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로 집을 옮기는 건 생각보다 분주했고 정신이 없었다. 우리의 신혼집은 약 6년의 시간 동안 많은 짐들이 쌓였고 이 짐들을 세 개로 옮겨야 했다. 가전이나 가구들은 우리 부모님의 집으로, 책상같이 부피가 큰 가구들은 아내의 외할아버지네 창고로, 마지막 하나는 우리가 가져갈 짐들이었다. 우리가 챙긴 짐들은 이민가방 1개, 커다란 캐리어 3개, 기내용 캐리어 1개에 나눠서 챙겼다.
가져갈 것과 놓고 갈 것에 대한 냉정한 평가 후 중요한 것들을 챙겼다. 당장 그곳에서 입을 옷들, 노트북, 그곳에서 읽을 책 같은 것들을 챙겼다. 그런데 캐나다에 도착 후 아내가 일기장을 한국에 놓고 온 것을 알게 되었다. 단순한 일기장이라고 생각될 수 있겠지만 아내에게 일기장은 아주 소중한 존재다.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하고 자신의 기분과 생각을 다스리기도 하는 소중한 것임을 알기에 나 또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아내는 문구류를 좋아한다. 모든 문구류를 선정하기 위해선 엄청난 고민의 연속인 시간을 보낸다. 펜을 고르기 위해선 펜의 두께를 시작으로 펜촉에 있는 볼이 구르는 느낌, 끊어짐 그립감 등등 자신의 원하는 것에 합당한 지 고민해 본다. 아내는 특히나 펜에 진심이다. 펜 수집이 취미인 아내 덕분에 우리 집은 작은 문방구 같은 느낌이 들정도이다. 국내에 있는 거의 모든 펜은 한 번쯤 모두 사용해 봤으며 소비하고 있는 종류도 엄청 많다. 남들 한 개씩 가지고 다니는 필통 또한 두세 개씩은 기본을 가지고 다닌다. 내가 볼 땐 거기서 거기 같은 색이지만 아내의 눈에는 확연한 색차이가 있다며 우매한 나에게 차이를 보여준다. 사실 내가 볼 땐 그냥 파란색 퍼렁색 푸른색 정도의 차이지만... 공책이나 일기장이 아내의 선택을 받기 위해선 우선 좋은 디자인은 필수이며 종이의 질이 매우 중요하다. 아내가 가지고 있는 필기구들이 최고의 컨디션을 발휘할 수 있는 종이여야된다. 너무 미끄러우면 안 되고 너무 거칠어도 안된다. 적당한 저항감을 갖고 있어야 되며 너무 얇아도 안된다.
그런데 이런 아내가 일기장을 놓고 오다니. 이것은 이역만리 캐나다 백수의 삶에 한 가지 목표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이름하여'아내에게 일기장 찾아주기 대작전!'.
구글 지도를 열심히 검색해 봤으나 집 주변에는 그런 것을 파는 곳이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걸 파는 곳이 없어 보이긴 했다. 다행스럽게 다운 타운타운에 문구점을 발견했고 그곳에서 아내의 일기장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문제는 우리 집에서부터 버스를 타고 편도 한 시간을 가야 되는 대장정의 코스였다.
아내에게 문구점이 있다는 희소식을 전하고 우리를 여행하듯 일기장을 찾아 떠났다. 그곳의 이름은 'tiny:아주 작은'이었는데 그 이름에 어울리는 작은 문구점 같았다. 우리나라에 있는 핫트랙스 같은 곳을 생각하고 갔다면 아주 실망했을 규모였다. 하지만 내부는 생각보다 넓었고 정돈이 잘 되어있었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느낌의 매장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새로운 공간이 나오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아내가 한국에서 일기장으로 사용하던 똑같은 노트를 발견했다. 이때의 쾌감이란...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기분이었다. 짜릿했고 매우 신났다. 나는 아내의 필요를 채웠다는 안도감과 행복함에 절어가고 있었다.
원하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발견하는 이벤트. 이게 바로 여행의 묘미가 아닐까?
앞으로 우리의 삶에는 얼마나 더 많은 이벤트가 남아있는 걸까. 우리의 인생은 우리 주변에 있는 행복을 발견하는 데 있는 것 같다. 낯설기만 한 이곳에서 발견한 행복. 이곳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대신 공책은 아-주 비쌌다. 한국에서 한... 두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