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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위트랜드 Aug 03. 2024

'초선진국' 스위스? 여기도 진상은 있다.

스위스 취리히에서의 일기 8.

오늘은 아이들과 늦잠을 자고,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밥을 다 먹고 치우고 나니 12시가 이미 넘은 시간.

일요일이라 문 연 식당도 많지 않은 데다,

어딘가를 가더라도 5시면 대부분 문을 닫다 보니

여유를 가지고 구경하기도 힘든 상황.


오늘은 그냥 집 앞 공원과 놀이터에서

공놀이를 하기로 정했다.     


천천히 씻고 옷을 갈아입고 집 앞으로 나갔다.



햇살이 살며시 내리쬐는 날,

바깥놀이를 하기에 최적이었다.


아이들과 잔디밭에서 공놀이를 하고,

놀이터에서 열심히 뛰어놀며

우리는 두 어 시간 여유로운 자유 타임을 즐겼다.     

 

한참을 공놀이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한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하얀 개 한 마리와 산책을 하고 있었다.


워낙 공원에서 목줄을 하지 않고 다니는 개들이 많아,

우리도 별생각 없이 공놀이를 계속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 개가

공놀이에 한창이던 우리 아들에게 달려왔다.


사납게 짖어대면서 말이다.


나도 아들도 모두 깜짝 놀랐고,

개는 두어 번 더 짖더니

주인이 부르는 말에 주인 곁으로 돌아갔다.


이런 경우가 스위스에 온 뒤 처음 겪는 일이어서,

우리는 모두 벙쪘다.


남편도, 나도, 뭔가 더

적극적인 제스처를 취하고 미고 할 정신조차 차리지 못한 채

그 노인은 그냥 아무런 사과 한 마디조차 없이

개를 데리고 가버렸다.


공원을 더 돌진 않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아들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처음엔 너무 놀랐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다,

갑자기 내 품에 뛰어와 안겨 엉엉 울기 시작했다.


너무나 놀란 상황.


웬만해서는 울지 않는 아들이

서럽게 울기 시작하고

나는 벌컥 화가 나기 시작했다.


뭔가 더 행동을 취하지 못한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고,


아무런 사과조차 없이 가버린

그 백인 진상 할아버지한테도 화가 났고.


그 조그만 개 한 마리

발로 뻥 차버리지 못한 상황에도 화가 났다.



      

한국이었으면 목줄을 하지 않고

아이들이 노는 공간에

그렇게 돌아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스위스는 여느 유럽과 다르지 않게,

수많은 아이들과 개가 섞여 살아간다.


거대한 대형견들이 목줄을 찬 채

대중교통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나라이기에

어쩌면 개와 함께 살아가는 건

이 나라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상황일 것이다.


그러나 목줄을 하지 않은 채

사람에게 달려드는 개가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개는 아니지 않나.


만약 그 상황에서 그 개가

우리 아들에게 달려들었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다들 개를 키우며

철저하게 교육하고 통제한다고만 알고 있었지,

이런 위급 상황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나는 정보를 얻기 위해

인터넷에서 관련 글을 찾아봤고,

스위스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독일에도

무개념 개주인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다.


한국도 간혹 개에 물려 아이가 죽거나,

크게 다치는 일이 있는 것처럼

유럽도 매한가지인 것이다.


개가 많은 만큼

매너 있는 개주인들이 많은데,

그만큼 또 아무 생각 없이

“우리 개는 순해요, 안 물어요”하는

진상 주인들도 많은 것이다.      


독일은 개가 사람을 물면

바로 안락사라고 한다.


심하게 물었던 아니던

무조건이라고 한다.


한국만큼 CCTV 설치가 일반화되어 있지 않아

(오히려 설치와 CCTV 영상이 불법인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증거가 많진 않다 보니

주인들이 딱 잡아떼는 경우가 있는데

목격자가 있는 경우에는 빼박이라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진술 역시

일관성을 가질 경우

충분한 증거로 채택된다고 한다.    

  

나는 오늘 상황을 계기로

변호사 보험이라는 게 이 나라에

일반화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글을 찾아보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을 이 나라는 법을 통해 해결하고,

그 과정에 변호사는 필수라

변호사 보험이 일반화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도 변호사 보험을 바로 들어야겠다.


어떤 상황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는 외국인이고,

아이가 둘이나 되는 상황이라 필수일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독일어를 반드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영어도 영어지만,

독일어를 할 줄 알아야

어떤 긴급 상황에서든

나의 권리를 찾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오늘 아주 절실하게 들었다.


독일어 수업을 더 열심히 들어야겠다.


복습도 철저히 하고,

회화 연습도 열심히 해서

경찰서에 가서 나의 억울한 사정을

제대로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회화 실력은 반드시 갖춰야겠다.  




    

외국에 산다는 건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나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서는

부모가 준비되어야 하고,

그만큼 더 똘똘해야 한다.      


더 똘똘해지자.

내 아이들은 내가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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