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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트랜드 Mar 01. 2024

내가 인복은 타고났지.

스위스 취리히에서의 일기 3.


어느덧 이 낯선 땅에서 산지 1달을 꽉 채웠다.


그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지만

너무 바쁘다 보니

뭔가 잘 기록하지 못하고 있다.


오늘은 큰맘 먹고 노트북을 들고

Stadelhofen BH에 있는 스타벅스에 둥지를 틀었다.


자리에 앉자

여기서도 K-pop이 흘러나온다.


정말 신기하게도

수많은 한국 걸그룹의 음악이

스위스 온갖 곳에서 흘러나온다.


오늘은 수강신청을 한

독일어 학원에서 전화가 왔는데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자

너무나 반가워하며 "나 K-pop 즐겨 들어요!"라는 거 아닌가 ㅎ


마지막에 통화를 끊을 때는

"감사합니다"라고 ㅋㅋㅋㅋㅋ


진짜... 우리나라의 위상(?)이

참 많이 올라갔구나, 싶다.


10여 년 전 스위스 여행할 때는

그 어디서도 한국의 'ㅎ'도 찾을 수 없었는데.


이젠 취리히 동네 어디 마트를 가도

한국 과자, 한국 라면, 한국 떡볶이, 한국 김치, 한국 고추장, 쌈장, 된장

다 살 수 있다! ㅎㅎ


(취리히 곳곳 20개 정도의 마트를 가봤다!

한국 식품 코너가 정말로 거짓말 안 하고 다 있었다! 싱기방기 ㅎㅎ

심지어 신라면, 불닭볶음면, 튀김우동은 맛도 똑같아!

쓰레기를 버리려고 쓰레기통을 보면 '분말가루'라고

한글이 적힌 쓰레기도 자주 보인다 ㅋㅋ)


현대차와 기아차가 길에 벤츠, BMW랑 섞여 돌아다니고,

제네시스도 가끔씩 눈에 띈다 ㅎㅎ


삼성은 뭐 말할 것도 없다.


이야기가 약간 딴 길로 샜는데,


오늘 내가 쓰고자 하는

주된 내용은 이게 아니다 ㅎㅎ


본론으로 돌가,

1달간 내가 가장 많은 느낀 점 하나를

오늘 정리하고자 한다.




난 한 달간 취리히에서

거의 매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그 만남에서 새로운 걸 배웠다.


배움의 종류는 정말 가지각색 :)

그러나 주로 '의식주'와 관련된 것이라는 게 특징이다 ㅋ


어떤 걸 먹고살아야 하나,

스팸을 대신할 수 있는 스위스산 햄에는 어떤 게 있나,

생선들 중 구웠을 때 고등어 맛이 나는 건 뭔가,

오징어는 어디서 구하나,

치즈 중 한국 체다치즈랑 비슷한 맛이 나는 건 뭘까,

건식욕실은 어떻게 청소하면 되나,

택배가 집에 사람이 없어 그냥 돌아갔을 때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개가 나를 향해 짖을 때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이런 것들이

주된 배움의 종류랄까 ㅎ


사실상 새로운 삶의 루틴을

차근차근 쌓아나가고 있다.


그 와중에도 내가 크게 깨달은(?) 건

나는 정말 '인복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 이 넓은 지구상에서

처음 살아보는 도시인데,

만나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하나같이 다 좋은 사람들일 수 있지 싶다.




이 시점에 기억나는

하나의 일화가 있다.


친정엄마는 1년에 한두 번씩

용하다는 점집을 찾아가 점을 보신다.


(참고로, 우리 가족은 무교다 ㅎ)


몇 년 전쯤, 신변에 큰 변동이 생겨

엄마를 따라 함께 점을 보러 갔다.


점쟁이가 엄마에게

"집안에 전쟁터에서 돌아가신 젊은 남자 하나 있지?"

라고 물었다.


엄마는 "어머 맞아요. 저희 외삼촌이

전쟁터에서 돌아가셨다고 들었어요."


점쟁이는 그것 보라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며

"얘는 조상신들이 뒤에서 엄청 챙기네.

특히 그 전쟁터에서 돌아가신 조상신이

얘 인복이랑 식복을 다 챙겨주고 있어."라는 게 아닌가;;


나는 유난히 어렸을 때부터

먹을 복이 넘쳤다.


