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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야 May 22. 2023

딸을 보내게 되었다.

말 그대로 딸을 전 남편에게 보내게 되었다. 시기는 9월쯤으로 예상한다. 엄마 아빠와 1월부터 고민해서 내린 결정이었다. 도저히 내 상태로는 딸을 돌볼 수 없다는 게 엄마 아빠의 판단이었고, 나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 아빠는 날더러 딸에 대한 애뜻함이 없다고 했다. 애정이 없다고 했다. 키워낼 자신이 없으면 전 남편에게 보내는 게 맞다고 수백 번 싸우며 이야기를 했다. 내 한 몸 건사하지 못하는 엄마가 무슨 자식을 키우겠다고 데려왔냐고, 그 소리를 천만 번은 들었을 것이다.


이미 결정 내려진 일이다. 전 남편은 벌써부터 친권 양육권 이전 문제를 알아본다고 했고, 어린이집도 찾아본다고 말했다. 9월쯤이면 딸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때 데려간다고 메시지가 왔다. 아직도 안 믿긴다. 딸을 보낸다는 게. 아빠가 그랬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보내기 전까지 딸과 좋은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가지는 거라고. 내 인생의 롤러코스터가 또 한 바퀴 도는 느낌이다. 내 거취 문제도 그때 가봐야 결정 날 것 같다. 아마 풀타임 직장을 알아봐야 할 것 같고, 또 딸은 얼마마다 보는지도 결정내려야 할 것이다.


전 남편은 날 딸에게 보여주려고 할까? 이혼 후 데려와서 2년 키우다가 이제 와서 못 키우겠다고 데려가라고 한 엄마에게 딸을 보여주려고 할까? 그게 가장 걱정된다. 면접교섭은 어찌 될지, 나는 또 딸을 어떻게 보러 갈지, 앞으로 내가 어떤 포지션으로 딸에게 기능할지 그게 의문이다. 엄마는 '이제 오롯이 네 인생이니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라'라고 하셨다. '돈이 얼마나 혹독한 것인가를 이제 알 게 될 거야'라고도 하셨다. 아마 나는 죽을 만큼 힘들 거다. 죽을 만큼 아이가 보고 싶은 날도 있을 거다.


손절한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그냥 딸 보내고 니 인생 니가 살아.'라고 했던 말. 나는 진짜 그렇게 되었다. 어디까지가 바닥일까. 어디까지 파고들어가야 바닥이 나올까. 병원에 입원을 해도 낫지를 않았다. 엄마가 와서 도와주셔도 낫지를 않았다. 내 스스로 변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지금 이 상태에서 아이를 키우기란 무리였다. 나는 아이의 교육에도 관심이 없고 아이가 자라는 데 있어 뭘 해주는 게 적당한 건지도 잘 모른다. 그저 갓난애기일 때처럼 먹이고 입히고 씻기는 것밖에 할 줄 모른다. 정서적으로 교감할 만한 어떤 놀이도 잘 해주지를 못한다. 아니, 먹이고 입히고 씻기는 것조차 버거워한다. 솔직하게 말해 보자, 내가 아이에게 얼마나 많은 걸 해 주었는지. 거의 없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드니까, 나부터 힘겨우니까 아이에게 신경 쓸 겨를 조차 없었다. 안다, 다 변명인 것을.


나는 우는 아이에게 그만 좀 울어, 라고 소리쳤고, 책을 더 읽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그만 봐, 라고 말했다. 아이가 집에 오면 티비 틀어 주면서 간식 챙겨주는 게 다였다. 그 애가 내 딸이라는 건 알지만, 그렇지만, 밖으로 나가 돌지를 않았다. 기념일 한번 챙겨준 적이 없었다. 생일날도 크리스마스에도 어린이날에도 그저 누군가 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지나갔다. 나는 아이에게 무심한 엄마였다. 지난 주는 지옥이었다. 엄마 아빠랑 연속으로 싸워댔고 드디어 나는 전 남편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아이를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전 남편은 무덤덤하게 반응했다. 이런 일이 언젠가 생길 줄 알았다는 듯이. '언제쯤 일이 마무리되길 원하나요' 하는 그의 메시지에 나는 '당신이 준비되면요' 하고 답장을 했다.


이제 딸의 이마에 백번 뽀뽀를 하고 잠드는 나날들은 9월까지가 마지막이다. 이제 딸을 하원시키러 가서 손을 잡고 오는 일도 없어질 거고, 아이가 웃으며 춤을 마구 춰대는 몸짓에 웃을 날도 없을 것이다. 놀다 지쳐 누운 아이의 머리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는 일도 없을 것이고, 양치를 시키는 일도 놀이터에 나가서 흙바닥에 뒹구는 아이의 모습을 보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나는 나대로 오롯이 살아내야 할 터다. 수다스러운 아이의 말을 들으며 잠자리에서 가위바위보를 하는 일도 없어질 것이다. 아이는 연기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서. 믿기지가 않는다. 아직 멍하다. 내 스스로 전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데려가라고 한 행동 자체가 믿기지가 않는다.


아이는 매주마다 1시간 거리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으로 놀러를 가는데, 엄마 아빠가 나 편하라고 돌봐주시는 거였다. 일주일에 애 보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고, 주말 동안 내내 봐주셨던 건지, 나는 할 말이 없다. 그곳으로 가는 길에 아이는 자주 토를 한다. 차멀미를 심하게 하더라도 데려가는 것이다. 아이를 데려갔다가 돌아온 엄마는 주말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먹지 않은 나를 보며 가슴을 친다. 대체 너 내가 없으면 어떻게 살래, 어떻게 살아남을래, 하고 소리를 지르며 운다. 나는 할 말이 없다. 나는 할 말이 없다. 이 불행하고 작은 인생 속에 또 얼마나 더 큰 폭풍이 일어야 안정이 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딸은 커서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할까. 커가면서 나를 보고 싶어 하기는 할까. 알 수 없다. 더 이상 엄마와 싸우기도 싫고, 딸애를 상대로 대거리하면서 키우기도 싫다. 나는 진짜 혼자 사는 게 맞는 걸까. 혼자 살아본 적은 한 번도 없는데. 자신이 없는데. 내 인생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약은 꼬박꼬박 챙겨 먹는데. 이제는 조증이 좀 가라앉은 것 같은데. 내 생활 습관 때문에, 내 타고난 천성 때문에, 내 게으름 때문에, 내 기본적인 삶의 태도 때문에 아이를 보내는 것 같아서 너무나도 속이 상한다. 속이 상해서 지인들과도 대화를 해보았다. 여러 의견들이 나왔지만 이미 정해진 일은 정해진 일,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어떻게 손쓸 수도 없이 일이 진행되어 버렸다. 내가 '선택'한 길이다. 나는 또 이 시련을 맞이하고 견뎌내어야 할 것이다.


지독한 삶... 지독한 시련들... 지독한 병증... 지독한 나.

나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나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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