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다운 니니 Feb 13. 2023

40. 안녕, 위니펙

 유학원을 통해 '위니펙'이란 도시의 이름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잊히지 않는다. 아주 멀고 먼 곳으로 귀양을 가듯 알지도 못하는 도시를 추천받았다.

"잠... 잠시만요... 어디라고요?"라고 다시 물어보고 확실히 들은 이름 위. 니. 펙.

 당시 캐나다에 알고 있는 도시는 서쪽에 밴쿠버, 동쪽에 토론토와 퀘벡, 에드워즈 아일랜드, 북쪽에 있는 처칠정도가 전부였다. 마니토바주도 사실 처음 들었는데 위니펙은 알고 있을 리가 만무했다. 원래 우리의 계획이 무모했다고 하지만 한인도 타 지역에 비해서 많이 없고 알지도 못하는 도시로 가야 되는 걸까 고민이 많았다. 특히나 알아본 바로 겨울이 혹독하기로 유명한 마니토바주의 위니펙이라니!!

 하지만 어영부영 고민하는 동안 시간은 당연하게 흘렀고 정신을 차려보니 난 현실로 위니펙에 도착을 했었다. 이곳에서 정말 좋은 계절인 여름과 낭만적인 가을을 보내고 눈이 오는 9월 우리를 이곳을 떠나게 됐다. 이곳에서 있던 4개월 정도의 시간은 나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됐다. 


 내 인생에서 몇 가지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외국에서 살아보기, 외국인 친구 만들기,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외국에서 보내기, 외국에서 눈 맞아보기, 한 번에 해외 두 개 도시 이상 여행하기, 세계 일주 해보기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하나 둘 이루어졌고 그 시작은 바로 위니펙에서 시작됐다. 그리고 고무적인 것은 이것들은 앞으로도 이루어질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비록 수입이 없어서 불안한 마음이 생기지만 이 불안한 마음을 당장 채우고자 굳이 죽을 것 같은 그 길로 '벌써' 돌아가고 싶진 않다. 자유를 얻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자유의 시간을 통해서 자유를 얻기 위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는 사람과 한 집에 살아가고, 모르는 언어로 대화를 하고, 모르는 길을 지도를 보며 두리번거리며 찾아다녔던 위니펙을 이제는 떠나야 된다는 기분이 싱숭생숭하다. 이제는 모르던 사람이랑 친해져서 농담도 하고 밥도 사 먹으러 다닐 정도로 친해졌고, 영어로 말 거는 것도 익숙해졌고, 커피 주문 따위는 우습게 해낼 수 있고, 길도 알아서 지도 없이 집도 찾아올 수 있게 됐는데 떠나야 된다니. 지난 6월 어느 날 저녁 이곳 Park East dr에 도착해서 짐을 풀었는데 이제는 하나, 둘 다시 가방에 욱여넣고 있다. 이곳에서 지낸 시간만큼 짐도 늘어서 어제는 월마트에서 캐리어를 하나 더 사야 됐다. 여름이 시작되며 구매한 커다란 선풍기는 이제 이 집을 지키는 매니저에게 선물을 했다.

 위니펙을 떠나지만 우리의 여행은 끝이 아니다. 우선 짐을 위니펙에서 한국으로 ups를 이용해서 한 번, 캘거리로 가서 한국 업체를 이용해서 한 번 더 보낼 예정이다. 그 뒤 우리는 캐리어 3개를 가지고 세계여행을 계속할 예정이다. 집도 없이 직업도 없이 캐리어 3개를 가지고 떠나는 세계여행이라니... 낭만적이지 않은가?! 이 낭만에 빠지면 답도 없다. 불편하고 정신없고 쉽지 않은 길이지만 한 번 사는 인생 처절하게 자칭 '신성'하다는 노동만 하고 하고 싶은 것을 아무것도 못하고 죽음을 기다리는 것보단 낭만적인 것을 하고 내 마음대로 살아보는 용기가 생겼다. 

 정든 곳을 떠나려고 하니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한국을 떠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물론 아내는 이곳을 떠남에 시원한 마음이 더 큰 것 같다. 해가지는 저녁 산책을 나와봤다. 6월의 위니펙은 11시까지 해가 떠있었는데 이제는 해가 짧아졌다. 겨울 위니펙의 일몰은 오후 4시라고 한다. 이렇게 점점 짧아지다 결국은 4시까지 짧아지는 거겠지 생각이 들었다. 괜스레 우수에 잠겨본다. 아무것도 없는 거리, 첫날 이곳에 와서 횡단보도가 없어서 방황하면 로터리, 스타벅스가 있는 Save on foods, 저렴하고 맛있는 푸틴을 파는 Tim Holton 등을 눈에 담아보려고 노력했다. 이제 또 한 번의 이별을 해야 된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관심을 갖지 않고 감성적인 느낌이 없는데 혼자 아쉬운 기분이 충만하다. 날 기억조차 하지 못할 이 도시에게 안녕을 고해 본다. 비록 이 도시는 나란 존재가 있었던 것을 모르고 시간은 흐르고 흐르겠지만 나는 죽을 때까지 위니펙을 잊지 못하고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위니펙은 나의 세 번째 고향이 아닐까.

 다시 돌아오고 싶지만 너무 멀고 다시 돌아온다고 해도 할 게 없어서 다시 돌아올진 모르겠지만, 언젠가 다음에 다시 한번 더 돌아올 날을 기약해 본다. 이젠 떠날 시간이다.

안녕, 위니펙. 정말 즐거웠어.



PS. 어려운 퇴사, 쉬운 세계여행 1부를 마칠까 합니다.

몇 주간 잠시 정리하고 2부에서는 위니펙 이후 세계여행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

2부에서 만나요!

매거진의 이전글 39. 무엇을 위해 사는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