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사는 것인가?'
질문부터가 너무 숭고하다. 꼭 우리의 인생에 거창한 목표가 있어야 될 것 같다. 나의 인생의 목적은 적어도 하나의 성(城:castle)쯤은 갖고 있어야 되는 성주여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느낌에 따라서 나는 열심히 살고 싶었다. 노력도 남부럽지 않게 하고 싶었고, 남부럽지 않게 했다고 생각한다. 남들이 욜로(YOLO)와 플렉스를 즐길 때 나는 야근을 하며 돈을 저축했다. 노력하고 아끼고 무리하고 힘을 냈는데 나에게 남은 건 끝없는 공허함과 무기력함이 전부였다.
다시 한번 나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야 되는 것인가?'
똑같은 질문인 것 같았다. 질문을 바꾸어 다시 한번 더 나에게 질문을 했다.
"행복한 삶은 무엇인가?"
정확히 1초도 되지 않아서 정답이 나왔었다.
'적어도 지금 나같이 살지 않는 것.'
15살 중2 사춘기 소년처럼 나는 매일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옳다고 생각하고 달려왔던 나의 인생이 전부 부정되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두려웠다. 이 질문으로 시작한 여행이 이제는 약 4개월이 되었다.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이 땅에서 나는 무엇을 했을까. 먹고, 마시고, 자고, 놀고, 쉬고, TV 보고, 수다 떨고, 글씨 쓰고, 책 읽고. 이게 전부다. 지금의 나는 너무 행복하다.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행복하다. 나의 무기력함도, 다소 늦은 나의 출발도 행복하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을 알게 된 나는 행복하다. 나에게는 쉼이 필요했다. 타인이 선심 쓰듯 잠깐 허락하는 쉼이 아닌 내가 주체가 되어 쉴 수 있는 쉼이 필요했다.
누군가 나중에 후회할 것이라고 섬뜩한 경고를 한다. 늙어 모아놓은 재산이 없어서 리어카를 끌며 파지는 줍게 될 것이라는 저주를 퍼붓는다. 평생 놀고먹기만 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가끔 너무 냉혹한 시선과 그들의 혀끝에서 쏟아져 나오는 창끝같은 말들은 너무하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혹시 모른다, 그때쯤이면 나라가 선진국이 되어 보편복지로 조금은 편한 인간으로서의 자긍심 있는 삶은 가능하지 않을까?
이제는 나를 위해 살지 않을까? 이제는 행복을 좇으며 살지 않을까?
4개월 동안 참 많은 것이 바뀌었다. 몸도 훨씬 좋아졌고, 안색도 좋아졌다. 긍정적인 마인드 역시 더 긍정적이 됐다. 미래를 꿈꾸게 되었고, 희망이 생겼다. 아무것도 안 한 4개월 동안 나는 이렇게 좋아졌다.
앞으로 계속 나는 무엇을 위해 살지 고민하며 살아 것이다. 아마 이 삶이 끝날 때까지 이 고민은 멈추지 않을 것 같다.
다시 질문을 바꿔본다.
"나는 행복한가?"
대답은 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