집에 연락 없이 일찍 오는 날이면

엄마는 '어떻게 알고 귀신같이 집에 일찍 왔냐'며

평소 잘 먹지 않던 꽃게찜 같은 특식을 차려주셨다.


인복도 마찬가지.


어딜 가나 항상 나를 이끌어주시는

혜성 같은 분들이 존재했고,

그 덕을 톡톡히 보며 인생을 살아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인복이 스위스에서도

넘쳐나고 있다.




특히 난 정말 신기하게도

현지에 정착해 살아가는

한인분들을 정말 많이 만날 수 있었는데


18년 간 스위스에 산 왕언니와,

뉴욕에서 가족이 다 함께 스위스로 정착하러 이사 온

뉴욕언니네도 그중 하나다 :)


아이들이 다니는 국제학교에서

학부모 단체 임원을 하는 언니도

이곳에 정착해 8년째 살고 계시다고!


스위스에 그냥 왔다 가는

나 같은 주재원 가족이 아니라,

정말 스위스에서 기한 없이 살아가는

한국인들을 많이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언니들은

처음 만난 나에게

'처음 적응하는 게 다 힘들어'라며

아낌없이 모든 걸 가르쳐 주신다.


오자마자 '환영 식사' 자리를 만들어주시고,

누구든 같이 소개해주고 싶어 하시고,

어떻게 하면 하나라도 더 챙겨 먹일지 고민하시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정말 손발 걷어부치고 도와주신다.


타국에서 살아본 사람이라면

이런 자국민의 도움이

어떤 의미인지 알 것이다.


나에게는 말 그대로 '빛과 소금'이었다 ㅠ




그런데 여기서 다가 아니었다.


외국 친구들도

하나같이 좋은 사람들이 가득하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닌 지

이제 겨우 3주 되었을 뿐인데

(오고 얼마 안 돼 1주일 간 스키방학이었다 ㅎ)

벌써 3번이나 플레이데이트를 다녀왔다.

사실상 매주 다녀온 셈이다. ㅎㅎ


다들 먼저 초대해 주셨고,

만나면 처음 학교 생활을 하는 어려움에 공감해 주고

어떻게 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알고 있는 팁들을 대방출해줬다.


나에게 그들의 경험은

하나하나 큰 도움이 된다.


나보다 먼저 이 길을 걸은

인생 선배들.


러시아, 에스토니아, 브라질, 영국, 독일 등

국적도 정말 다양하다.


이 중에는 이미 3~4개 나라에서의 삶을 겪은 후

스위스에 들어온 가족들도 있고,

나처럼 해외살이가 처음인 가족들도 있다.


그러나 하나같이

정말 격 없이 우리 가족을 대해주고

아낌없이 도움을 나눠준다.


물론, 아직 내가 겪은 나라는

겨우 1달밖에 되지 않았기에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도

이런 생각이 그대로일지는 사실 장담할 순 없지만.


지금 이 나라에서

처음 발을 딛고 삶을 이어가야 하는 나에게는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고, 나에게 경험을 공유해 주는

그들이 정말 감사하고 고맙다.



어떻게 하면

감사한 그분들의 마음에

보답할 수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이 나라에서의 시간은 겨우 4년.


아직 겨우 1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이들과의 이별이 슬프다.




드디어 우리 가족은

취리히에서 거주할 우리 집을 찾았다 :)


집을 구하기 힘들다고 해서

걱정을 정말 많이 했는데

마음에 쏙 드는 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언니들도 "이런 집을 이렇게 빨리 구한 건

정말 럭키한거야!"라고 입을 모아 말씀해 주셨고 ㅎㅎ


얼른 컨테이너 이삿짐을 받아

'의식주'에서 '주'를 해결하고 나면

고마웠던 분들을 한 분 한 분 초대해

한 상 부러지게 차려 대접해야지-


한국에서 '300만 원어치' 한식 재료들이 오고 있다 ㅎㅎㅎㅎㅎ


감사한 마음 다 갚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열심히 표현하고, 표현하고, 또 표현해야지.


그리고 또 나처럼 이 나라에 처음 발을 디딜

그분(?)에게

나도 좋은 사람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


이제 곧 독일어 공부도 다시 시작할 거고!

영어도 하루 한 시간씩 꾸준히 쌓아나가기로!


하루하루,

멋지게 잘 채워나가 보아야지 :)


오늘의 기록,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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