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나는 겉으로 보면 꽤 잘 살고 있는 사람이다.
직장은 안정적이고,
아이는 학교를 잘 다니고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아침에 일어나야 할 이유도 있고,
하루를 채울 나만의 일정도 있다.
누군가 “요즘 어때?”라고 물으면
습관처럼 대답한다.
“괜찮아”
그 말이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다.
실제로 앞에 닥친 큰 불행도, 당장 해결해야 할 큰 문제도 없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하루를 다 끝내고 불을 끄고 침대에 몸을 누이면,
내 마음은 조용해지지 않는다.
오늘도 맡은 일을 다 했고 잘 해내고,
아이도 잘 챙겼고,
특별히 문제도 없이 잘 해내는데...
왜 마음은 계속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 같을까.
난 아침부터 저녁까지는 바쁘다.
직장에서 보고서를 만들고, 정리를 하고,
가기 싫은 마음을 부여잡고 운동을 하고,
아이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온다.
해야 할 일들의 대부분은 제시간에 잘 해낸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고,
적당히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
이 정도면 괜찮아야 할 것 같은데
마음은 자꾸 뒤처지는 느낌이 든다.
마치
나는 제자리에 있는데
세상만 조금씩 앞으로 가고 있는 것처럼...
예전에는
이 감정이 어떤 것인지 스스로에게 자꾸 설명하며 이해시키려 애썼다.
“내가 욕심이 많은 건가?”
“이미 가진 게 있는데 더 바라는 게 있어서 그런 건가?”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 괜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이런 마음이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그래서 더 애써 무시하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감정은 욕심이 아니라,
"불안"의 또 다른 얼굴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무도 대신 책임져주지 않는 삶에서
사람은 자연스럽게
앞날을 더 자주, 더 깊게 생각하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별일 아닌 하루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걸 혼자 결정해야 하는 삶에서는
사소한 선택 하나도
마음속에서 되뇌고 또 되뇌며 여러 번 망설인다.
이 선택이
내일의 나를 더 힘들게 하지는 않을지,
지금의 안정을 흔들지는 않을지.
그래서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마음은 늘
조금 더 안전한 자리를 찾고 있는 중이다.
'잘 살고 있다는 말'과
'편안하게 살고 있다는 말'은
비슷해 보여도 같지 않은 것 같다.
오늘도 해야 할 일은 다 끝냈지만,
마음은 아직
완전히 쉬지 못했다.
아마 이 감정은
없애야 할 문제가 아니라
나를 지키기 위해
나에게 스스로 계속 말을 거는 신호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더 잘 살기 위해,
더 안전한 기준을 만들기 위해
내 마음에 보내는 작은 경고음.
지금까지 버텨온 선택도,
여기까지 온 나 자신도.
“그래도, 여기까지 잘 왔다고.”