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나오카 세이슈의 아내> 리뷰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이 연출한 영화 <하나오카 세이슈의 아내>는 아내 3부작 중 세 번째 작품이다. 실제 18세기 에도 시대의 의사이자 마취수술의 선구자였던 하나오카 세이슈의 실화를 바탕으로 쓰인 아리요시 사와코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감독이 “목숨을 걸고 만들겠다”라고 회사를 설득하여 만든 작품이라고 한다. 두 여성의 갈등 상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어떤 주제가 숨겨져 있을지 자세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카에는 여덟 살 처음으로 오츠기를 봤다. 그녀는 우아하고 품격 있는 이상적인 여성으로서 그녀의 며느리가 되기로 결심하게 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런 오츠기가 자신의 아들 운페이(하나오카 세이슈)와의 결혼 성사를 위해 카에의 집에 찾아온 것이다. 명의가 될 수 있게 내조를 잘할 수 있는 아내를 찾아주는 것이 어미의 도리라고 말하며 "큰 집안에 갇혀 조용히 지낼 것인지 가난한 집에 와서 집안을 일으킬 것인지"를 고려해 달라고 했다. 무사집안이었던 카에의 집안에서는 신분 격차, 집안 내력을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성립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부인을 늘 존경해 왔던 카에는 그녀의 며느리가 되고 싶다며 결혼에 응하게 된다. 그렇게 하나오카 집안의 며느리가 된 카에는 예상치 못한 경쟁구도에 휘말려 들게 되는데...
그런 오츠기 부인과는 달리 하나오카 나오키 치는 풍채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가난한 의사였다. 그의 허세를 들은 사람들은 부인과 전혀 다른 의사의 모습에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 있냐고 의문을 품는다. 오츠기가 16세 되던 해 피부병이 걸렸지만 의사들도 치료를 못하고 있어서 거의 죽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그 나오키 치는 제가 반드시 고치겠다고 말하며 만약 내가 그 병을 고치면 제게 따님을 주십시오라고 했다. 그래서 오사카의 날고 기던 의사들을 모두 제치고 오츠 기를 치료했고 결혼에 성공하게 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남편이 아닌 시어머니를 향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카에의 행동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어머니를 따르겠다는 일념하에 결혼식부터 남편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되었고, 결혼 후에도 3년 동안은 남편이 학업에 정진할 수 있게 열심히 일해왔다. 하지만 운페이가 돌아오면서 시어머니의 태도가 싸늘하게 바뀌며 그들의 관계는 180도 변하는 모습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경쟁상대를 예고한 시어머니는 여자의 덕목을 강조하며 이전에는 하지 않았던 말과 행동을 내뱉는다. 겉과 속이 다른 태도를 보여주는 시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의무를 다하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미완성된 마취약을 완성시키기 위한 운페이의 노력에 도움을 주고 싶었던 두 사람이 경쟁을 펼치게 되는데, 이 갈등은 목숨을 담보로 걸정도로 아주 치열해진다.
이들의 갈등에 가려진 운페이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아들 사이에서 시어머니와 며느리 두 사람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갈등 상황이 계속해서 펼쳐진다. 두 사람의 갈등은 오로지 운페이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상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운페이는 딱히 제지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진정으로 화내야 할 이들에게 초점을 맞추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람은 고양이 몇 마리가 죽어나가도 대의를 위해서라면 괜찮다는 사람인데, 어머니 그리고 아내를 이용한다는 생각이 후반부에서야 보이는 게 너무나도 무서웠다.
어느 집안이든 여자들의 불화는 결국 남자를 성공시키기 위한 도구 밖에는 안 돼요. 그 불화를 견디지 못하는 약한 남자는 비료를 너무 많이 준 나무처럼 말라죽고 마는 거예요. 난 다시 여자로 태어난다고 해도 시집은 안 갈 거예요. 아무리 행복하다 할지라도 며느리도, 시어머니도 안될 거라고요.
역사의 뒤편에는 언제 주인공을 뒷받침해주는 조연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 영화는 기록되지 못했던 역사 뒤편의 여성들의 모습을 조명한다. 여성들이 목숨을 건 희생 속에서 그의 성공이 이루어졌지만 모든 공은 남자에게 돌아간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성의 의무를 다할 뿐이었고 그들의 희생은 당연시 여겨졌다. 한 남자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오츠기 부인과 카에의 모습을 통해 씁쓸함과 허무함이 느껴졌다. 비록 누군가의 아내로서 이름조차 남지 않게 되었지만 그 희생이 당연한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이처럼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아내 3부작은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담아내고 있다. 일그러진 여성들의 운명을 그려냄으로써 그들이 누군가의 아내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그 자체로 존재했던 사실을 마주하게 해 주었다. 수없이 이루어지는 폭력 그리고 마땅히 따라야 할 사회 관습 속에서 일방적인 희생이 의무 혹은 미덕이라 여기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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