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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미아 Nov 25. 2024

너무 사랑스러운 내 딸.

딸이 면접교섭을 맞아 우리집에 내려왔다. 나는 딸과 도서관도 가고 키즈카페도 가고 산책도 갔다. 우리 딸은 왼손잡이다. 왼손으로 조곤조곤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면 나는 옆에서 흐뭇하게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12월이 다가오기에 딸에게 물었다. "우리 딸, 크리스마스 선물 뭐 갖고 싶어?"라고. 그랬더니 "응, 나는,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모두들 건강했으면 좋겠어" 하고 대답하는 게 아닌가. 마이멜로디 운동화를 사줄까 가방을 사줄까 하던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딸, 여섯 살밖에 안 됐는데 벌써 그런 소원을 빈 거야? 그런 선물이 갖고 싶었어? 하고 엉덩이를 토닥이며 안아 주었다. "정말 그게 받고 싶은 선물이야?" 하니 "응, 그게 갖고 싶은 선물이야. 산타 할아버지가 들어주셨으면 좋겠어"라고 말한다. 내 새끼... 사랑스러운 내 새끼. 어쩜 이렇게 말도 예쁘게 하니. 어쩜 이렇게 의젓하니. 엄마는 너가 너무 빨리 자라지 않길, 그냥 자유롭고 행복한 어린이이길 바라는데. 내 딸, 내 사랑스러운 딸. 하나밖에 없는 내 새끼.


지난 주에 내 오랜 책 친구와 담배 타임을 가졌는데, 그 친구가 그랬다. 내 딸은 아마 다른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성숙해 있을 거라고. 엄마 아빠와의 헤어짐을 어렴풋이나마 자각하고, 자기가 처한 상황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이미 다 안다고. 다 알 거라고 그랬다. 왜 엄마 아빠는 같이 살지 않는지, 왜 엄마는 항상 자신의 곁에 같이 있을 수 없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거라고. 나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가슴은 아팠지만 그게 내 딸의 운명 지어진 인생의 항로라면 어쩔 수 없지. 이미 찢어진 원가정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그런 식으로 자라왔고, 딸은 아마 숱한 고비를 겪을 것이다. 사춘기가 오면 많이 삐뚤어질 수도 있겠지. 아직은 한없이 착하고 예쁜 아이지만, 마음 속에 어떤 폭풍이 잠재워져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나는 그때를 대비해 딸에게 많은 사랑을 퍼부어 주어야 하겠지. 모든 식구들이 들고 일어나 이 한 아이를 책임지고 아름답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키워 주어야겠지. 어른이 저지른 일들에 대한 책임을... 응당 지어야겠지.


지금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아이지만 어릴 때는 진짜 인형같았다. 너무 너무 신기하고 예뻐서 한참을 쳐다보고, 하루 종일 동영상과 사진을 찍어댔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예쁜 아이를 낳았다니. 말도 안 돼, 하면서 감탄했다. 우리 딸은 무쌍에 눈이 크고 맑다. 전남편도 나도 절벽 머리인데 어디서 이런 뒷짱구 앞짱구가 나왔는지, 두상도 너무 이쁘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에 목소리도 정말 꾀꼬리같다. 걔를 쳐다보고 있으면 난 울컥해진다. 내 유전자가 고스란히 들어간, 내 피와 살로 빚어낸 한 인간이 살아 숨쉬고 말하며 움직인다는 게 아직도 난 너무 신기하다. 자식을 가진 부모들은 다 알겠지. 자기 새끼가 건강하게 자라나는 것만 봐도 행복하다는 걸. 난 정말 많은 걸 바라지 않겠다. 건강하게, 자유롭게, 행복하게만 컸으면. 그것만. 정말. 바란다. 훌륭한 사람이 될 필요 없다. 그냥 인본주의를 아는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세상에서 인간으로 태어나 가장 가치 있는 일은 바로 인간으로서 다른 인간을 돕는 일이라고. 그걸 알고 분별있게 행동하며 진실된 삶을 살기를. 자유롭고 아름답게. 훨훨 날아라, 내 딸. 내 딸...


