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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미야 Sep 24. 2023

이혼 후 끊임없이 흔들리다,

이제야 내 자리로 돌아온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전 남편과 8년을 살았고, 이혼했고, 3년을 홀로 딸을 키웠다. 그리고 또다시 전 남편에게 딸을 보냈다. 나는 10년 만에 사회 생활을 시작했고 이제는 나 혼자 산다. 매일 같이 옆에서 잠들던 아이가 없는 홀로 누운 침대는 이제 익숙해졌다. 나는 조금 무뎌진 걸까. 셋이 살던 그 집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지던 웃음 소리가 가끔 생각난다. 이런저런 상념에 빠진 날이면 나는 딸을 낳고 꼭 1년 만에 전 남편과 갔던 강화도 여행 사진을 찾아본다. 찬란한 태양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던 우리 둘. 전 남편은 내 볼에 뽀뽀를 하고 있다. 지지고 볶고 싸웠어도 전 남편은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나를 사랑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던 슬픈 우리들의 사정. 맞잡은 손을 동시에 놓고 뒤돌았지만 내 마음 한켠에는 아직도 그가 내게 주었던 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아련하게 남아 있다. 한때는 가슴을 치고 통곡하기도 했고, 영혼 잃은 사람처럼 거리를 배회해 보기도 했다. 면접 교섭일과 양육비 입금 날짜를 단 한 번도 어기지 않은 전 남편은 딸을 만난 날이면 내게 무심히 딸 사진을 보내온다. 우리 사이에 생긴 암묵적인 동의. 그건 바로 우리가 세상을 등질 그날까지 목숨을 바쳐 딸을 키워 내겠다는 의지다. 그 강한 믿음이 이혼 후 쓸쓸해지고 찢겨진 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더 이상 이혼이 슬프지 않았다. 이대로도 좋다고 생각했다.


이혼에 담담해지기까지 나는 얼마나 흔들렸나. 셀 수도 없이 많은 후폭풍을 겪었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고 쉽게 마음을 내어줬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여전히 텅 비어 있는 내 마음뿐, 그 누구도 나를 구원해 줄 수는 없다는 사실만 뼈저리게 느낄 뿐이었다. 내가 나를 바로 세울 수 없는데, 대체 그 누가 나를 바로 세울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했다. 상대가 조금만 따뜻함을 내어줘도 난 그걸 절절한 사랑이라고 착각하고 새끼 강아지처럼 낑낑대며 매달렸다. 내 안으로 깊이 침잠해 들어갔을 때 맞닥뜨려야만 하는 절대 고독이 싫었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계속 외부로 시선을 돌렸고, 마음에서 피가 흐르고 있어도 치료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얼마간 나는 내 자신을 내팽개쳐 두었다. 아무 사람들이나 들락거릴 수 있게, 눈치도 없이 활짝 열어 두었다. 나를 찌르고 할퀴어도 그게 관심인 줄 알았다. 착각했다. 혼이 나간 사람처럼 몇 년을 살다보니 이제는 내가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조차 잊어버릴 때가 많았다. 나는 마음껏 길을 헤매고 다니도록 나를 그저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나는 본래 자유롭고 아름다운 존재며, 언제나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였다는 것을 아주 오랜만에 기억해 냈다. 비록 조울증 때문에 꼬박꼬박 약을 챙겨 먹어야 하고 혹여나 조증이 재발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하루를 차분하게 갈무리하기 위해 애쓰고는 있지만, 그런 수고로움이라면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다들 조금쯤은 하는 것이라 여기며 나 스스로를 위안해 본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그중 대부분이 나를 떠나갔다. 내 병증 때문에 생긴 이상 행동들에 질려 떠나간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들의 부재 때문에 나는 외로워했고 괴로워했지만, 이제는 슬퍼하지 않으련다. 인연의 수명이 다해서 떠나간 것뿐인데, 그 무엇을 탓해서 내 마음만 괴롭게 하랴. 뒤돌아보지 않으련다. 앞으로 나아가련다. 사람 때문에 받은 상처와 멸시, 모멸감 등을 계속해서 떠올려 나 자신을 괴롭게 하는 바보 같은 짓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맹세한다. 다음에 내게 다가올 인연들에게는 내 진심 최선을 다해서 대해 주겠노라고. 좀 더 다정하게 바라봐 주겠노라고. 좀 더 따뜻한 마음으로 사랑해 주겠노라고. 그래야 후회가 없을 것 같으니까.


