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보다 제목으로 기억하는 시 중에‘꽃차례’가 있다. 우리의 삶도 차례의 연속이다. 서열의 차례, 안전의 차례, 규범의 차례, 형식의 차례. 서로 배려해주는 마음이 있어 차례는 아름답다. 그러나 자연은 그렇지 않다. 봄꽃은 차례대로 피지 않은 오래됐다. 한꺼번에 피고 함께 진다. 기후변화가 자연의 순환에 틈을 내고 개화 시기 영향을 주는 현실과 마주하면‘꽃차례’시가 생각나고 위로가 된다.
그런데 올해 농사를 지으며 풀도 차례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 잡초로 불리지만 농작물에 피해를 많이 줄수록 풀의 이름은 기억된다. 또 나오는 순서도 계절이 있고 특성도 조금씩 다르다. 명아주는 봄에 강하다. 예전에는 지팡이로 만들어 썼을 만큼 성장 속도가 빠르고 단단한데 뽑지 않았을 경우다. 이른 봄에 보드라운 이파리가 나비 모양쯤 됐을 때 뽑아주면 이후로는 쉽게 뽑혀서 풀 중에 가장 만만하다. 바랭이는 여름 뙤약볕에 강하다. 마디마디에 뿌리를 내리고 뻗어서 쉽게 뽑히지도 않을뿐더러 자리를 많이 차지한다. 뽑으면 주변에 흙이 모두 튀어 오른다. 흙 세례를 조심해야 한다.
왕골은 풀인데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논 자투리에 심었는데 후에 돗자리를 만들던 아버지의 기억이 있는 풀이다. 그와 비슷한 모양의 풀이 방동사니다. 지금 꽃이 피기 시작했다. 갈색 꽃을 가운데 모아 두도 호위하듯 길쭉길쭉한 꽃받침이 사방에서 받쳐준다. 잡초로 보지 않으면 풀꽃도 예쁘고 신비롭다. 하지만 풀씨가 생기기 전에 뽑아야 한다. 꽃대는 단단하지만 쉽게 뽑힌다. 우산 풀이라며 꺾어 놀던 추억 하나도 같이 버렸다.
제일 골치 아픈 풀은 쇠비름이다. 잘 썩지 않아 뽑아버린 곳에서도 자라고 꺾어져도 꽃을 피워 생명을 퍼트린다. 밭고랑에는 쇠비름꽃과 공생하는 벌레들이 있다. 꽃가루를 묻힌 벌레들이 돌아다니며 부숴놓은 흙무더기에서 싹이 올라온다. 벌레들이 다닌 흔적만큼 쇠비름이 나오는 영역이 된다. 한 번은 너무 많이 올라와서 흙을 떠서 버린 적이 있다. 그런데도 같은 자리에 같은 방법으로 싹이 나왔다. 후에 안 일이지만 쇠비름 씨는 땅속에서 10년 이상 산다고 한다. 강하고 왕성하여 피해를 주는 쇠비름이지만 잠깐 고운 눈길을 받을 때가 있다. 본성이 없는 붉은 색 첫 잎이다. 멀리서 보면 다육식물과 비슷하여 화초처럼 예쁘다. 그러나 방심하면 안 된다. 순식간에 자라고 통통한 줄기는 약해서 잘 부러지는데 생존전략이다. 쇠비름의 생명은 뿌리가 아니다. 부러진 줄기로부터 시작이다. 그래서 뿌리는 짧고 낮게 내리고 줄기는 부러뜨리면서 무성하게 자란다.
예전에는 풀이 순환되었다. 논이나 밭둑에 자란 풀은 소의 먹이였고 풀도 건강한 거름이 되었다. 또 풀은 베어지고 뽑히면서 순해지는데 쓰임이 없다보니 기세만 강해지고 있다. 외래종 기생 잡초도 보인다. 가느다란 노란색 넝쿨이 줄기를 감아가며 뻗어 가며 자란다. 미국실새삼으로 예전에는 없던 풀이다. 바랭이, 쇠뜨기와 같이 공존하는 걸 보면 힘의 세기가 가늠된다. 몇 번의 폭우가 지나며 더위도 물러서는 듯하고, 호미를 씻는다는 백중도 한참 지났는데 이름값 하는 풀 때문에 아직도 호미를 놓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