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커밍아웃 이야기를 듣는 건 늘 흥미롭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이야기가 된다면 다소 고통스러울 터.
성정체성을 알게 된 후로 만나는 친구들 써클이 작아졌다는 나의 X의 말에 공감이 가면서도 반기를 들고 싶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숨기고 있는 것이 나의 성격상 말이 안 됐다. 시작은 늘 술이었다. 술이 없으면 커밍아웃을 하지 못했다. 서울의 한 노포에서, 고급스러운 바에서, 덕수궁 주변 펍에서, 강남 한복판의 브런치집에서, 우리 집에서, 나의 커밍아웃 장소는 시간과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술만 있으면 됐다. 술의 힘을 빌린다 하더라도 말하기 직전 심장이 터질듯한 기분이 드는 건 언제나 그랬다.
원하는 목표에 도달하려면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 나의 첫 번째 공략은 열린 시야를 가진 친구들이었다. 외국에 산 경험이 있거나 퀴어 영화를 좋아하는 친구들. 그들부터 공략한 것은 나의 성공의 키였다. 그중 한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들은 날 밤 자다가 몇 번을 깼다고 하지만 그 또한 장난 삼아 이야기할 수 있는 사이여서 다소 충격적이었구나 생각하고 웃으며 넘어갔다. 그들 또한 술에 취해 들은 이야기를 다음날 깨서 곱씹으며 정말 많은 생각을 했겠지.
사실 내가 원하는 건 하나였다. 물어봐주는 것. 친구들끼리 만나면 친구들의 연애 이야기와 싸운 이야기, 파트너가 잘 지내고 있는지 등은 항상 주된 이야깃거리이다. 그들처럼 나도 자유롭게 말하고 고민을 이야기하며 나누고 싶었다. 좋은 친구들을 둔 덕분인지 과분하게 내 파트너를 만나고 싶고 같이 놀고 싶다는 반응을 들었을 때 고마워서 눈물이 날 뻔했다.
열린 사고를 가진 친구들에게만 커밍아웃을 하는 건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옥죄어왔다. 열렬히 사랑하고 있음에도 늘 혼자서 잘 지내는 척해야 했다. 그제야 X의 말이 공감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범위를 조금 더 넓혔다. 이때도 물론 술이 필요했다. 대부분은 놀랐고, 일부는 이제야 말하는 나를 질책했다. 자기가 그런 것도 이해 못 해줄 것 같냐면서. 그중 친한 동생이 한 이야기가 아직도 뇌리에 박혔다.
언니 나는 사실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없어서 잘 모르고 솔직히 생소하기도 해. 근데 언니라서 괜찮아.
그 동생은 그 후로도 늘 나의 연애를 물어봐주었다. 내가 그 친구의 시야를 넓혀준 것 같아서 싱숭생숭하면서도 다행이었다.
이후 나는 쉴 새 없이 커밍아웃을 했다. 외국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하는 과정은 정말 누워서 떡먹기였다 (쉬웠다는 뜻이다). 가장 인상 깊은 친구의 말을 또 인용하자면, "OO아 근데 그게 왜 누가 된다 안된다 할 문제야? 너네 나라는 아직 그러니?" 한국의 LGBTQ 문화에 내 친구들은 되려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나를 보듬어주었다. 오픈 레즈비언으로 살아가지 못하는 나의 상황을 이해해 주고 늘 경청해 주었다. 나에게 퀴어 커뮤니티를 조인하라며 찾아봐주고 각 나라에서 언제부터 동성 결혼이 합법이 되었는지 검색해서 알려준다.
운이 좋게도 친구들의 응원과 관심을 받으며 열렬히 나를 알렸다. 주변 사람들에게 말이다. 나의 몇몇 레즈비언 친구들의 커밍아웃 이야기를 들으면 절망적이고 가슴이 무너질 때가 많다. 점점 더 나아질 때가 올까? 우리 모두가 당당해지는 사회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