최은영의 소설 '답신'을 읽다가 속절없이 울어 버렸다. 이모인 주인공이 조카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소설인데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영원히 사랑하지." "영원히?" "응, 영원히. 이모가 할머니가 되고 왕할머니가 되어서도 널 사랑할 거야." "사랑해." "언제까지?" "영원히, 영원히." 조카의 물음에 이모는 영원히, 영원히라고 거듭 대답한다. 영원이라는 것은 얼마나 덧없는가. 세기의 사랑도 끝나고, 부모 자식 간에도 수틀리면 죽고 죽이는 게 세상이다. 오히려 그 덧없음을 알기에 나는 영원히, 라는 말을 들으면 눈물이 난다. 그 무엇도 영원한 건 없다는 걸 알면서, 마치 자기 최면을 걸듯 영원히 사랑할 거야, 하고 속삭이는 것. 모든 종류의 사랑이 떠올랐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영원과 조금이라도 더 맞닿은 사랑을 고르자면 내 딸에 대한 내 사랑이 있을 뿐이었다. 나는 내 안에 그런 사랑이 자리 잡고 있음에 안도감과 기쁨을 느꼈다. 유통기한이 정해져 있는 사랑만 있는 게 아니라고, 세상에는 어떤 그 무엇도 위협할 수 없는 아주 강한 사랑이 있다고 내게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내가, 그 사랑을 가졌다고. 그래서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사랑을 갈구하다 못해 온몸이 비틀려 버린 나는 이제야 조금 차분히 내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는다. 반복된 헤어짐으로 너덜너덜해진 내 가슴을 손으로 꾹 눌러본다. 그리고 활짝 열어 두었던 마음을 조금쯤 닫고 빗장을 걸어 둔다. 다시는 그 누구도 함부로 침입할 수 없도록, 내 스스로를 조금쯤 보호하려는 거다. 나를 사랑해 줄 누군가를 찾아서 헤매던 누렇게 뜬 눈을 꼭 감아본다. 그 시선을 내 자신에게 돌린다. 내 깊은 마음속을 유영해 본다. 절대 고독과 마주한다. 피하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바다 한가운데 부표처럼 떠 있고, 나를 위협할 만한 무언가는 끊임없이 나타난다. 위를 봐도 아래를 봐도 나를 구원해 줄 만한 건 전혀 없다. 허우적거리면 가라앉을 것이다. 나는 내 몸에 힘을 최대한 빼고, 물살에 몸을 맡겨 보려 한다. 그 무엇도 부드럽게 흘려 보내는 물처럼, 그 무엇도 만질 수 없는 바람처럼, 나는 그렇게 유연하고 강한 존재가 되고 싶다. 그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존재. 스스로 우뚝 선 존재. 혼자 아름답고 자유로운 존재.


어쩌면 나는 끊임없이 자위해 대는 불평꾼인지도 모른다. 오늘 쌓인 우울을 필사적으로 털어 내려 몸부림을 친다. 더 이상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하고 쉽게 감상에 젖는 사람일까 고민하지 않는다. 성정이 그렇게 타고난 걸 이제 거스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게 되었다. 나는 일희일비하고, 감정적이며 외로움을 잘 탄다. 이런 나와 한 평생 살아가려면 내 내면을 달래 주고 잘 다스려야만 한다. 다행히 나에겐 딸 아이의 거대한 사랑이 있고, 사랑해 마지않는 글쓰기가 있다. 삶을 계속 살고 싶게 만드는 그 무언가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오늘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여긴다. 그리고 그것이 아니어도 나는 나로서 존재해야만 하는 당위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내 자신의 특별함을 믿는다. 어떤 곳은 마구 생채기가 나고, 어떤 곳은 보기 역겨울 정도로 흉한 모습이라도, 내 인생은 그 자체로 존재할 만한 가치가 있다. 상담 선생님이 그랬다. 나는 하나의 예술 작품이라고. 그걸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는 바로 나에게 달려 있다고. 못 나도 괜찮다고. 이상해도 괜찮다고. 나는 그 말에 크나큰 위안을 받았다.


정신병동에 입원했을 때 그림을 자주 그렸는데, 그때 만난 다른 환자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나누었던 대화들이 가끔 생각난다. 우울증, 알코올중독, 조울증, 불안장애 등 각자의 병증 종류는 달랐지만 우리는 어쩐지 다들 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똑같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작품에 대해 칭찬해 주면 조그맣게 기뻐하고,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열성적으로 말을 하며, 작은 관심에도 깊은 환대를 보여주었던 그 사람들. 상처받은 사람들. 쓸쓸한 사람들. 언제든 사랑을 퍼부어 줄 준비가 되어 있는 가련한 사람들. 내겐 그 사람들이 그렇게 보였다. 내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처한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정말 특별한 일이었다. 한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의 외로움을. 괴로움을. 쓸쓸함을. 거식증으로 힘들어하던 내가 병원 밥을 잘 먹고 나와서 살찐 것도 큰 수확이었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과 작은 마음을 나누었던 경험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세상의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서 있던 그 사람들, 이제는 다 어디로 갔을까.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을까. 훌쩍 떠났을까.


어쩌면 더 큰 불행이, 고통이 나를 덮칠지도 모른다. 갑자기 객사할 수도 있다. 언제 죽음이 내게 드리워질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난 오늘을 행복하게 살아 보겠다고 다짐한다. 이 순간에, 이 찰나에, 어떻게든 자유롭고 아름다운 인간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발버둥을 친다. 수도 없이 인생은 나를 속고 속일 테지만 어디 한번 때려 봐라, 내가 넘어지나 하는 마음으로 마음껏 맞아 주겠다. 조울증 약을 옆에 끼고, 딸은 저 멀리 전 남편에게 가 있으며, 지루하고 반복되는 회사 일에 치여 하루하루 살아가는 나이지만, 이제야 이혼의 상흔을 딛고 조금쯤 정신 차린 나이지만, 괜찮다. 앞으로 더 크게 웃음 지을 것,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찾아 나설 것, 내가 나로 존재함에 당당해질 것. 그것만 기억하련다. 난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이 아니라, 존재하기 마땅한 사람이다. 대지를 딛고 서 있는 내 위로 아무리 비가 퍼붓고 눈발이 쏟아져도 감히 내 존재를 지울 것은 없다. 난 마땅히 살아 있어야 한다. 언제까지나, 희망을 노래하는 종달새로, 자유롭고 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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