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트루먼 쇼> 리뷰
영화는 완벽한 상상 속 세계를 제공하고 관객들은 그것을 통해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할 수 있게 된다. 한 번쯤은 삶이 카메라 렌즈 뒤의 무대에서 일어나는 드라마와 같은 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면 이 영화를 추천해주고 싶다. 피터위어 감독의 <트루먼 쇼>는 1998년에 개봉한 미국 영화이다. 다양한 영화제에서 수상하여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현실과 상상의 경계에 머물게 하는 <트루먼 쇼>의 세상으로 당신을 초대하려 한다.
24시간 동안 방영되는 영화 속의 TV 버라이어티 쇼 '트루먼 쇼'가 시작된다. 이 '트루먼 쇼'는 트루먼 버뱅크라는 사람의 삶을 방송하는데, 그의 일수거일투족을 찍으며 큰 인기를 얻고 있는 최고의 인기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본인은 자신의 생활이 생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가 평생을 살아온 섬 씨헤이븐은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된 거대한 세트장으로 그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연기자인 가상의 공간이다.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고 평소와 같았던 어느 날, 이상함을 알아챈 건, 모르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이름을 안다거나 뭔가가 어색한 상황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는 주변 사람들과 어릴 때, 사라진 아버지까지 모든 게 수상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요한 상황에서도 어딘가를 바라보며 상황과 맞지 않은 음식을 추천해 주는 모습이 가장 황당스러웠다. 어떤 특별한 행동을 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트루먼을 막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는 모습을 통해 서서히 무언가 어색하다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늘 같은 일상이었지만 다시 보니 지나치게 반복되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살던 세상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한다. 그리고 진심이 되어야 할 말이 거짓처럼 비수로 꽂힌다. 가장 소중하게 여겼던 친구마저도 자신을 속인 사람들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되며 모두를 속이며 탈출을 감행하게 된다. 과연 트루먼은 무사히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까.
그의 한편에 남아있었던 첫사랑의 존재는 그의 의지이자 '변수'가 된다. 실비아는 그저 비중이 없는 단역 연기자였지만 트루먼이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며 예상과는 다른 이야기 전개로 이어진다. 처음 트루먼이 실비아에게 관심을 가질 때, 주변 인물들이 감독이 의도한 대로 이야기 전개를 이어갈 수 있도록 그 두 사람의 시야를 막아섰다. 하지만 방해할수록 더 커지는 마음은 실비아에게도 와닿아 사랑으로 발전하고 트루먼에게 처음으로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이 된다. 그 뒤로 트루먼쇼에서 해고된 그녀는 현실 세계에서 끊임없이 트루먼 쇼 반대 운동에 참여하여 트루먼이 현실 세계로 나올 수 있도록 애쓴다. 반면, 트루먼은 메릴과의 결혼 후에도 실비아를 잊지 못했고 그녀를 찾아 떠나고 싶어 했다. 실비아와의 개인적인 서사는 큰 영향이 없어 보였지만 전반적으로 다른 흐름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실비아는 영화에서 비중은 가장 작지만 감독의 각본에서 벗어나 트루먼의 행동 발현에 큰 도움이 된 사람이다.
'트루먼 쇼'는 트루먼 버뱅크의 생애를 24시간 동안 방영하는 방송 프로그램이다. 많은 사람들이 일상을 뒤로하고 그 방송을 볼 정도로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방송 자체가 말이 안 되고 의도도 이해할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무료함을 달래주고 있는 모습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모두가 트루먼쇼에 찬성을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언급되며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의 모습을 언급하기도 한다. 하지만 소수의 모습보다는 미디어를 '쉽게'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준다. 트루먼이 탈출에 성공하고 그에 따른 성취감을 공유하던 그들은 방송이 끝나자 곧바로 다른 프로그램을 찾는다. 몰입하기는 쉽지만 잊기도 쉬운 미디어 매체의 특성과 그저 오락거리로 소비하는 현대인들을 꼬집는 모습이다. 그리고 가장 주축이 되는 크리스토퍼 감독은 바깥세상을 '트루먼 쇼'의 세상보다 넓고 위험한 세상이라 규정하며 트루먼을 가뒀다. 예측 불가, 통제 불능의 상황은 계속해서 벌어질 수 있음에도 그것을 막고 유토피아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변명을 한다. 일부 진실이라 하더라도 안주하길 바랐던 트루먼이 바깥세상에 나아가는 순간조차 방송을 하는 모습은 진정성이 없어졌다. 그래서 트루먼의 탈출장면이 더욱 가슴을 울렸던 것 같다. 자신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탄생한 캐릭터임에도 불구하고 일말의 애정조차 없었던 매몰찬 모습에서 더욱 끔찍함을 느꼈던 '트루먼 쇼'의 마지막이었다.
안락한 세상 혹은 유토피아를 지향한 듯 보였던 이 세상은 거짓된 위선으로 가득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의 일생을 지켜보는 시청자들에게 그가 구축한 세상, 즉 방송에서 재미있게 움직이는 트루먼의 행동을 통해 시청률도 올릴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을 뿐이다. 어느새, 만든 세상은 트루먼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으며 방송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트루먼은 선천적으로 모험가 기질이 있었고 그 사실을 안 감독은 바깥세상을 경계하게끔 트라우마를 만들고 위험천만한 상황에 빠뜨리는 등 모든 수단을 활용해 그를 방해했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갑갑함에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트루먼은 본격적으로 탈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나선다. 그가 살아가던 이 세상이 모두 가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의 의지는 더욱 강렬해지는 모습이었다. 평생의 위험 요소였던 바다를 건너 감독이 만든 세상의 끝에 도달하게 된 트루먼. 어떤 분노의 감정보다는 자유를 쟁취해서 더욱 기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못 볼지도 모르니까 미리 인사하죠. 굿 애프터눈, 굿 이브닝, 굿 나이트". 아마 그는 모두가 지켜보는 이 세상에서 벗어나 그가 꾸었던 모험가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립고 자신을 응원해 준 로렌 가랜드와 재회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영화의 뒷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으며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뒷 이야기가 물론 궁금했지만 그를 다시 미디어라는 족쇄에 가둬두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서 영화의 결말에 만족하기로 했다. 자유를 쟁취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과 실비아와 함께 할 미래를 그저 상상으로만 떠올리기로 했다. 영화는 카메라 렌즈 뒤의 캐릭터에서 정면을 마주하는 사람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비추며 흥미로움을 더한다. 내가 살아가는 곳이 눈뜨자마자 마주한 이곳이 사실 다 꾸며낸 것이라면 과연 트루먼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말하면 타인의 말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것 같다. 하지만 트루먼에게는 실비아라는 존재가 있었고 나아가고 싶은 '모험가적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탈출로 이어질 수 있었다. 그는 우여곡절 끝에 세트장을 벗어났지만 '우리'는 자유로운가에 대해 묻는다. 우리는 OTT를 통해 미디어 매체 접근에 더욱 용이한 세상에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가 연출하고 편집하여 나온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트루먼처럼 미디어 속에 갇혀 지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주체적'이고 자신의 삶을 잘 꾸려 나가고 있는지 한 번쯤은 삶을 되돌아보는 건 어떨까.
실제 트루먼 쇼라는 영화가 개봉되고 나서 트루먼 쇼 망상을 겪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와 비슷한 방송이 만들어지기도 했는데, 해당 출연자들에게 악영향을 미쳤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