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Review] Hello Vietnam
“안녕! 베트남! 그동안 잘 있었니? 보고 싶었어! 이제 우리 함께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보자!”
코로나 장벽이 낮아져 다시 예전처럼 베트남을 자유롭게 왕래하게 될 때, 나는 베트남에게 이런 인사말을 건넬 것이다. 이런 내 마음에 대리만족의 불꽃을 심어주는 소설을 만났다.
<Hello Vietnam>의 저자 구자형님은 베트남 전문가가 아니다. 대중음악 관련 20여편의 책을 출간하였고, 라디오와 TV 방송작가이자 싱어송라이터로 평생을 살아온 감성이 충만한 예술인에 가깝다. 그런 그가 여행으로 우연히 방문한 베트남 호치민 통일궁에서, ‘갑자기 영감을 받아 쓰여졌다’는 책이 바로 <Hello Vietnam>이다. 그가 받은 영감은 15년 이상을 베트남과 함께 해 온 나에게 ‘베트남의 정체성과 사업가 정신’의 맥락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었다.
(사진출처: 필자 촬영)
<베트남 비즈니스 수업>을 집필하면서 나는 베트남의, 베트남 사람들에 의한, 베트남 사람들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비즈니스를 찾아 베트남 스타트업 대표들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한 명을 제외하고 스타트업 CEO들은 모두 해외 경험이 있었다. 인터뷰 공동 질문인 ‘왜 이 사업을 하는가?’ 에 대해 이들은 “얼마든지 세계 무대를 선택할 수도 있었지만, 베트남에 기여하고 싶어서 베트남으로 돌아와 사업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여행을 갔을 때 비로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듯이, 이들의 해외 경험은 자신과 베트남과의 연결을 강화한 것이다.
이 책의 중심 인물인 다낭(Danang), 릴리(Lilly, 다낭의 딸)도 비엣끼에우(Viet Kieu, 베트남 교포)다. 다낭은 메콩커피의 대표이며, 릴리는 사진작가이다. 다낭의 어머니이자 릴리의 외할머니인 후에(Hue)는 베트남 커피 산지로 유명한 부온마투옷 최대 커피 농장주의 딸이자 베트남 궁중요리 대가로 베트남 전쟁 당시 남베트남 대통령궁의 셰프였다. <Hello Vietnam>은 베트남전쟁 때부터 현재까지 이 3대의 스토리를 통해 ‘베트남의 정체성’을 전달하며, 정체성을 발현한 사업가 정신까지 독자의 가슴에 전달하고 있다.
<목차>를 지나 <1부>로 넘어 가는 붉은 간지에는 베트남의 정신적 영웅인 호치민의 메시지가 나온다. ‘인간의 정신은 인간이 가진 무기 보다 강하다’. 이러한 편집은 베트남의 정체성을 담은 ‘정신’을 보여주려는 작가의 의도이지 않을까?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 대통령궁 함락 모습>
(사진출처: 월간조선)
<Hello Vietnam>은 1975년 4월 30일, 남베트남 대통령궁이 북베트남군 탱크에 의해 함락되던 날을 배경으로 시작된다. 베트남의 통일을 상징하는 이 곳에는 베트남의 적군인 미군사고문단장 에반 윌리암스(Evan Willams)을 사랑한 후에(Hue)의 러브스토리가 머물고 있다. 후에는 호치민의 오른팔이자 월맹군 장군인 뚜앙에게 에반을 독살하라는 지령을 받는다. 후에는 커피에 독을 타서 남베트남 대통령과 에반에게 가져가지만, 그 순간 후에의 눈에는 아이들과 저녁을 즐기는 평화로운 모습이 들어온다. 문득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오른 그녀는 일부러 넘어져 독이 든 커피를 쏟아버린다.
왜 독살을 하지 않았냐는 뚜앙의 다그침에 그녀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못해요. 아이들이 있었어요. 강아지도… 웃음소리가 들렸고 너무나 평화롭고 사랑스러운 시간이었어요. 만약 아이들이 없었다면 아니 그것도 잘 모르겠 어요. 어쩌면 아이들이 날 살리고 모두를 살렸을 거예요. 단지 그것뿐이에요. 그 순간에는…”
나는 이 대사에서 베트남 사람들의 ‘가족주의’를 읽을 수 있었다. 가족과 평화를 사랑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은 오랜 전쟁을 경험한 베트남 사람들이 터득한 본질 중 하나이다.
그리고 후에의 에반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적군이기 이전에 똑같은 인간’으로서 사람을 대하는 베트남 사람들이 가진 ‘포용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순간, 후에의 선택은 어쩌면 ‘호치민의 정신’을 더 잘 반영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기에 적군이더라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독립선언문의 내용처럼…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습니다. 그 누구든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 받았습니다. 그것은 생존과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 등이 바로 그러한 권리입니다. 동포 여러분 내 말 알아듣겠습니까?”
