역시 없었을 것이고 민주화 역시 앞당겨졌을 것이다. 우리의 압축 성장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루었던 것은 강력한 중앙정부의 역할이라고 말하고 있으나 그 역시 결과론적인 이야기다. 한민족의 역량은 그러한 역사적 상황과 무관하게 현재의 결과를 만들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러나 우리에게 분명히 심어준 것이 있다. 그 과정이 어려웠던 만큼 민주사회를 역행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였고 권력의 남용을 용납하지 않는 국민의 정서를 확고히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제 내각제의 꿈은 가보지 못한 과거의 또 다른 길에 불과하다. 우리는 대통령제를 택하였고 군사정권을 거치고 국민직선제를 이루며 어려웠지만 오랜 시간을 두고 진보된 민주사회 체제를 만들어 왔다. 이미 이 제도가 갖는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부족한 부분이 변하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는 정치세력과 정치인의 이해관계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독점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는 여당을 통해 국회를 장악하고 정당은 군소정당의 출현을 막고 공천권을 손에서 놓지 않고 있으며 국회의원은 지역구의 지자체의원 공천권을 장악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적 구조 안에서 의원내각제로 개헌이 이루진다고 하여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과거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내각책임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속내는 따로 있었다. 과거 김종필 총리의 경우 자신의 정치세력의 한계를 뛰어넘는 방안으로 구상된 측면을 가지고 있다. 이는 일본의 자민당 파벌정치를 모델로 하는 것이었으며 지금도 이러한 파벌정치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며 옹호하는 무리가 존재한다. 이는 소수정파가 정권 창출하는 수단으로 용이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파벌정치와 단순한 정치세력은 분명한 차이를 갖는다. 정치가 뜻을 같이하고 그러한 세력이 정치를 주도하는 행위는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일이나 이를 집단화하여 권력화 되는 것은 패거리정치집단에 불과하다. 그 전형을 자민당의 파벌정치에서 볼 수 있는 것이며 그 의미를 떠나 과거 우리 정치에 존재했던 공화계, 민정계, 동교동계, 상도동계뿐만 아니라 현재의 친박, 친문 등도 이러한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제 남은 것은 친문이 유일하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니다.
협치가 가능한 정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대통령제 안에서 협치가 가능할 수 있기 위해서는 다수의 군소정당이 국회에 진출되어 있어야 한다.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벨기에,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등은 군주제 국가지만 내각제로 총리가 실권을 쥐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등은 총리가 주도하는 내각제 국가이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국회 내에 다수의 당이 실질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연립정부를 구성하여 연립내각을 기반으로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통령제 국가인 프랑스 역시 연립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대통령의 권력분산을 위해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서 총리를 선출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된다. 책임총리제를 두어 선거를 치루는 방법도 가능한 일이지만 국회에서 총리를 선출한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다당제의 출현이 현실화된다는 전제에서 협치의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역시 중요한 파트너로서 국회를 인식하게 된다. 임기가 대통령이 아닌 다른 주체에 의해 임기가 보장된다는 것은 유명무실했던 총리의 기존 권한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여소야대의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개혁을 촉진시킬 수 있다. 또한 연립내각의 필요성이 부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에 대한 불신과 정치적 상황의 변화는 과거에 여소야대의 정치적 상황이 언제든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였다. 그런 이유로 여당의 입장에서는 군소정당의 출현을 적극적으로 독려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협치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정치적 환경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세상의 모든 일은 형식보다 운영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우리의 대통령제는 독재정부를 거치며 민주정부로 발전하여 왔고 그로부터 분명한 해답을 얻고 있다. 결국은 실행의 문제다. 그것은 민주적 정치구조의 실현에 있는 것이다. 정당정치가 국민 안에 뿌리를 내려야 하고 정당의 설립이 실질적으로 보다 용이할 수 있어야 하며 군소정당의 원내 진입이 보다 수월해야 한다. 협치가 가능한 정치적 환경을 만든다는 것이 우리의 당면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