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여운 것들> 리뷰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가여운 것들>은 2024년 3월 6일에 개봉한 영화이다. 프랑켄슈타인을 재해석한 앨러스데어그레이의 소설 <가여운 것들>이 원작이다. 영화와 소설,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전체적인 분위기 파악을 위해 소설을 보고 가는 것을 추천한다.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되어 황금사자상을 수상하였으며 제81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제9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 11개 부문 후보에 올라 더욱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의사 고드윈 백스터 박사는 유아 수준의 지능을 가진 의문의 여인 벨라와 살고 있다. 마치 자신의 딸처럼 아끼며 그녀에게 말과 행동을 가르친다. 그의 성장을 기록하는 실험을 보조할 목적으로 제자 맥스를 집에 불러들여 벨라를 관찰하게 한다. 벨라는 날이 갈수록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갈망이 넘쳐나고 세상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벨라에게 반한 변호사 덩컨이 등장해 더 넓은 세계를 탐험하자는 제안을 한다. 처음 마주하는 세상과 사람들 앞에 놓인 벨라는 어떤 모험을 하게 될까.
한 여성이 뛰어들고 같은 얼굴을 한 여성이 집 안에서 뒤뚱뒤뚱 걸어 다니고 피아노를 꽝꽝 두드리는 등 어린이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벨라 백스터. 고드윈 박사가 재창조한 생명체로 죽은 어른의 몸에 태아의 뇌를 이식하여 되살아난 새로운 생명체이다. 조금씩 성장해 가는 벨라는 항상 바깥세상이 궁금했지만 나갈 수도 없고 경험할 수도 없었던 답답함이 그녀의 분노를 키운다. 그곳에서 새로이 만난 사람들을 통해 집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벗어나 덩컨 웨더번과 함께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모험을 떠난 곳에서 많은 것을 눈에 담던 중 덩컨 웨더번의 집착으로 인해 또 다른 폐쇄적인 공간에 갇힌다. 바로 배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나름대로 여러 가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그녀에게 가치 있는 경험이 되는 사회의 잔혹함을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유람선에서 만난 할머니와 흑인 냉소주의자를 만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하고 현실을 자각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겪는 부유함이 감히 누려도 되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밀려오며 허무함과 슬픔이 밀려들어왔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몸을 생산 수단으로 삼아 자본주의에 뛰어들고 사회주의를 습득한다. 사람들의 탐욕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다분히 추악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녀를 취하려 하는 남자들의 저열함이 자유에 대한 욕망을 키웠고 또 다른 방식으로 대처한다. 창조된 것만으로도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으며 스스로의 힘으로 결정하고 꾸려가는 삶이 더 완성된 모습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괴물에 불과했던 창조물이 보다 더 나은 결과인 인간으로 발전한 것이다.
그녀의 욕구를 표현하는 장면 중 가장 도드라는 것은 다름 아닌 성적 욕망이다. 벨라의 욕구는 다방면으로 펼쳐져 그것을 충족하기 위해 다분히 노력하는 모습을 하고 있다. 영화 속에 정사씬이 유독 많은 편이라 과하게 여겨질 수 있지만 남성들을 이용하여 주체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는 장면이라고 볼 수 있다. 어쩌면 벨라는 성인의 몸에 태아의 뇌를 이식한 미성숙한 여성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자발적으로 모험을 떠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지적 호기심을 충족한다. 몸은 고드윈 박사가 창조했지만 자신의 내면은 스스로가 창조하는 모습이 벨라의 자유를 미성숙한 여성이 어떻게 표현하냐 물음에 충분한 설명이 될 것이다. 그 장면은 원초적 욕구를 충족하고 자신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한 과정이다. 벨라의 삶은 누군가에 의해 창조된 것이었으며 그것은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으나 자신의 욕망으로 다시 그 여백을 채워간다.
