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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드레 Apr 24. 2024

부끄러운 법정, 미국의 민낯.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리뷰


애런 소킨 감독의 <트라이얼 오브 시카고 7>은 2020년 10월 16일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영화이다. 1968년 시카고에서 벌어진 시위대와 경찰의 충돌 사건과 그에 대한 재판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골든 글로브 각본상을 받았으며 다양한 영화제의 후보에 오르기도 하는 등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임을 증명하기도 했다. 실화 바탕의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편집과 연출을 통해 흥미롭고 몰입감 있게 표현해 냈다는 점이 영화의 완성도를 더한다.



불합리한 일에 대항하는 일.


베트남 전 반대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던 마틴 루터 킹 목사와 로버트 케네디 의원이 암살되고 린든 존슨 대통령의 베트남 전쟁 지속 정책으로 인해 젊은이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다. 그리고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로 '휴버트 험프리'를 선출하기 위해 1968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며 시카고에 많은 청년 운동가들이 모이게 된다. 전당대화장에 모인 청년 운동가들은 체포되었고 1969년 주동자 8명을 내란죄로 기소한 재판이 열리게 된다. 편향적인 판사와 검찰의 집요한 방해로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하는 와중,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가 나오게 되며 판결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듯 보였다.



민주주의란.


그들에게 추구하는 이상과 현실의 나열은 명확하게 달랐다. 그래서 지금 당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대한 차이가 존재했고 그것이 갈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적인 것은 다르지 않았음을 확인하며 다시 뜻을 모으게 된다. 다양한 의견이 모이며 그 모든 의견이 수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토론을 통해 다수의 의견에 따르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이다. 하지만 다수결과 자유는 어떤 사람이 권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독재'로 향할 수 있다는 것을 확연히 보여주는 제도이기도 하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끊임없는 논의와 감시가 민주주의의 의미를 제대로 되새길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나의 이야기를 강요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개인적으로 생산적인 토의가 나오는 이 장면이 좀 더 길게 나왔으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을 주지 않아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드는 만큼 그들의 이야기를 더욱 자세하게 듣고 싶었다.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


피고인 8명 중 7명은 윌리엄 컨슬러 변호사가 변호를 맡게 되었고, 1명인 바비 실은 찰스 게리 변호사가 변호를 맡게 된다. 하지만 첫 공판 날 게리 변호사가 수술을 받게 되어 재판 연기를 신청했지만 호프만 변호사가 재판 연기를 거부하며 변호인 없이 재판에 참석하게 된다. 권리 침해에 해당하고 그 처사가 상당히 불공정하고 불합리했지만 이에 대한 이의제기도 허용되지 않았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흑표당의 대표였던 프레드 햄프턴이 FBI에 의해 암살당한 사실 또한 알게 된다. 그는 재판 중 자신의 권리 침해와 프레드 햄프턴이 FBI에 의해 살해된 것을 항의하였지만 그를 이유로 사슬에 묶이고 재갈까지 채워지는 인권 탄압 행위를 당하게 된다. 이를 본 슐츠 검사는 실의 모습이 동정심을 갖게 할 것을 우려하여 그를 이 재판에서 제외하자고 요구한다. 재판은 그렇게 시카고 8인에서 7인의 재판이 된다.


흑표당 대표인 프레드 햄프턴, 흑표당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를 참고하면 그 내용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민주주의를 해치는 일.


이 영화를 지금 보니 또 다른 것이 보인다. 미국 정부의 졸렬함, 법의 불공정성, 법정의 부끄러움. 이외에도 애초의 불공정성과 비형평성은 그때 당시의 판결이 제대로 된 판결이 아님을 보여준다. 미국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민주주의는 현재 잘못된 이들이 권력을 잡으며 그 의미를 퇴색시키고 있었다. 가장 근본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민주주의를 제대로 이끌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좁은 재판장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고 있었다. 특정 인종에게만 행해지는 법의 잣대,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하는 판사의 태도, 피고인에게 유리하지 않은 증거, 이미 정해진 판결, 피고인을 대하는 자세는 과연 무엇을 위한 정의인가. 미국 정부와 미국의 법원이 행한 부끄러운 행위는 결코 정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잊어서는 안 될 탄압의 역사는 아무리 그들이 거짓을 오도해도 결코 진실을 덮을 수 없다는 것은 명확하게 드러낸다.


영화의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가 바로 마지막 공판 중 이루어지는 헤이든의 명단 낭독 장면이었다. '베트남 전쟁 반대'라는 정치적 메시지를 탄압하고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정치 재판임을 상기시키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통쾌하다는 것이 가장 영화를 흥미롭게 만드는 점이다. 영화 내내 레니 데이비스가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장병들을 기록했고 모두 4,752명의 이름이 종이에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마지막 공판이 시작되며 재판 과정 중 가장 존중과 반성을 보였던 헤이든에게 피고인을 대표한 최후 변론이 맡겨진다. 그는 최후 변론 시간이 되자 4752명의 이름을 낭독하기 시작하고 판사는 이에 당황하여 고함을 질렀고 방청객들은 박수를 치는 모습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이들 7명 중 5명은 5년 형을 선고받지만, 연방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되었고 실은 살인 혐의를 벗게 되었다고 한다. 바이너와 프로인스는 애초에 죄가 없지만 헤이든, 애비, 델린저, 레니, 루빈 이 다섯 사람에게 배심원이 유죄를 선고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줄이고 재판이 공정한 척하기 위한 술수였다. 그 후, 베트남 철수 공약을 내세웠던 리처드 닉슨이 제37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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