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리뷰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감독의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는 1974년 개봉한 영화이다. 제27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으며 국제비평가협회상과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1970년대 뉴 저먼 시네마 사조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사랑 앞에 국경과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고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다. 사랑은 과연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을까?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불편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 에미는 비를 피하기 위해 어떤 건물로 들어선다. 그곳은 바로 아랍인들이 출입하는 바였다. 늙고 초라한 행색의 에미는 바에서 누가 봐도 이질감이 드는 존재로 그 안의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는다. 따가운 시선과 그 누구도 환영해주지 않는 가운데, 한 아랍인 청년이 춤을 추자는 제안을 했고 망설이던 에미는 그의 손을 잡고 중앙 무대로 걸어가 춤을 춘다. 그들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춤을 추며 대화를 나누며 그들은 점차 서로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에미와 알리는 대화를 나누며 점차 가까워진다. 마음을 터놓고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은 인종, 나이를 넘어선 특별한 유대감을 형성하게 된다. 때론, 슬픈 기억과 생각들이 마음을 무겁게 만들기도 하지만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행복감은 더욱 커진다. 서로의 쉼터가 되어주었던 두 사람의 마음은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발전하고 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행복할 거라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가족들, 이웃, 직장 동료들 모두가 그들을 비난한다. 그리고 비난은 점차 노골적으로 변하며 그들 사이를 날카롭게 파고들기 시작한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호의적으로 바뀌었지만 그들의 관계는 분명 이전과는 달랐다.
20살의 나이차이, 독일인과 아랍인이라는 사실은 두 사람 사이의 극명한 차이임에는 틀림없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 사실에 개의치 않는다. 서로의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만큼 에미와 알리는 사람들의 노골적인 차별에 대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이 겪는 차별은 증오를 넘어선 경멸이었으며 그것을 온전히 견디기엔 한계가 있었다. 사람들이 서슴지 않게 내뱉는 차별의 언어들이 에미에게 스며든 것일까. 자신이 그리도 경멸했던 태도로 알리를 대한다. 직장동료들을 집으로 초대해 근육 자랑을 한다거나, 알리가 전통 음식 쿠스쿠스를 만들어달라는 부탁을 거절하는 등 두 사람의 관계는 균열을 맞이하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알리와의 관계로 인해 차별과 경멸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아야 했던 에미는 유고 출신의 청소부에게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이는 에미가 차별의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모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 영화가 오로지 로맨스만을 다루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등장하며 다소 충격을 유발하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다. 또한, 이들의 관계를 통해 뿌리 깊게 내려 있는 인종 차별이라는 주제에 다루고 있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영화에서도 묘사되었듯, 당시 독일에서의 아랍인 인종차별은 극심했다. 아랍인에 대한 고정된 편견과 차별은 단순히 변화가 어려운 수준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차별은 그 자체의 단어가 아닌 아랍인과의 구별일 뿐이었으니까. 알리는 엘 헤디 벤 살렘 바렉 모하메드 무스타파라는 자신의 이름 대신에 그들이 부르기 편한 '알리'라는 이름을 택한다. 철저한 외국인이었지만 열심히 살아갔지만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했고 그것은 너무 당연하게 여겨졌었다. 그 순간, 에미가 구원자처럼 등장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사랑은 모든 것을 이길 정도로 강하지만 사람은 그 누구보다 나약하다. 차별 또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대상을 바꾸며 일시적으로 멈춘 것처럼 보일 뿐이다. 이러한 현실을 통해 사회에서 개인이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준다.
타인의 시선으로 그들의 은연중의 불안감을 포착하고 있는 이 영화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라는 제목처럼 개개인의 마음을 파고든다. 수많은 사회적 억압 속에서도 사랑으로 극복하고 편견과 무관용에 맞섰던 초반과는 달리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멀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사랑이 불안을 이길 수 없는 걸까. 은연중의 불안감이 사랑의 틈새를 파고들어 영혼을 잠식하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그들의 관계는 한때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차별의 벽이 공고하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주며 내면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을 시각화한다. 다시 함께하게 된 그들은 다른 변화를 맞이하겠지만 또 다른 시련에 맞설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 영화는 인종차별뿐만 아니라 사랑, 인간관계에 얽혀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시대의 불합리함을 비판한다. 사랑이 모든 것을 이길 수는 없다는 대답을 하면서도, 사랑 밖에는 답이 없다고 말한다. 이 불안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사랑뿐이라며 불안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차별의 당사자인 알리에 대한 이야기가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미가 알리와 함께 하며 겪은 일들은 근본적으로 차별에서부터 시작된 것임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