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혐오> 리뷰
영화 <혐오>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1965년 영화이다. 아파트 삼부작의 첫 번째 작품이라 볼 수 있는 이 영화는 불안에서 강박, 강박에서 혐오로 번져가는 한 여성의 내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내었다. 의도적으로 폐쇄적인 공간을 설정하여 한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불안과 혐오가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다루고 있다. 영화 속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진짜일까? 환상일까?
피부관리실에서 일하는 캐롤은 언니와 함께 낡고 좁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캐롤의 언니는 남자와 자유롭게 연애를 하며 살아가지만 지독한 결벽증과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언니가 마이클과 동거하는 것을 못마땅해하고, 자신에게 구애하는 콜린도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는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났고 혼자 텅 빈 아파트에 혼자 지내게 된 캐롤에게 공포스러운 일들이 벌어지는데..
그녀가 만들어둔 선을 거리낌 없이 넘는 남자들은 틈을 보이면 끝없이 그녀의 내면으로 질주하려 든다. 그녀가 원하든, 원치 않든. 추악한 욕망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며 그 가벼운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돌변한다. 그것은 병든 여자의 탓이 아니라 그 틈새를 파고들어 추악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그 남자의 탓이다. 자신과 타인을 해하는 건 병의 증세뿐만이 아니라 이 세상이 만들어낸 혐오의 일부라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였다. 그 모든 일들이 오로지 캐럴의 강박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하지만 캐럴이 겪는 일들이 사실이 아니라면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해질 것이다.
영화 <혐오>는 폐쇄적이고 불쾌감을 자아내는 공간 속에서 내면의 불안감을 세밀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혐오의 뚜렷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며 시작되는 이야기는 지극히 파괴적으로 이어진다. 일상적인 공간이 공포스러우면서도 폐쇄적인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하면서 불안했던 그녀의 내면은 점점 더 예민하고 날카로워진다. 사실인지 환상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상태에서 캐롤은 점차 공포에 잠식되고, 파괴로 이어지는 변화를 겪게 된다. 영화는 캐롤의 내면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기억이 만들어낸 강박이 불안으로 번지고, 내면의 불안이 혐오로, 혐오는 다시 파멸로 이어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타인에 의해 파괴된 그녀의 내면은 점차 붕괴하며 스스로를 혐오하고 파멸로 나아가는 과정은 괴로움을 남긴다. 이 모든 변화는 그녀가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혐오하며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길로 나아가는 과정이 무척이나 세밀하게 그려져 보는 이로 하여금 괴롭게 만든다. 불안의 모습은 <혐오>가 그린 감정처럼 뚜렷하지 않다는 것을 풀어내며 현대에 이어지는 불안과 혐오의 감정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