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 리뷰
2023년 이탈리아 최고 흥행작인 <우리에게는 아직 내일이 있다>는 파올라 코르텔레시의 첫 장편 영화이다. 이 영화는 나스트로 디 아르젠토상 최고 작품상을 수상하였으며 제29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 시네마 부문에 초청되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불평등과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기하며 한 여성이 성장하는 여정을 그려내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영화의 주인공인 델리아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며, 남편, 아이들, 시아버지까지 돌본다. 그녀는 여러 가게를 돌아다니며 옷을 수선해 삯을 받고 여러 가게에서 일하는 등 빼곡히 채워진 그녀의 하루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묵묵히 일을 하고 하루를 견뎌낸다. 그러나 남편은 그녀의 노력을 당연하게 여기고, 심지어 "밥값을 하라"는 식으로 빈정댄다. 델리아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남편은 모욕과 폭력을 쏟아낸다. 하지만 델리아는 가족을 위해 또,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침묵'으로 하루하루를 견뎌낸다. 하지만 딸에게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된 델리아는 결단을 내린다. 더 이상 자신과 같은 삶을 딸에게 물려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델리아는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씩 용기를 내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이 영화는 1946년 이탈리아 여성 투표권이 처음으로 시행된 시기가 배경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여성들에게도 참정권을 부여했다. 여성에게 투표권이 생겼지만 그 변화는 표면적으로 존재할 뿐 큰 변화를 불러오지는 못했다. 여전히 사회적 불평등이 뿌리 깊게 남아 있었기 때문에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에서 큰 변화를 맞이하는 건 어려웠다.
여성들에게 이 소식은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그 시점에서 대단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느껴지지는 않는다. 사회의 의식과 사람들의 태도는 여전히 변함없이 그 자리에 머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변화가 무색하게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여성에게도 투표권이 생기는 시대가 도래해도 여전히 여성의 말은 배제되었다. 불합리한 불평등은 계층을 가리지 않았다.
이 영화의 연출은 매우 세련됐다. 고전영화 같은 느낌을 주는 흑백 화면이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일상이 한순간에 스릴러로 변모하는 순간,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현실적인 공포가 더욱 섬뜩하게 다가온다. 다만, 영화 속에서 폭력을 표현하는 방식이 매우 신중하고, 피해자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배려하는 섬세함이 돋보인다. 상황에 맞지 않은 노랫말을 활용하여 그 상황을 더욱 극적이게 표현하는 연출 기법 또한 탁월하다. 영화 속에서 펼쳐지는 재치 있는 대사가 매우 매력적이다.
이 영화가 페미니즘을 지향하고 있듯 아니든 그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영화는 사회가 알고도 묵인해 온 가정 내 불평등을 섬세하게 풀어내고, 거기서 더 나아가 사회의 불평등의 시선을 확장한다. 또한, 전 세계 여성들이 여전히 가부장제 아래 고통받고 있으며, 제도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의식의 변화는 더딘 현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그 상황에 매몰되지 않고 '내일'을 위해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지켜나가겠다고, 또 앞으로 나아간다. 엄마의 용기는 딸의 미래를 변화시키고, 자신의 내일 또한 바뀌게 만든다.
드라마틱한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지만 주인공이 성장해 나가는 방식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이 도느로 하꾜다녀"라는 대사에 마음이 찡했다. 물론, 영화는 기대했던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있지만, 주인공의 내일은 분명 오늘과 다를 것이라고 확신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폭력에 폭력으로 응수하지 않고 묵묵하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델리아의 모습을 통해 용기와 희망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오늘보다 더 나아야 할 내일을 위해 전진해야 한다는 강렬한 메시지가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