어른의 몸과 아이의 머리로 살아가는 벨라는 원초적 욕구를 드러내는 반면, 기하급수적인 성장을 통해 자아를 확립해 간다. 다만, 일반적인 성장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여러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 특히 성적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거리낌 없는 무분별한 성관계로 인한 문제가 생긴다. 일반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자유에 따른 본능에 충실한 벨라는 자연스레 통제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것을 이해할 수 없고 이해할 생각도 없었던 터라 통제에 따르지 않는다. 그렇게 타인의 통제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간다. 그녀의 기반이 된 건, 자신의 창조자인 갓윈에서 배운 언어와 해부학 지식을 비롯한 것들이었다. 비록 그녀는 타인에 의해 '가여운 것'이 되어버렸지만 앞으로 그녀가 만들어갈 새로운 세상은 더 이상 '가여운 것들'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 말하고 있었다. 유일한 희망과 어떤 절망이 불러오는 감정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아마 세상은 그녀를 끊임없이 탐하려 하고 착취하려 들겠지만 그녀는 그것에서 벗어나 또다시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선정적인 장면에 실망하기엔 이 가여운 것들의 날갯짓이 너무나도 우렁차다.
기존의 방식은 새로운 방식으로 대체되고, 그 새로운 방식마저 영원하지 않다.
원작 소설을 감상하며 벨라의 시점으로 이 이야기를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영화가 그 궁금증을 해소해 준다. 소설이 책 속의 책을 나타내며 허구인지 진실인지 의구심이 들게 만들었다면 영화는 그 부분을 제외한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소설과 다르게 벨라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 가장 두드러지는 차별점이다. 소설에서는 버려진 서류 더미에서 발견된 한 권의 책에서 발견한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며 편지로만 그녀의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고 그 부분에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벨라의 시점에서 시작하여 그녀의 욕망, 주체적인 삶을 그려가는 모습이 책의 여백을 채워주는 것 같다. 특히 벨라로서 성장하는 엠마스톤의 연기 덕분에 영화가 더욱 다채롭게 느껴졌다. 소설이 프랑켄슈타인, 파우스트와 같은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봤다면 영화는 반기독주의 관점에서 바라본다. 감독이 원작 소설의 캐릭터를 잘 해석하여 영화로 잘 표현해서 재미있게 감상할 수 있었다. 독특하고 기괴한 매력을 가진 소설인만큼 어떻게 영화화될지 궁금했는데, 그 기대감을 충족해 준 영화였다. 다만, 소설 속의 벨라가 자신의 꿈을 찾아 어떤 모습으로 나아갔는지 명확하지 않아 그 후에 펼쳐진 그녀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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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신이라 불리는 이에게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채워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다뤄내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이전 작품에서도 사회적 문제와 인간 본성에 대한 탐구를 중심으로 다뤄왔다. <가여운 것들>에서는 인간 본성과 욕망뿐만 아니라 자유와 통제, 성장과 변화에 대한 주제를 더 다양하게 다루고 있다. 이전 작품들보다 감정적인 측면을 더욱 강조하는 장면들이 기존 스타일과는 좀 다르게 여겨졌다. 덜 불편한 장면과 덜 냉소적인 시선은 란티모스의 착한 맛이라고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맛도 나쁘지 않았으나 기존 란티모스의 매운맛을 즐기던 팬들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연출이나 카메라 워크, 영화의 색감이 인상 깊었다. 소설 속에서 상상했던 기괴한 세계를 잘 표현해 내서 좋았다. 매력적인 인공적 관계와 자신과 잘 맞는 옷을 입을 때 드러나는 또 다름의 가치를 보여주는 영화였다.
프랑켄슈타인을 재해석한 원작 소설 <가여운 것들>을 바탕으로 하여 동화 같은 이야기라고 하기엔 기괴하고, 기괴하다고 하기엔 기묘한 매력이 있는 영화이다. 허구적인 과정이라는 것을 드러내듯, 영화는 이것이 영화임을 매번 강조한다. 인공적인 공간에서 펼쳐지는 기괴한 세상의 이야기는 색채감이 도드라지며 그들의 민낯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다. 음악을 통해 생동감을 펼쳐내고 연출을 통해 우아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특히 벨라의 성장에 따라 달라지는 말투와 몸짓의 변화를 잘 표현한 엠마스톤의 연기가 압도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