전남편은 요새 회사 일로 무척이나 바쁜 것 같았다. 지난 주 금요일에 엄마 아빠가 애를 픽업하러 갔을 때 어린이집 선생님이 그러셨단다. "아버님이 요즘 많이 바쁘신가 봐요~ OO이 머리도 안 묶여서 보내시고" 정말 정신 없겠지. 일하랴 육아하랴 얼마나 난장판이겠는가. 전남편은 게임 회사에 다니는데 그, 집중 근무 기간을 '크런치'라고 부른다고 했다. 아마 크런치 기간인가 보다. 그 기간에 새벽 내내 일하고 아침에 들어오는 걸 결혼 생활할 때 종종 봐왔었다. 그렇게 바쁘면 아이 어린이집 보낼 시간도 빠듯할 텐데, 저녁에 애 픽업해 와서 밥 해먹이고 재우고 또 아침에 밥 해먹이고 옷 입히고 애 데려다 주는 것까지 하려면 정말 정신 없을 것 같다. 전남편은 이번에 따로 우리 엄마에게 부탁을 해 왔다. 이번 주 목요일까지 애 좀 봐 달라고. 엄마는 흔쾌히 맡아 주신다고 말씀했다. 나도 출근해야 하고 집에는 엄마뿐인데, 엄마도 고생이다... 하지만 전 시가에 가 있으면 전 시아버지 혼자서 애를 봐야 하기 때문에 애가 많이 심심하고 어설퍼질 거라면서 차라리 내가 보는 게 낫다고 엄마는 굳이 손주를 데리고 있겠다 하셨다. 고마웠다, 엄마에게. 생각해 보면 항상 고마워야 하는데, 나는 좀 엄마의 내리사랑은 당연시하는 태도가 좀 있다. 자식들은 다 이 모양인 걸까. 내 딸도 그럴까?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 내리사랑과 치사랑은 비교가 안 되니까. 지 새끼가 제일 중요한 법...


나는 내가 엄마인 게 아직도 새삼스럽다. 나 같은 게 엄마라니, 말도 안 돼. 나같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인간이 자식을 낳았다고? 말도 안 돼. 딸을 품에 꼭 안고 있을 때도 믿기지 않을 때가 많다. 내 배 아파서 목숨 걸고 낳았는데도, 그 경험이 아직도 생생한데도, 이렇게 살아 있는 내 자식을 볼 때면 정말 생경하고 놀랍다. 그것도 이렇게 예쁘고 착하고 귀여운 딸이라니. 장난꾸러기 같은 그 미소를 보면 난 절로 얼굴에 화색이 돈다. 걔한테 맛있는 걸 먹이고, 재밌는 걸 보여주고, 뭔가를 함께할 때 난 정말 행복하다. 말 그대로 형용할 수 없는 행복감이다. 어디서 읽은 적이 있는데, 신은 사람과 사람 그 사이 어딘가 존재한다고. 맞는 말 같다. 신을 믿진 않지만, 내 딸을 안고 대화할 때면 나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독실한 감정 같은 게 생겨난다. 피로 이어진 믿음인지, 단순히 자식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말 특별한 느낌이다. 그러면서 엄마로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든다. 내가 먼저 아름답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야 한다. 딸은 나를 보고 배울 거다. 엄마가 사는 삶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옆에서 보며 느낄 거다. 자신의 존재를 만들어준 두 사람, 전남편과 나의 인생을 평생 동안 지켜보겠지. 우리는 기필코 아름답고 자유롭게 존재해야만 한다. 딸을 위해서라도.


OO아, 엄마는 널 사랑해. 그런데 엄마는 많이 부족한 인간이야. 아프기도 하고. 곧 사회생활을 시작하는데 널 위해서라도 열심히 돈을 벌게. 그래서 네 곁으로 갈게. 엄마가 힘을 내서 병도 이겨내고 정상적으로 살아볼게. 무슨 일이 있으면 항상 달려갈게. 엄마를 믿어줘, 우리 딸. 엄마는 네 뒤에 항상 든든하게 버티고 서 있을 거야. 너를 위해서라도 난 절대 자진해서 생을 등지지 않을 거야. 다시 조증이 발병되더라도, 입원을 하더라도 꼭 다시 이겨내고 네 곁으로 갈 거야. 약 꼭꼭 잘 챙겨 먹고 밥도 잘 먹을게. 우리 OO이도 밥 잘 챙겨 먹고 아빠 말씀 잘 듣고 있어야 돼. 우리 딸, 사랑하는 우리 딸. 엄마도 산타 할아버지한테 우리 딸 건강하게 해달라고 선물 달라고 할게. 네가 그렇게 소원 빌었던 것처럼. 착한 우리 딸... 너무 사랑해. 너무 너무 사랑해. 내 목숨 바쳐 너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정말이야. 엄마는 널 가지고 낳아 놓은 게 태어나서 제일 잘한 일이라고 생각해. 너를 존재케한 일은 내가 한 것 중 가장 위대한 일이야. 너는 날 살게 해, 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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