- 1945년 9월 2일 바딘 관장, 호치민의 독립선언문의 내용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지도’에 따르면 평화는 600, 사랑은 500, 포용은 350에 해당하는 매우 높은 의식수준에 해당한다.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의식지도>
커피가 베트남 대표 산물이듯, 이 소설에서 커피는 핵심 소재다. 후에의 딸, 다낭은 메콩 카페를 글로벌 시장에 런칭하는 사업가이다. “No War, Yes Peace”는 전쟁 2세들이 지향하는 베트남의 정체성이다. 그래서 메콩 카페는 베트남 전쟁 때 고엽제가 많이 뿌려진 땅을 매입하여 커피 콩을 심어 평화의 씨앗을 전세계에 뿌리려는 가치를 실천하고 있다.
다낭은 한국의 메콩카페 대표에게 너무 사업을 확대하지 말라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한다.
“바빠지면 영혼이 사라지기 쉽죠. 그래서 돈만 남고 나중엔 숫자만 남죠. 인간이 계산기 되는 거 잠깐이에요. 그러면 메콩카페에서, 메콩카페 커피 향에서 영혼이 사라지니까. 서울의 메콩카페에 오는 사람들이 모두들 멋진 영감을 받길 바라요.”
커피는 ‘영혼과의 대화, 영감을 얻는 순간’을 연결하는 매개체인 것이다. 메콩카페는 돈을 좇아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닌, 영혼을 담아 영감을 파는 사업가 정신을 가진 곳이다.
<부온마투옷의 세계 커피 박물관>
(사진출처: 굿모닝베트남 미디어)
다낭은 부온마투옷에 있는 커피 농장에 한국 프랜차이즈 대표를 초대해 와인을 권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단 와인 한잔씩 하죠. 안주는 치즈와 과일밖에 없는 게 아니라 치즈도 있고 과일도 있고 게다가 베트남의 숨결, 밤바람도 있어요. 자, 드릴 게요.”
나는 이 대목에서 베트남 사람들의 ‘자연주의’를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베트남의 밤바람은 정말 시원(mát mẻ) 하다! 한 낮의 무더위는 사라지고 밤에 느낄 수 있는 시원한 바람은 정말 선물과 같은 경험이다. 베트남의 밤과 낮은 참으로 ‘대조’적이다.
인터뷰했던 못(Một, 베트남의 정체성을 반영한 스니커즈 브랜드)의 대표도 ‘현대 베트남의 정체성’을 ‘대조’라고 정의하했다. 베트남의 오토바이 행렬은 매우 시끄럽고 복잡하지만, 정작 그 안의 운전자의 표정은 평화롭다. 도시의 대로변은 매우 번화하지만, 조금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매우 조용하고 한적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 역시 ‘대조’적으로 삶의 아이러니를 상징한다. 다낭의 딸 릴리는 매년 하루 커피 농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이런 커피 농장의 하루 일당은 1달러, 일 년 내내 커피를 따면 365달러”
이에 비해 커피 가격은 너무 비싸다. 하지만 농장이 있는 곳은 물가가 싸고 돈 대신 정으로 사는 곳이라며 릴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기주의와 바꾼 친구, 개인주의와 바꾼 사랑이 (원래) 우리들의 생존방식이었을 거야. 그로 인해 버려진 것들이 여긴 살아 숨쉬고 있고”
릴리의 엄마 다낭도 돈만 밝히는 매점매석꾼들에 의해 커피 가격이 오르지 않게 하기 위해, 그래서 누구나 평등하게 커피를 마시도록 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사랑을 눈앞에 두고서도 사랑을 몰라보는 것 그래서 사랑을 알지도, 만나지도, 느끼지도 못한 채 죽어가는 사람이에요. 이런 사람을 풀잎의 시인 월트 휘트먼은 지상에는 2미터가 안 되는 관들이 너무 많이 걸어 다닌다고 했어요”
“커피는 도피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 잠시 행복하달까요? 평화를 회복하고 내 시간을 되찾는데, 아니 탈환이란 말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커피를 통한 도피, 무의식적인 평화 회복, 자유 느낌은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그래서 너무나 중요한 잠시의 아름다운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태국의 코끼리똥 커피>
사진출처(https://www.popco.net/)
3대 릴리의 커피 이야기는 태국의 코끼리똥 커피로 이어진다.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된 릴리는 코끼리 보호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그녀의 눈에는 투어 라이딩 코끼리의 허리 디스크 문제, 아기 코끼리를 훈련하는 파잔 의식(어미와 강제로 분리된 새끼 코끼리는 일주일 동안 좁은 우리에 갇혀 네 발과 몸통이 묶인 채, 계속 매질을 당하며 코끼리는 야생의 본성을 잃고 사람에게 복종하게 됨) 등 코끼리의 고통이 들어와 이를 사진에 담는다. 릴리에게 코끼리는 삶의 고통, 커피는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평화의 미소, 즉 ‘대조’다.
