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레이타임> 리뷰
자크 타티가 연출한 영화 <플레이타임>은 1967년 개봉작이다. 그의 대표작인 <월로씨의 휴가> <나의 아저씨> <플레이타임> <트래픽>은 그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윌로 씨가 등장하는 이야기이다. 자크 타티의 분신과도 같은 등장인물 월로씨가 프랑스 파리 근교 신도시인 타 티빌에 가서 방황하다가 바바라라는 미국인 관광객을 만나게 된다는 일상적인 이야기지만 집약된 현대 사회를 그려낸 영화라 더욱 흥미로운 영화였다. 제6회 모스크바 국제 영화제 은게오르기상(감독상)을 수상 받아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명작이자 저주받은 걸작이라고 불린다. 이 영화는 자크타티 감독이 10년 간 준비하여 자신의 모든 재원을 털어 넣어 완성한 작품이었다. 또한, 개봉 당시 영화계 인사들이 극찬했던 작품이었지만 흥행에 실패해 감독은 빚더미에 앉았고 제작사는 그 소식에 필름을 난도질하여 155분의 원본은 볼 수 없다고 한다.
특별한 주인공을 내세우지 않아 더욱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윌로 씨는 전작을 비롯하여 자크타티의 영화에서 큰 비중이 있는 인물이었지만 이번 영화에서는 스쳐 지나가는 인물처럼 그려진다는 점이다. 꽤 비중 있는 인물로 누군가를 만나려 하는 모습이나 여러 가지 실수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어떤 곳에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리치이고, 저리 치이고. 투명인간과도 같은 취급에 그는 제대로 따지지도 못하고 인파에 휩쓸려 다른 공간으로 가게 된다. 반면, 조용하던 레스토랑에 사람들이 가득 차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이 연주되며 춤을 추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지배인, 종업원들의 거듭된 실수로 인해 웃픈 상황(?)이 연출된다. 특히 실수를 연발하고 문이 깨졌는데 문이 있는 척 안내를 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하지만 손님들은 이러한 난장판 속에서도 아랑곳 않고 즐거움과 재미를 만끽한다.
고층의 건물과 사람들과 차로 가득 찬 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복잡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람이 가득한 만큼 행동이 제한적이며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마치 게임 속 공간처럼 움직이며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현실과 별반 다르지 않은 획일화된 사회 속 비슷한 옷을 입고 비슷한 행동과 말투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추고 있다. 그들이 웃고 있는 모습이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또한 정교하게 빚어지고 일정한 흐름대로 완벽하게 작동되던 공간이 산만해지면서 점점 엉망진창의 균열을 맞이하고 파괴 직전의 공간으로 변모해 가는 모습을 보며 불안감을 느꼈다. 편함을 위해 시스템을 구축했으나 되려 시스템에 잡아먹히는 상황을 연출함으로써 점점 더 자동화되는 사회에서 모든 것이 멈췄을 때 개인이 얼마나 무력 해질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든다.
자크타티 감독이 영화 속 세상을 통해 보여주려고 한 것은 무엇일까. <플레이타임>은 분명하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는 아니다. 긴 상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나 대사가 명확하지 않다. 영화의 공간은 주로 건물 안의 모습, ]\건물 밖에서 바라보는 건물의 모습, 레스토랑의 모습이 전부라는 게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사회를 축소화시킨 공간을 통해 장면과 장면 사이의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작용한다. 그것을 의도하듯이 사람들이 붐비는 이 공간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그대로 담아내었다. 거의 60년 전에 만들어진 이 영화가 지금의 도시를 그려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부분이다. 영화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다루어지는 타 티빌은 모더니즘 건축 공간이다.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형태로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개인의 정체성보다는 효율, 의사소통보다는 일방적인 소통이 우선되는 공간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환경은 현대사회의 폐쇄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모더니즘 건축이 가져온 비효율적인 인간소외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빚어내는 에피소드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이루어질 수 있다. 이들은 마치 인형처럼 혹은 게임 속 NPC처럼 큰 감정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기술의 발전으로 획일화돼 가는 회색빛 도시, 무채색 옷을 입은 사람들, 그리고 인간성을 상실해 가는 모습을 통해 극도로 발전해 가는 문명사회에 대한 경계를 담아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단순히 문명사회의 발전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만을 담고 있는 건 아니다. 멈출 수 없을 만큼 가속화돼 가고 있는 발전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꿈꿨던 게 아닐까. 바쁜 사회 속에서 쫓기듯 살아가는 것보다 실수가 용납되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섞여 즐거움을 나누는 그런 세상이 펼쳐지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회색빛 도시에서 유일하게 미소를 짓는 누군가를 비추며 영화 속에 숨겨진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잃어서는 안 될 삶의 본질과 가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명확히 인지하고 그 방향이 진정으로 자신이 바라는 미래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