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문신> 리뷰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이 연출한 <문신>은 1966년에 개봉한 영화이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페르소나인 와카오 아야코의 폭발적인 연기와 생동감 있는 캐릭터 표현이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만든다.
전당포 사장의 딸 오츠야는 종업원 신스케와 사랑에 빠져 사랑의 도피를 떠난다. 뱃사공 곤지의 도움으로 야반도주에 성공하나 싶었지만 이것은 모두 곤지의 계략이었다. 신스케를 죽이고, 오츠야를 게이샤로 팔아넘길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오츠야는 게이샤에 팔려가고 등에 거대한 독거미 문신을 강제로 새기게 된다. 자객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신스케는 게이샤에서 일하고 있는 오츠야를 찾아가는데..
이 영화는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두 남녀의 사랑의 도피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지만 그 사랑의 도피가 비극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감히 생각이나 했을까. 오츠야는 곤지에 의해 게이샤에 팔려갔고 남자들을 상대하며 뛰어난 게이샤로서 활약하게 된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짓밟힌 채 살아가야 했던 오츠야는 처지에 순응하는 듯 보였으나 내면에 깊은 복수심이 자리 잡아 있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자신을 향해 끝없이 추파를 던지는 남자들을 상대하며 모든 것들을 조금씩 앗아가기 시작했다.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거미처럼 교묘하게 그들을 휘감고 착취했던 남자들의 살점을 뜯어내며 자신을 채워간다.
이 영화에서 문신은 낙인과도 같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등을 감싸고 있는 거미에 의해 철저히 통제받게 되는 상황이 반복된다. 복수를 위해 남자들을 이용하며 가해자가 피해자로, 피해자가 가해자로 엎치락뒤치락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모를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버린 상황 속에서 요츠카의 원동력인 신스케가 나타나게 되면서 무척이나 답답한 상황이 이어진다. 그 때문인지 오츠야의 복수가 그리 통쾌하지는 않게 마무리되었다.
이어서 그녀가 행하는 복수가 통쾌하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던 이유는 남성들에 의해 오츠야의 삶 자체가 송두리째 바뀌었던 반면, 그들의 마지막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마무리됐기 때문이다. 복수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지만 이 영화는 보다 더 현실적인 복수를 행한다. 그 상태에서의 여성이 할 수 있는 방법이 많지 않은 가운데, 남자들의 살점(돈)을 뜯어먹고 피(전부)로 다시 아름다움을 채워가는 것이었다. 타인의 손을 빌려 행하는 복수가 자신의 의지대로 행한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1960년대 일본 영화는 기존의 여성상에 반하는 이미지를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저항'을 영화 속에 녹여내곤 했다. 하지만 지극히 타자화된 시선 속에서 여자 배우들의 나체는 진정한 여성해방이나 인권을 위한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고, 단순히 알몸 자체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남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여성의 이미지는 실제와는 다른 모습이 있기 때문에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영화가 더욱 흥미롭게 느껴진다.
일반적으로 영화에서 그려지는 여성은 모성, 희생, 순애보와 같은 전형적인 여성상을 그리는 인물로 등장하지만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여성 캐릭터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전통을 거부하며 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적극적으로 노력하지는 않으나 의식적으로 자신의 자유를 쟁취하려는 여성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들이 목소리를 의식적으로 내는 모습이 지금의 관점으로는 당연한 것이지만 그때 당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는 대목이었다. 남성의 시선으로 그려진 그 상황 속에서도 여성들이 살아 숨 쉬는 것이 느껴져서 매우 미묘했던 영화였다.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은 여성의 신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남성을 위한 수단이 아닌 여성 스스로가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한다. 특히 <문신>에서는 여성의 신체를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자유라는 주제를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폭력적이고 야망 넘치는 남성이 중점이 되지 않고, 반항적이면서도 정열적인 여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는 전형적인 여성상에 도전하는 시도였으나, 동시에 여전히 수동적인 모습의 여성을 답습했다는 한계도 분명히 드러난다. 오츠야 등에 새겨진 거미가 형상화되어 복수의 대상을 쭉쭉 빨아들이는 모습이 좀 더 노골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만큼 포식자로서의 강렬함은 부족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복수의 끝에서 허무함을 느끼며 왠지 모르게 공허해지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