<파잔 의식 사진>
(사진 출처: dailymail.co.uk)
릴리는 <코끼리와 커피 그리고 칸트 – Rain Dance>라는 사진전을 세계 21개 도시에서 개최를 한다.
“코끼리를 살리고 누군가 자유롭게 행복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그런, 온 세상이 평화로운 새로운 시대를 위해 오늘 릴리의 사진전이 시작됐습니다.”
후에의 커피농장은 다낭에게 메콩카페가 되고, 릴리에게는 코끼리를 살리는 ‘평화’로운 시대로 연결이 된다.
릴리의 사진전에 코끼리, 커피와 함께 등장하는 칸트는 릴리의 한국인 남자친구이지만, 베트남의 정신과 맥을 같이 하는 “자유와 독립”을 기반으로 릴리와 동행하며 사업가 정신을 발휘한다. 칸트는 그의 본명은 아니지만 자신을 칸트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저는 예전부터 세상에 평화가 오려면 지구촌 80억 명 지구인 모두가 저 마다 하나의 국가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진짜 개인의 자유와 독립이 아닐까 싶어요. 임마누엘 칸트도 그런 생각을 이미 했어요. 사람은 저마다 인간이 알 수 없는 초월적인 존재, 신이라고 해도 좋고요. 아무튼 그 신성으로부터 선한 의지를 공급받는다는 거죠. 그래서 그 선한 의지로 점철된 완벽한 평화 인생의 세상을 살기 위해서는 인간 개개인 누구나 선한 입법을 자신의 삶 속에 스스로 제정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거죠. 그걸 기반으로 해서 지구엔 영원한 평화가 오게 되고요.”
칸트는 <글로벌 피스 21 콘서트>를 릴리의 사진전이 개최한 21개 도시에서, 그 도시의 아티스트들과 세계적인 아티스트들이 함께 하는 무대를 기획한다. 전세계 동시 생중계하는 라이브 콘서트로, 동시에 전 세계인들이 즐기는 콘셉트다.
‘국경과 피부색과 계급과 빈부차이, 종교, 남녀노소의 경계를 모두 뛰어넘어 우리가 사랑스러움을 회복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인간임을 재인식하고 함께 증명해 내는 콘서트가 될 거야.’
그리고 평화라는 콘셉트에 맞게 베트남 전쟁 시 고엽제 피해자들을 위한 평화 기부도 함께 실행한다.
‘내 마음을 채우고 내가 그것에 대해 더 자주 깊이 생각하면 할수록 새로운 경외심과 존경심을 더해주는 것 두가지가 있다. 머리 위에 별이 빛나는 밤하늘 그리고 내 마음의 도덕법칙이 바로 그 둘이다.
- 임마누엘 칸트의 묘비명
베트남이 성장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정신’ 때문이다. 후에는 의식수준 500의 사랑을 추구했다면 손녀인 릴리는 의식수준 600인 평화를 추구한다. 여기에 칸트처럼 마음을 채워 자주 깊이 생각하는 힘으로 생각을 구체화시키는 사자같이 젊은 사업가들이 많다.
이 책의 제목이 <Hello Vietnam>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Hello Vietnam>은 다낭이나 릴리와 같은 비엣끼에우인, 벨기에 태생의 팜뀐안(Pham Quynh Anh)의 노래 제목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발매되자 마자 큰 인기를 얻으며 베트남의 대표곡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가사가 전하고 있는 메시지는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 알고 싶어하는 뿌리에 대한 정체성을 담고 있다. 이 노래가 베트남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세계인의 공감대를 얻은 것은 인생에서 자아 정체성을 찾아가는 사람들의 정서와 이어지는 면이 있기 때문이리라.
(사진출처: https://hopamviet.vn/)
오랜 기간 전쟁으로 중국, 프랑스, 미국 등 외세의 영향을 받아온 베트남, 유교와 사회주의 영향으로 인한 강한 가족주의, 승전국으로서의 높은 자존감, 자연과 더불어 평화를 지키려는 일상들! 이 모든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베트남 사람들에게 ‘베트남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한다.
사람은 원석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자신의 강점을 발견해 보석이 되어 간다. 강점은 자유, 독립, 행복, 사랑, 포용 등 삶의 이유인 사명(Mission)과 연결되며, 어떤 사람은 예술가로, 어떤 사람은 연예인으로, 어떤 사람은 스포츠 선수로, 어떤 사람은 사업가로 각자의 길을 찾아간다. 일과 삶은 본래 하나인 것이다. 사람은 일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간다.
나는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듯, 베트남이 ‘메콩강의 기적’을 만들어낼 것으로 확신한다. 베트남 사람들이 지향하는 가치들이 긍정적인 에너지(Power)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쓴이 이지연
<베트남 비즈니스 수업> 작가
베트남비자인캠퍼스 대표
비자인소셜클럽 파운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